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사니다] 46. 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

개관 후 12년째 박물관 운영 책임
통도사성보박물관과 인연으로 시작
풍부한 역사·문화적 자원 가진 양산
시민 일상과 함께하는 박물관 목표

개관 준비부터 12년째 양산시립박물관 운영을 책임진 신용철 관장은 지역민에게 사랑받는 지역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초심을 묵묵히 실천해 오고 있다. /이현희 기자
개관 준비부터 12년째 양산시립박물관 운영을 책임진 신용철 관장은 지역민에게 사랑받는 지역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초심을 묵묵히 실천해 오고 있다. /이현희 기자

2013년 4월 유물전시관으로 시작한 양산시립박물관이 올해 12주년을 맞았다. 개관 준비 단계부터 현재까지 박물관 운영을 책임져온 신용철(57) 관장은 박물관을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양산사람의 삶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켜오고 있다. 아울러 박물관은 시민 일상 속에 있어야 하고 살아 있는 문화의 장으로 지역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목표를 묵묵히 실현하고 있다.

유물 없는 전시관에서 경남 최고 박물관으로

1980년대 이후 본격적인 개발이 이뤄지면서 양산에는 신도시와 산업단지 등이 들어섰다. 도시 개발과 함께 유입인구도 급격하게 늘어나자 지역 정체성과 동질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지역 역사·문화를 보전·전승하는 구심점으로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양산시는 유물전시관 건립 계획을 수립했다.

공모를 거쳐 초대 관장으로 부임한 그가 개관 준비를 위해 찾은 유물전시관은 말 그대로 ‘텅 빈 공간’이었다.

“처음에 와서 보니까 아무런 준비도 안 돼 있는 거예요. 유물도 한 점 없고, 건물만 덜렁 있고, 수장고에 내려가 보니까 복제품만 쭉 만들어 놓고, 어떻게 운영할지 로드맵도 없고, 전시공간에는 진열장조차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암담했던 순간도 잠시, 그는 유물전시관이 제대로 된 지역박물관으로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노력했다. 그 결실이 바로 2013년 10월부터 이듬해 초까지 열린 첫 특별전 ‘백년만의 귀환-양산 부부총’이다.

박물관과 나란히 보이는 신라시대 고분군인 ‘부부총’은 1920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게 강제 발굴·조사돼 중요 유물 120여 점이 일본으로 반출돼 현재까지 도쿄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이 가운데 곡옥 목걸이와 금동안교(말안장), 금제굵은귀걸이 등은 보물급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그는 “사실은 개관 특별전으로 부부총을 준비했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 늦어졌다”며 “시립박물관으로 변경하고 국가귀속문화재 수임처로 지정받아 일본에 있는 부부총 유물을 전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나서야 뜻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차례 일본을 오가며 협의를 거치는 과정 끝에 부부총 유물은 백 년 만에 양산으로 돌아와 시민에게 공개됐다. 박물관 역시 ‘유물 없는 전시관’이라는 오명을 벗고 진정한 지역박물관으로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됐다.

다른 지역보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문화체육관광부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에서 3회 연속 우수박물관으로 선정된 것은 물론 경남에서 3회 연속 인증을 달성한 5개 박물관 가운데 최고점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경남 최고 공립박물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개관 후 12년간 누적관람객 114만 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양산은 물론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박물관으로 성장했다.

신용철 관장은 해마다 상·하반기 2차례 역사·문화·인물·생활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양산을 재조명하는 특별전을 진행해오고 있다. 사진은 특별전 도록들. /이현희 기자
신용철 관장은 해마다 상·하반기 2차례 역사·문화·인물·생활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양산을 재조명하는 특별전을 진행해오고 있다. 사진은 특별전 도록들. /이현희 기자

양산과의 인연, 박물관에서 열매 맺다

그가 양산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통도사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으로 일하면서부터다. 울산에서 태어나 곧장 서울에서 자란 그는 동국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부터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통도사성보박물관 개관 준비를 위해 파견을 나왔던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범하 스님이 경주박물관에 연구원으로 함께 일하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경주박물관 역시 불교미술을 연구하는 그에게 국내 최대 불교회화전문박물관인 통도사성보박물관에서 일하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권유하면서 양산과 인연이 시작됐다.

