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서 아라정원 운영 문강흥·이수경화 부부
가족·지인 위해 끓인 곰탕, 장사로 이어져
잡뼈·조미료 없이 한우·물로 깊은 맛 구현
지역 복지기관 등에 꾸준한 나눔·기부 활동
“진해 대표하는 먹거리로 자리매김하길”
창원시 진해구 제황산동 한적한 주택가에는 정직한 한 그릇을 내어주는 곰탕집이 있다. 문강홍(71)-이수경화(73) 부부가 운영하는 ‘아라정원’이다. 손님들은 부부가 밤을 꼬박 새워 30시간 정성으로 끓여낸 곰탕을 단순한 음식이 아닌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는 ‘보약’이라 부른다. 코로나19라는 큰 파도를 만난 가족과 지인을 위해 가마솥에 불을 지핀 부부는 이제 이웃에게 깊고 진한 국물로 따뜻한 정을 나눈다.
코로나19가 뒤바꾼 인생
부부의 삶은 원래 곰탕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편 문 씨는 고성, 아내 이 씨는 부산이 고향이지만 젊은 시절 상경해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남편은 섬유 원단을 다루고 아내는 옷을 디자인하고 제작해, 공장 직원만 수십 명을 거느린 의류 도매업으로 30년간 치열하게 살았다. 전국에 옷을 납품하며 크게 사업을 했던 이들은 은퇴 후 10년 넘게 전국 팔도를 여행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진해의 정원이 딸린 고즈넉한 주택을 알게 되었고, 그 매력에 빠져 덜컥 집을 매입했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장사할 계획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세상을 덮치면서 부부의 인생 시계는 다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장사를 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코로나19 때 밖에서 음식 먹기도 힘들었잖아요. 그때 우리 둘째 며느리가 아이를 낳았데,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에 아이들 키울 때 ‘흰국’이라 부르며 먹이던 솜씨를 발휘해 도가니와 꼬리를 사다가 마당에서 푹 끓였죠.”
가족을 위해 끓인 곰탕의 맛은 범상치 않았다. 주변 지인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평소 입맛이 까다로운 지인과 도가니를 먹지 않는 지인조차 “이건 팔아도 되겠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변의 강력한 권유에 못 이겨 소박하게 시작한 판매가 입소문을 타면서, 2020년 본격적으로 ‘아라정원’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부부의 정성이 담긴 곰탕은 금세 지역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요즘는 300인분을 끓여도 사흘이 채 되기 전에 모두 나갈 정도로 인기다. 온라인에 판매하는 곰탕도 알음알음 입소문만으로 지난 6년간 누적 15만 팩이 나갈 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정성으로 끓여낸 ‘보약’
아라정원 곰탕이 사랑받는 데에는 이들 부부의 고집스러운 철학이 있었다. 오로지 최상급 한우와 물, 그리고 정성만으로 곰탕을 끓인다. 다른 저렴한 잡뼈나 인위적인 맛을 내는 조미료는 조금도 쓰지 않는다. 남편 문 씨는 직접 불을 조절하며 30시간을 꼬박 지킨다.
“고기와 물 외에는 어떤 것도 넣지 않습니다. 가마솥에서 30시간을 넘게 끓이는데, 어느 순간 우유처럼 뽀얗게 변하는 결정적인 타이밍이 와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끓여야 비로소 진정한 진한 맛이 완성되죠.”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름기 제거다. 시중의 곰탕과 달리 아라정원의 국물은 식어도 젤리처럼 굳을지언정 기름막이 뜨지 않는다. 부부가 끓이는 내내 곁을 지키며 기름을 완벽하게 걷어내기 때문이다. 덕분에 맛이 느끼하지 않고 깔끔하며, 소화 기능이 약한 환자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실제 이곳을 찾는 손님 중에는 투병 중이거나 큰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많다.
아내 이 씨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100㎏이 넘는 고기를 직접 썰면서도 힘든 줄 모른다고 했다.
“며칠 전에 오신 분은 남편이 위암으로 위를 3분의 1이나 절제하셨대요. 항암 치료 중이라 어떤 음식도 넘기질 못하는데, 신기하게 우리 곰탕은 속 편하게 드신다는 거예요. 마음이 짠하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끓인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진해를 대표하는 먹거리
아라정원 식당 벽면에는 유명 연예인의 사인 대신, 음식을 먹고 감동한 일반 손님, 군인, 학생, 어르신이 직접 쓴 글귀들이 빼곡하다. “여기 음식은 보약이다”, “세계 최고의 곰탕을 먹었다”, “변함없는 맛을 부탁한다”는 진심을 담은 후기들이다. 아라정원이 단순한 식당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공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유명한 사람 사인 받아서 걸어둘 수도 있겠죠. 하지만 손님들이 밥 먹고 감동해서 자진해서 써주고 간 저 종이 한 장 한 장이 우리에겐 더 큰 훈장입니다. 음식이 깊어지니 사람 관계도 깊어지는 것 같아요.”
아라정원에는 특별한 경영 원칙이 있다. 바로 ‘수익보다는 나눔’이다. 남편 문 씨는 “음식을 팔아 돈을 얼마나 남길까 계산하는 순간, 그 음식의 가치는 떨어진다”고 강조한다. 좋은 재료를 쓰고 긴 시간 공을 들이지만, 가격은 시중의 프리미엄 곰탕보다 저렴하게 책정했다. 더 많은 사람이, 특히 몸이 아픈 이들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러한 철학은 지역사회를 향한 꾸준한 기부로 이어지고 있다. 부부는 경남동부보훈지청, 진해서부노인종합복지관, 대광사 무료급식소, 진해자은종합사회복지관 등에 매달 30~40팩씩 곰탕을 기부해왔다. 공식적인 기부 외에도 동네 노인정 등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곰탕을 보내는 일도 다반사다. 또, 매출의 5%를 조손가정 돕기에 기부하는 일도 준비 중이다.
“늘 사회에 환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나누는 데 의미가 있죠. 아라정원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어려운 분들이 이 음식을 먹고 힘을 얻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
전국을 방랑하던 부부는 이제 진해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이들은 이제 정성으로 끓인 곰탕이 진해를 대표하는 먹거리가 되기를 꿈꾼다.
“진해를 대표할 만한 먹거리가 딱히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 아라정원 곰탕이 진해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사랑받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진심을 담아 끓이면 그 마음이 통한다고 믿으니까요.”
아라정원은 진해 제황산동에 본점, 경화동에 경화점을 운영 중이다. 곰탕 가격은 1만 3000원, 도가니탕과 꼬리곰탕은 각각 2만 원에 판매한다.
/이원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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