[서울 민주화운동기념관 가봤더니]
대구 2.28·4.19·부마·5.18·6.10 등 역사 기록
기획 과정·실물 자료 조명...곳곳서 고민 흔적
반면 민주주의전당, 연일 지역사회 비판 세례
"정식 개관 말고 전면 개편한 뒤에 문 열어야"
서울역과 용산역을 잇는 서울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철도 너머에는 지상 7층 규모 짙은 회색 벽돌 건물 한 동이 솟아있다. 옛 내무부 치안본부(현 경찰청)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이곳이 이달 10일 ‘민주화운동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개관했다. 국가폭력과 인권유린, 시민 저항의 역사가 새겨진 과거 국가폭력 상징과 같은 공간이 민주주의를 되새기는 장소로 재탄생한 셈이다.
일반 시민에게 정식 관람이 허용된 지난 13~14일 오후 이곳 기념관을 찾았다. 민주화운동기념관과 같은 날 문을 연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창원 마산합포구 월포동)이 부실한 역사 기록과 반민주 인사 자문위 위촉 등으로 논란인 상황에서 비교 지점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다. 직접 만난 기념관은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에 견줘 내용상으로, 기술적으로 확연한 우위를 보였다.
◇역사를 마주하는 낮은 시선 = 민주화운동기념관 전시장은 대구 2.28 항쟁부터 4.19 혁명, 6.10 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주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신관(M1), 그리고 남영동 대공분실 현장과 고문 피해자 기록·전시물을 볼 수 있는 구관(M2)으로 나뉘어 있다.
지상 4층, 지하 2층 규모 민주화운동기념관 신관은 옛 남영동 대공분실과 마주 보는 자리에 지어졌다. 이 건물 지상 1층에 들어가면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물줄기 안에 깃든 문장들이 나온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고초를 겪은 이들이 가족과 지인 등에 남긴 편지를 비롯해 옥중 일기 등이 선명하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었던 전시품은 경찰에 최루탄을 쏘지 말라는 내용을 담아 교인들이 경찰에 보낸 자필 편지와 한 부산지역 여고생이 6.10민주항쟁 시위 참여자들에게 보낸 지지 편지였다. 순서를 일부러 맞춘 듯이 바로 그 옆에 전투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처지지만 민주화를 바라는 마음은 시위에 나선 이들과 같다”며 부산지역 시위 참여자들에게 쓴 실물 편지도 나열돼 있다.
줄줄이 전시된 옛 전시품 가운데는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자유당 정권 당시 자행된 부정선거 전후 마산지역 학생이 남긴 일기도 있었다.
“오후부터 취조와 고문이 시작된다. 우리나라 최대 최악의 인상 고약한 악질분자란 다 모인 모양이다. 비명소리, 울부짖는 소리, 나의 귀 언저리까지 들려온다. 자기보다 아니 아버지 같은 늙은 할아버지를 앉혀놓고 ‘이 개자식 바른말 못 해!’라고 하고는 무서운 몽둥이가 후려치곤 했다. (중략) 다음 내 차례다.”
박종철 열사가 1986년 청계피복노조 시위 중 구속된 상태에서 부모님에게 쓴 옥중 편지도 내용이 절절하다. "저들이 비록 나의 신체는 구속했지만 나의 사상과 신념은 결코 구속하지 못합니다. (중략) 오늘도 열심히 싸우고 있는 우리 친구들과 저처럼 싸우다 갇혀있는 친구 선배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라도 쳐주십시오. 엄마 아버지의 막내는 결코 나약한 인간이 아닙니다. 이만 줄입니다."
◇일상 속 민주주의 소중함 일깨우는 기록들 = 신관 지하 1층에 내려가면 본격적으로 한국민주화운동 역사 설명이 시작된다. 시대 흐름 속 민주화운동 주요 사건을 소개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공간이다.
