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고사리 꺾다 독사에 물려 병원행
한 달 머무르며 그 덕에 다른 문제 찾아내
집안 유일의 뱀띠 큰딸 퉁명스럽고 톡톡 쏘아
엄마 위해 일하고 값비싼 테레비 선물 '반전'
올해 뱀띠 해 아프고 힘들 수도 있으니 조심
선물주고 홀라당 내뺄 기대감 가져보시길
올해로 내 나이 여든일곱, 범띠인데 뱀들이랑은 참 안 맞다. 왜냐면 뱀들은 가만히 있는 내를 자꾸 건드리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내한테 시비를 걸고 못된 짓을 하는 뱀들. 앞으로 내가 하는 이야기는 이런 못된 뱀들의 이야기다.
# 내 다리를 문 독사 = 5년 전 오동통한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는 재미로 5월을 보낼 때였다. 살이 오른 고사리를 정신없이 꺾던 와중에 오른쪽 발목이 '때끔'하고 아려왔다. 그냥 벌레가 물었겠거니 하고 다시 실한 고사리 꺾는 데에 정신을 쓰고 있었는데 다리가 살짝 뻣뻣해졌다. 이상하다 싶어 집에 와서 다리를 보니 '아이고야' 오른쪽 다리가 옥동우 맹키로 퉁퉁해져있었다. 벌레에 물려도 이 정도는 아닌데…. 겁이 나서 막내에게 얼른 전화를 했다. 막내도 놀랐는지 금새 우리 집으로 오더니 내를 싣고 경상대학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이 피도 뽑고 내 다리도 살펴보드만 당장 입원을 하라 했다. 내가 '그 정도로 아프지는 않은디'라고 말을 꺼내자 의사선생님이 "어무이, 독사에 물리셨네예"라고 했다. '독사에 의한 교상'이라는 병명을 달고 꼼짝없이 한 달을 병원에서 지냈다. 매일을 부지런히 사는 촌사람이 온종일 누워만 있으려니 징했다. 사진을 여러 개 찍드만(엑스레이, CT, 초음파) 내가 자꾸 아픈 이유를 찾았는갑다. 자식들은 다 뱀 때문에 내 병을 찾아냈으니 뱀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는데 다들 씨사이(실 없는 사람) 같은 소리만 한다. 나는 아직도 내 밭에 몰래 들어와 주인인 내를 콱 물고 내뺀 뱀이 괘씸해 죽겠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뱀을 잡아다가 병원비 내놓으라고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문디 뱀 때문에 내가 오래 살아서 자식들 애만 터지게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물론 자식들은 뱀 때문에 내가 오래 산다니 좋다고는 하겠지만 늙은이가 오래 살아서 뭐하는가? 그래도 이제는 고사리 꺾으러 갈 때마다 장화를 신고, 긴 장대를 들고 가서 먼저 땅을 쿵쿵 치면서 간다. 뱀이 도망가라고 말이다.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옆 병실 할매는 독사에 물려서 다리를 절단했다는데,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았다 싶다.
요즘도 가끔 그 자리가 쑤시고 아프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올라치면 더 그렇다. 자식들이 그럴 때마다 병원에 가보자고 하지만, 나는 괜찮다고 한다. 뱀한테 한번 물린 게 평생 안 잊히는 추억이 될 줄이야. 이제는 산에 가면 뱀 조심하라는 말을 꼭 하게 된다. 특히 봄철에 산나물 뜯으러 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그렇다. 그때 그 독사랑 다시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야, 네가 나를 살렸다만, 그래도 다음에는 먼저 인사하고 물어라!"
# 우리 집의 유일한 뱀띠, 큰딸은 내한테만 찹찹하게 대한다. 애맀을 때부터 예쁘다고 집안일도 안 시키고 귀하게 키웠는데 왜 내한테만 이렇게 구는지 나머지 자식들은 자주 전화도 하고 내를 보러 오는 데 큰딸은 바쁘다고 자주 오지도 않고 왔다가도 점만 찍고 달아난다.(정말로 큰딸 고등학교 다닐 때 테레비에 조용필 나오는 거 본다고 소죽 태워 먹은 것을 제외하면 크게 혼을 낸 일이 없다.) 아들 둘, 딸 둘 낳아놔서 자식 골고루 잘 낳았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는데 이제 보니 아들 둘, 딸 하나같다. 가끔 큰 딸이 너무 보고 싶으면 전화기 5번을 꾹 눌러 전화를 건다. 그러곤 대뜸 '니는 내가 안 보고 잡드나? 엄마는 니가 보고잡든디'라고 입을 떼면 '아니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엄마가 보고 싶을 나이인가?'하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니도 막내처럼 자주 오면 좋을낀데…'라고 하자 '막내가 엄마 구경도 시켜주고 옷도 사주는데 뭘 나까지 그래, 엄마는 욕심이 너무 많아'라고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문디 가시나 니는 내가 죽어도 안 울끼그만'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옛날에 내가 큰딸 저거 낳았을 때 어른들이 겨울에 태어난 뱀이라고 순할거라더니 순 거짓말이다. 저것처럼 찹찹한 것도 드물거다.
그래도 뱀띠인 큰딸이 의외의 구석이 있다. 하루는 너무 속이 상해서 막내에게 '느그 언니는 엄마 얘기도 잘 안 하제? 그거는 내를 이자삔 게 틀림없다'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니는 엄마 필요한 거 있으면 다 사주고 엄마 심심하다고 좋은 테레비도 사주는데 느그 언니는 엄마가 미운갑다' 라고 하자, 막내가 입을 다시더니 사실 언니가 준 돈으로 엄마 텔레비전을 사준 거라고 이실직고를 했다. 하나는 지가 돈을 써 놓고도 암 소리도 안 허고 하나는 언니 돈으로 생색을 내면서 요것들이 내를 속였다 생각하니 부아가 났다. 나이가 환갑이 다 되어도 하는 것이 어릴 때랑 다른 게 없다. 밥 벌어먹고 살기 바쁘다드만 내 테레비 사줄라고 내를 보러오지도 않았나 싶으니 짠하면서도 괘씸했다. 내가 지를 전화로 나무래도 혀만 낼름거릴 뿐, 아무 소리도 안 해서 내를 나쁜 엄마로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이게 뱀들의 속성인가 싶다. 몸도 마음도 콱 물어서 내를 아프게 만들어놓고는 뜻밖의 선물을 준다. 게다가 겉으로는 찹찹하게 대해도 속으로는 내를 생각해준다. 문디 자슥들, 선물을 줄 거면 좋게 주든가 아니면 선물 준다고 기별이라도 하든가 이것들은 생색내는 법도 없으니 늙은 호랑이인 나는 둔해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한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밭에 들어온 숭악한 뱀 때문에 내가 이날 이때까지 살아서 뱀띠 큰딸이 사준 좋은 테레비로 온갖 재미난 건 다 본다.
올해가 뱀띠의 해라고 한다. 내가 낳은 큰딸이 태어난 지 60년이 되었고 내를 물었던 뱀도 이제 큰 구렁이가 됐을 것이다. 요런 숭악한 것들의 해니 다들 조심하길 바란다. 숭악한 요것들은 우리를 올해 중 한 번쯤은 우리를 아프고 힘들게 할 것이고 그 뒤엔 뜻밖의 선물만 놓고 홀라당 내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뱀이 주는 뜻밖의 선물만 받으면 더더욱 좋고.
/김윤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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