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내기 어려운 달이다. 아직 나뭇잎이 듬성듬성 붙어 있지만 코끝의 공기는 얼어붙어 냄새마저 남기지 않는다. 외투의 두께가 하루의 컨디션을 결정하는 날들. 매일 아침마다 그 두께를 고르지 못해 출근 시간은 조금씩 늦어진다. 차라리 한 번에 추워지면 좋으련만.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공기와 마음의 결을 따라 서성인다. 가만히 있어도 흘러갈 30일이지만 11월은 이렇게 우리를 못살게 군다. 찔끔찔끔 변하는 날들 속에서 점점 두꺼워지는 옷들로 몸을 감싸도 마음은 둔해지지 않는다. 손끝이 얼어붙어 키보드를 누르기 어려워도 생각은 그 반비례
다시 추석이 다가왔다. 해마다 다짐처럼 말했다. “올해가 마지막이다. 이제 농사는 그만해야지.” 그런데도 또다시 깨를 심었다. 씨앗을 쥐면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흙에 흩뿌려지는 순간부터 나는 그 싹을 기다렸다. 여름 내내 물을 지고 풀을 뽑는 일은 고되었지만, 깨가 여물어 포대에 담길 때면 다리에 힘이 풀려도 마음만은 단단했다.올해는 윤지 차 덕분에 깻단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예전에는 끌차에 차곡차곡 쌓아 밧줄로 묶고 조심조심 옮기느라 온몸이 쑤셨다. 그때는 영감이 곁에 있어 덜 힘들었는데, 이제는 혼자 감당하자니 더 버겁다
산중호걸 호랑님의 생일날이 되어 각색 짐승 모두 자리에 모여 잔치가 열렸네.하동군에서 농어민수당이라며 하동사랑상품권을 나눠주었다. 호랑님은 그걸 아껴두셨다가 창원으로 막내딸이 오라 하자 꼬깃꼬깃 접힌 3만 원을 찾아내셨다.“윤지야, 창원 가기 전에 재첩국이나 좀 사 가자.”사위 집에 며칠 신세를 지는데 빈손으로 가기 미안하다는 말이었다.예전 같으면 굳이 살 필요도 없는 게 재첩이었다. 호랑님이 어릴 적 살던 동네 방천에는 재첩이 천지였다. 물론 재첩 잡는 아지매들이 물에 발이라도 담글라치면 호통을 치며 쫓아내곤 해서 자주 먹지는 못
#권태로운 시골 떠나 '어쩌다 피서'한여름을 네 조각으로 나눈다면, 지금은 세 번째 조각쯤이겠지요. 저는 늘 마지막 조각을 애틋하게 바라보다가도, 손에 쥐고 있는 조각을 더 아끼지 못한 걸, 후회하곤 합니다. 물론 여름이라는 계절은 그림자가 길어, 끝날 듯 끝나지 않을 걸 잘 알지만요. 그래서 이번에는, 지금 이 세 번째 조각을 조금이라도 덜 아쉽게 보내보자는 마음으로 이역만리 먼 곳에 와 있습니다.그런데 제 예상과는 달리, 이곳은 생각보다 꽤 쌀쌀합니다. 온전한 여름을 즐기러 온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피서를 오게 된 셈이네요
최대한 바닥에 붙어 있다. 차가운 바닥이 내 온도로 미지근해지면 자리를 한 뼘 옮겨 또 다른 냉기에 찰싹 붙는다. 이리저리 거실 바닥을 옮겨다닐 때마다 '쩌억'하고 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이처럼 여름은 모든 것이 주욱 늘어난다. 장마가 물러가면 그 자리는 여름 아지랑이가 채운다. 눈앞에 보이는 아스팔트 도로가 초마다 일렁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아지랑이의 힘은 강해진다. 여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뜨거운 아지랑이 앞에 맥을 못 춘다. 집 앞 전봇대 전깃줄도, 여무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푹 꺾인 마당 토마토 가지도 모두 여름의
혀를 쏘는 듯한 여름 맛이 난다. 노지에서 키운 소풀(정구지, 부추)과 독이 바짝 오른 땡초를 씹으면 콧등에 땀이 맺히는 맛이다. 할머니와 내가 마주 보고 앉은 밥상에 할머니 표 찌짐이 올라오면 그때부터 여름이 시작된다.매자골 텃밭에 심어둔 소풀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아주 기특한 놈이다. 지난주 미현이네 집에 갈 때 빈손으로 가기가 그래서 한 소쿠리 베어서 검은 봉다리에 싸서 갔었는데 그새 또 빼곡하게 자랐다. 밭에 꽂아둔 칼을 잡고 이번에도 한 움큼씩 베어내니 아릿한 향이 느껴진다. 지난주보다 향이 더 진해진 것 같은 느낌에
