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너리댁의 밥상] 미안하네! 조 서방

큰딸 미숙이가 데려 온 짝꿍
오뉴월 팥 이파리만 할 얼굴에
대뜸 '결혼 못 시키겠다' 선포

자식 못 이겨서 결혼 시켜보니
진국도 이런 진국이 따로 없네
때린 놈이 발 못 뻗고 잔다고
이젠 음식도 맞이도 더 정성껏

내가 우리 큰사위, 조 서방에게 미안한 게 한 가지 있다. 

미현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얼마 안 돼서 미숙이가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온다고 했다. 야무진 미숙이가 어떤 사람을 데려올까 궁금해 미현이한테 넌지시 물어보니 대뜸 진짜 착하고 좋다고 말을 했다. 현성이, 도성이도 부산에서 먼저 만나봤는데 사람이 참 괜찮다고 하니 더더욱 기대가 됐다. 

손님맞이를 위해 평소에 틀지도 않는 보일러를 켜서 방을 데워놓고 도성이 아부지 새하얀 샤-쓰도 다려 입혀서 고개만 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고야, 이 사람들아!'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미숙이를 뒤따라오는 머스마의 얼굴이 너무 작았다. 남자라면 우리 도성이맹키로 얼굴도 죽은 데 없이 번듯하고 커야 하는데!  오뉴월 팥 이파리만한 얼굴을 보니 속이 팍 상해서 대뜸 '내는 미숙이 결혼 안 시킸으면 안 시킸지, 이 결혼은 못 시키긋다!'라고 말했다. 아들들이 다 괜찮다 하드마 내를 속였다. 그러고 보니 미현이가 못 보던 가방을 들고 배실배실 웃고 있었다. 저거 아마 미숙이가 사주면서 내한테 말을 잘 하라했나보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우리 아들들한테 큰 소리를 냈다. "느그들 눈은 눈꾸녕도 아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앞집 고양이. /김윤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앞집 고양이. /김윤지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미숙이는 고놈이랑 결혼해서 아들도 낳고 잘 살고 있다. 물론, 내가 이길 뻔하긴 했다. '결혼식 끝나고 집에 올 필요 없다'라고 해놓고 진짜 안 오면 어쩌나 싶어 이바지 음식 다 만들어놓고도 마음 졸이던 때를 기점으로 내가 아무리 독해도 자식은 이길 수 없겠구나! 깨닫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얼굴이 작고 약해 보여서 우리 미숙이 고생시킬 줄 알았더마 미숙이는 조 서방이랑 둘이서 장사해서 잘 벌어먹고 살고 있다. 미숙이의 결혼을 반대할 때는 나는 내가 사람 볼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 눈이 눈꾸녕이 아니었던 거다. 그래도 우리 자식들은 눈이 좋아서 참 다행이다 싶다.

고놈, 그러니까 조 서방도 이제 우리 식구가 되어서 그런지 몸도 좀 커지고 얼굴도 살이 올라 둥글납작한 게 봐줄 만하다. 이제는 어딜 내놓아도 남의 축에 빠지지 않고 꽤나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어찌나 살가운지 내 혼자 농사짓는 거 힘들다고 미숙이 없이 혼자 와서 밭일을 다 해주고 간다. 거기다 올 때마다 동네 할매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주전부리도 양손 가득 사 와서 내 체면을 살려준다. 이렇게 내한테 잘할수록 나는 매몰차게 쫓아낸 그날이 자꾸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이 하필 소한이었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갔다 얼어죽었다는 말처럼 어짐작하게 추운 날이었는데 그때 우리 조 서방은 몸도 마음도 참 시려웠을 거라 생각하니 참 으짢다.(안타깝다.) 우리집에 처음 인사 왔을 때 물 한 잔 못 먹여서 보낸 걸 생각하면 속이 쓰리고 우리 사부인께도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애만 타니 우리 조 서방 오는 날 밥이나 한 끼 잘 차려 주려 한다. 우리 조 서방은 내가 차려둔 반찬 중에 생선찜을 제일 잘 먹으니 그놈으로 만들어야겠다. 