한국 민주화운동 전반을 국민적 저항이 일어난 시간순으로 알리는데, 전시물들은 해방 후 권위주의 정권의 강압적인 통치에 맞선 국민이 끝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내용을 보면 1948년 5.10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가 헌법을 제정하고, 이어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이 먼저 언급된다. 그다음에는 바로 1960년으로 넘어간다. 당시 제4대 정·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로 얼룩졌다는 점, 이에 따라 그해 2월 28일 대구 지역, 3월 8일 대전에서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는 점, 선거 당일 3월 15일부터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있었다는 점 등이 시간순으로 나열된다.
특히 같은 공간 전시물에는 3.15 마산시위 당시 실종되었던 김주열 열사 주검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랐다는 점, 그리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4월 19일 전국 시위로 확대해 결국 이승만 하야를 이끌어 냈다는 점이 명확하게 기록돼 있다.
이와 별개로 이승만 하야 전에 있었던 2.28 항쟁, 3.8민주의거, 3.15의거, 4.19혁명을 일정별로 서술한다. 또한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도 당대 일정별로 시위 전개 상황과 피해 현황을 수치로 보여준다. 이 밖에 이 전시 공간은 사회 각 주체, 즉 학생·재야·종교·국제연대·노동·농민·빈민·언론·문화·여성 등으로 구분해 주제별 사건을 소개한다.
이런 내용은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 전시와 대조적이다. 민주주의전당은 어떤 이유로 일어난 사건인지 구체적이고 정확한 소개도 부족할뿐더러, 내용을 알리더라도 부정선거를 일으킨 이승만 이름 석자조차 전시물에 넣지 않았다. 다만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과 마찬가지로 민주화운동기념관 역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일어난 촛불혁명이나 윤석열 대통령 파면 전 내란 정국을 정리한 내용은 없다.
◇국가 폭력과 시민 저항의 역사 = 민주화운동기념관 구관은 1976년 간첩을 잡아 취조한다는 명분으로 내무부 치안본부 발주로 지어진 공간이다. 당대 최고 건축가인 김수근이 설계했다.
1985년 김근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전 의장을 향한 고문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1987년 1월 14일에는 이곳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해 6.10민주항쟁 도화선이 됐다.
현재 지상 7층 가운데 1~5층은 상설전시실, 나머지 6~7층은 기념관 사무실로 이용되고 있다. 상설전시실 3층에는 옛 모습을 유지 중인 고위급 피의자 조사 공간인 특수조사실과 실물 고문 도구가 있다.
5층은 전체가 조사실로 만들어져 있다. 현재 15개 조사실(건축 당시 18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출입문 맨 위쪽에는 층수 표기 없이 호수만 작게 적혀 있다.
이곳은 고문 밀실로 불린 시설답게 취조와 고문 효과를 극대화하는 장치가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1층에서부터 나선형 계단과 소형 엘리베이터가 바로 이어지고, 5층 조사실마다 폭 300mm 좁은 수직 창이 설치돼 사람이 빠져나갈 수 없게 되어있었다. 완벽한 방음을 목적으로 벽에는 흡음판이 놓였다.
◇같은 역사, 다른 기록 = 민주화운동기념관은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역사를 기록·전시한 점이 특징적이다. 연구조사 자료와 피해 증언 기록 등도 전시에서 보여준다. 반면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보이지 않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화운동기념관과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을 둘러본 김나리(피에스아이 스튜디오 대표) 전시 기획자는 “기념관은 남영동 대공분실에 초점을 두고 민주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기념관 발자취와 그간 전시를 준비하면서 어떤 고민을 했었는지까지 전시하고 있었다”며 “민주주의전당은 그런 내용이 없고, 실물 자료부터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선하려면 전부 다 바꿔야 하는 상황인데 예산 문제도 있고, 정식 개관에 맞춰서 가능하지 않을 거다”라면서 “사전에 보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있었을 텐데 제대로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대로 정식 개관한다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다른 지역 분들이 온다면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이라고 해서 왔는데 내용이 없다며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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