이런 가운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리면서 그가 양산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양산에서도 일부 종목 경기가 열렸는데 아시안게임 개최 기념으로 특별전을 하면 좋겠다는 제안이 통도사에 들어왔다. 양산에 박물관이 통도사성보박물관밖에 없던 시절이라 특별전 준비는 그의 몫이 됐다.

그는 “양산시에서 예산을 지원하는 특별전을 준비하는 일을 맡으면서 원래 시립박물관이 있었으면 해야 할 전시를 ‘양산의 역사·문화’라는 제목으로 진행했다”며 “그때 금조총 유물도 처음 양산으로 가져와 전시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처음 유물전시관 관장 채용 공고를 봤을 때도 선뜻 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그때 고민이 많았다. 모교에서 몇 년 뒤 교수 임용이 거의 확정된 상황이었는데 당시 유물전시관 담당 과장이 ‘양산을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교수는 박물관을 반석 위에 앉혀놓고 가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양산시립박물관 전경. /양산시립박물관
양산시립박물관 전경. /양산시립박물관

지역박물관은 지역민 삶을 담는 플랫폼

‘부부총’을 시작으로 박물관은 지역 정체성과 독창성을 재조명하는 특별전을 해마다 상·하반기 1차례씩 총 2회 열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황산강’, ‘천성산’, ‘황산역’, ‘1919, 양산으로부터의 울림’, ‘독립운동가 윤현진’, ‘양산반닫이’ 등 역사·문화·인물·생활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양산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이어졌다.

그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존재하는 것도 선대의 사람이 있었듯이 수도 없이 중첩돼온 인간의 역사가 이어져 왔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배우는 역사서가 중앙의 역사 위주로 쓰이다 보니 사실 지방의 미시적인 역사는 묻히는 게 많은 만큼 지역박물관은 그 지역이 가진 사람 이야기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산은 ‘개발도시’라는 이미지에 갇혀 ‘문화 불모지’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이런 평가를 두고 그는 “옛날부터 강에서 4대 문명이 이뤄졌듯이 양산 역시 낙동강과 양산천, 회야강을 중심으로 부산과 경주를 잇는, 서울로 가는 교통로 역할을 했던 지리적 위치가 다양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며 “여기에 천성산과 영축산이라는 큰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 역시 도자 문화가 발전하고, 자장율사가 경주를 놔두고 양산에 통도사라는 큰 절을 세운 이유”라고 반박했다.

양산이 사실 풍부한 역사·문화적 자원과 가치를 지닌 지역이지만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한 채 외면받거나 내버려져 있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는 “사실 언제까지 관장으로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초창기부터 양산이 가진 테마 가운데 특별전으로 꾸밀 수 있는 60여 개 정도를 목록으로 이미 만들어 놓았다”며 “박물관 직원들이 관장 노트에 어떤 테마가 있는지 몰래 들여다봤으면 좋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가 12년간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지켜온 원칙은 ‘관람객 없는 박물관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친근하게 다가서는 대중성을 확보하는 일 못지않게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는 박물관 본질의 기능을 살리는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영역과 균형도 늘 고민의 중심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 돌풍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현상은 긍정과 우려가 동시에 든다고 말한다.

그는 “박물관 전시의 중심은 역시 유물일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최근 박물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일부 눈을 현란하게 하는 멀티미디어쇼나 이벤트를 보러 가거나 사진을 찍으러, 심지어 기념품을 사러 가는 현상은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런 현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굳어진다면 인력과 재원이 부족한 지역박물관은 오히려 외면받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가까운 일본만 살펴봐도 지역민이 지역박물관을 일상적으로 찾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며 “박물관은 고리타분한 곳이라는 편견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 편히 마실 오듯 박물관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물관과 북정고분군 공원이 이어져 있어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가는 공간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도 있다”며 “박물관은 특별전뿐만 아니라 상설전시 역시 계속 변화를 주는 만큼 올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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