D-10오늘이 보름이니까 다음주면…. 잔너리댁은 요즘 혼잣말이 늘었다, 아침에도 윤지를 깨워놓고 거실에 있는 달력을 보며 영감 제사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세어보고 있던 참이었다. 옷매무새를 다듬던 윤지가 힐끔 할머니를 보더니 "할머니, 어제도 달력 보고 날짜 확인하셨잖아. 그럼 당연히 오늘은 어제 날짜 더하기 일이지."라고 말을 한다. 윤지 말대로 아침마다 달력을 빤히 쳐다보며 날짜를 세는 것도 보름째이다. 그런데 이렇게 확인해도 오후쯤이면 또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아리송송해서 참 큰일이다. 잔너리댁은 당신이 이 나이까지 살더니 까
내가 우리 딸들의 친정이 되면서부터 나의 친정은 점점 흐려졌다. 넉넉한 친정은 되지 못하더라도 딸들 속 안 썩이게 그리고 언제든 엄마 손이 필요하면 달려가려고 애쓰다 보니 내 친정은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그리고 이 나이에 친정 타령하는 것도 남 부끄러워서 항상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생각하며 살았더니 잔너리에 안 간지도 십 년이 거의 넘었다.그런데 뜻밖에 윤지가 이모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한다. 이참에 나도 안부를 물을 겸 잔너리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하니 '언니 우찌 그리 내를 보러 한 번을 안 오네.'라고 투정을 늘어놓았다.
2월 보름부터 윤지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산다. 그러니까 내 황혼 육아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사실 말만 황혼 육아지, 2월 내내 윤지가 오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윤지는 애릴 때(어릴 때)부터 밥도 잘 먹고 말도 잘 들었으니 키우는 게 수월했다. 게다가 어딜 가나 내를 졸졸 따라다니니 얼마나 예뻤는지. 그러니 이번에도 윤지랑 사는 게 얼마나 재밌을지 신이 나 잠도 설칠 지경이었다.그런데 웬걸. 윤지가 변했다. 내가 키울 때는 아가 참 부지런했는데 도시로 나가서 살드만 즈그 엄마가 아를 망쳐놨다. 내 기대와 달리 다 큰
내가 우리 큰사위, 조 서방에게 미안한 게 한 가지 있다. 미현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얼마 안 돼서 미숙이가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온다고 했다. 야무진 미숙이가 어떤 사람을 데려올까 궁금해 미현이한테 넌지시 물어보니 대뜸 진짜 착하고 좋다고 말을 했다. 현성이, 도성이도 부산에서 먼저 만나봤는데 사람이 참 괜찮다고 하니 더더욱 기대가 됐다. 손님맞이를 위해 평소에 틀지도 않는 보일러를 켜서 방을 데워놓고 도성이 아부지 새하얀 샤-쓰도 다려 입혀서 고개만 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고야, 이 사람들아!' 우리 집 대문을 열고
올해로 내 나이 여든일곱, 범띠인데 뱀들이랑은 참 안 맞다. 왜냐면 뱀들은 가만히 있는 내를 자꾸 건드리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내한테 시비를 걸고 못된 짓을 하는 뱀들. 앞으로 내가 하는 이야기는 이런 못된 뱀들의 이야기다.# 내 다리를 문 독사 = 5년 전 오동통한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는 재미로 5월을 보낼 때였다. 살이 오른 고사리를 정신없이 꺾던 와중에 오른쪽 발목이 '때끔'하고 아려왔다. 그냥 벌레가 물었겠거니 하고 다시 실한 고사리 꺾는 데에 정신을 쓰고 있었는데 다리가 살짝 뻣뻣해졌다. 이상하다 싶어 집에 와서 다리를
11월 20일 자 경남도민일보 기고란에 '나 혼자 산다-할머니 편'을 써서 화제가 된 김윤지(27) 씨의 글을 싣습니다. 당시 시골에 홀로 사는 외할머니의 하루를 전지적 시점으로 풀어낸 기고는 덤덤하고 빼어난 묘사로 독자들의 칭찬이 이어졌는데요. 김 씨는 취업을 준비하는 바쁜 와중에도 한 달에 한 번 경남도민일보에 할머니와 관련한 에피소드로 연재를 하기로 했습니다. 코너명은 이며, 잔너리댁은 하동군 고전면 잔너리마을에 사는 김 씨 할머니의 애칭입니다.작은 글이라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쓸 말도 주제도 생각이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