생선찜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크고 좋은 생선을 구해야 한다. 예전에는 전도장, 진교장 다니면서 실한 생선을 구하러 다녔다. 그럴 때마다 생선 파는 아지매들이 '할매 집에 큰 제사 있습니꺼?'하고 물어볼 만큼 깐깐하게 밥상에 오를 생선을 구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엔 그럴 필요가 없다. 막냇사위가 내 묵으라고 잡아다 준 돔을 아껴두어 아직 두어 마리 남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건 우리 막냇사위한테는 비밀이다.

큰 사위 조 서방을 위해 생선찜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 과정이 꽤나 길다. 찜기에 넣어서 찐 생선. /김윤지
큰 사위 조 서방을 위해 생선찜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 과정이 꽤나 길다. 찜기에 넣어서 찐 생선. /김윤지

우리 조 서방을 위한 생선찜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 과정이 꽤나 길다. 아침에 생선을 손질해서 간간하게 소금을 흩쳐놓고(뿌려놓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나서 볕 좋은 옥상에 말려둔다. 이때부터는 앞집에 사는 새끼미(고양이)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 앞집에 사는 고 새끼미는 저번엔 내 명태를 한 마리 훔쳐 가더니 홀라당 해치우고 지 친구들까지 데리고 다시 온 전적이 있는 아주 못된 짐승이다. 그렇기에 새끼미가 입을 대지 못하도록 소금간 한 돔을 빨랫줄에 최대한 높이 걸어두고 짬이 날 때마다 엉금엉금 기어서 옥상에 올라가 본다. 며칠을 그렇게 허수아비 모양으로 생선을 지키다 보면 볕에 잘 말라 까들까들해진다. 앞집 들짐승으로부터 지켜낸 꼬릿꼬릿한 내 생선을 한 번 물에 헹궈서 찜통에 넣고 찐다. 푹 쪄진 생선은 뜨거운 김을 빼고 나서 하나로마트에서 사 둔 실고추도 보기 좋게 얹어주고 깨도 뿌려준다. 그리고 조 서방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제일 좋은 접시에 담아 상을 차릴라치면 차 소리만 나도 조 서방인가 싶어 마음이 바쁘다. 상을 차려 놓고 나면 이제 내가 할 마지막 일은 그날의 기억이 조 서방의 마음에서 언제까지나 사무치지 않도록 아주 반갑게 맞이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조 서방이 순천에서 출발했다고 할 때부터 마을 어귀에 나가서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다가 차가 마을로 들어오면 웃으면서 "어서 와!" 하고 반겨준다. 다른 자식들한테는 하지 않는 수고로움이지만 때린 놈이 다리 못 뻗고 잔다고 이건 내 업보니 어쩔 수 없다. 우리 조 서방은 내 이런 정성을 아는지 매번 웃는 낯으로 인사하고 내가 준 밥도 항상 한 그릇 뚝딱 해치운다. 요번에도 내가 만든 생선찜을 어찌나 잘 먹던지 3일의 고생이 싹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밥도 먹고 궂은일도 싹 해주고 나서 "어무니, 요번에는 바빠서 얼릉 가볼게요잉~"이라고 애교스럽게 인사까지 해준다. 이렇게 매번 웃는 낯으로 나를 대하니 나는 참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두고 속으로만 외친다.

'조 서방 그때는 내가 참 미안했네. 나를 용서해 주게. 그리고 우리 미숙이랑 잘 살아줘서 항상 고맙네.'

ps. 조 서방에게 보내는 짧은 러브레터

조 서방 내 낯부끄러워서 자네에게 한 번도 따뜻한 말을 못 해준 게 마음에 걸리서 몇 자 적어 보네.

조 서방 자네가 우리 집안에 들어와서 참 다행이라 생각하네. 다른 자식들은 말도 쎄고 고집도 쎄서 내가 가끔 속상할 때가 있는디, 자네는 한결같이 내한테 애살맞게 구니 내가 자네 덕분에 마음이 풀릴 때가 많네. 그런데 요즘 일이 고되어 몸이 좀 안 좋다고 들었네. 자네가 심성이 고와서 어딜 가나 궂은일 마다않고 도맡아 하다 보니 몸이 상했나 싶어 많이 걱정했다네. 

조 서방, 건강 챙겨가면서 일을 쉬엄쉬엄 하게 

일하다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 언제든 전화주시게. 자네가 먹고 싶은 게 있으모 열 일을 마다하고 맹글어 주겠네

그럼 조 서방 올해도 우리 잘 지내봄세.

/김윤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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