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너리댁의 밥상> 사랑은 다른 말로 얼음
얼음틀 탈탈 털어 간식 만들고
손녀 이웃에 무심히 '슥' 주고
또 얼음 얼려놓으려 왔다갔다
뜨거운 여름 무거워진 몸에도
아무 대가 없는 할머니의 사랑
한여름 고개 드는 능소화 같아
최대한 바닥에 붙어 있다. 차가운 바닥이 내 온도로 미지근해지면 자리를 한 뼘 옮겨 또 다른 냉기에 찰싹 붙는다. 이리저리 거실 바닥을 옮겨다닐 때마다 '쩌억'하고 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이처럼 여름은 모든 것이 주욱 늘어난다.
장마가 물러가면 그 자리는 여름 아지랑이가 채운다. 눈앞에 보이는 아스팔트 도로가 초마다 일렁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아지랑이의 힘은 강해진다. 여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뜨거운 아지랑이 앞에 맥을 못 춘다. 집 앞 전봇대 전깃줄도, 여무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푹 꺾인 마당 토마토 가지도 모두 여름의 영향권에 있다. 여름을 벗어날 수 없는 나도 별수 없이 뜨거운 중력에 이끌려 한없이 축축 늘어진다. 중력이 커지니 시간도 느리게 가는 듯하다. 지난달 하지를 넘긴 후 낮의 길이는 짧아진다고 하는데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도 낮은 꺼질 줄 모른다.
맹렬한 더위의 공격이 사그라지기만을 바라며 힘을 빼고 있을 때 그래도 한 번 더 힘을 내는 이들이 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도 끈적하게 발을 잡아두는 뜨거운 중력에 움직이는 것조차 전의가 상실되는 이 날씨에도 집집이 부지런히 냉동실의 얼음 틀을 채우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 집의 얼음을 책임지는 사람은 잔너리댁 우리 할머니이다.
음력으로 6월 중순, 그러니까 양력 7월께부터는 한동안 손길을 주지 않았던 얼음 틀을 꺼내 구석구석 닦아준다. 얼음 틀 하나에 얼음이 18개, 틀이 2개니 36개가 나온다. 아침마다 타 먹는 맥심골드믹스에는 얼음이 3개면 충분하니 한 번 얼려두면 혼자서는 일주일은 더 넘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놀러 오는 부산댁한테 줄 냉커피에 3개, 담벼락 너머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지은이네한테 미숫가루에 설탕 조금 넣고 시원한 물로 타서 얼음을 들이부으면 나흘이면 얼음이 동나기도 한다.
오늘은 윤지가 좋아하는 맷국(오이냉국)을 만든다고 얼음을 좀 썼더니 엊그제 얼린 얼음을 다 써버렸다. 불을 쓴 것도 아닌데 날이 더우니 오이 썰고 좀 움직였다고 또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거실 대자리에 몸을 좀 뉘어 땀도 식히고 무릎도 좀 쉬게 하고 싶지만 그래도 다시 무릎을 부여잡고 싱크대 앞에서 얼음 틀에 물을 채운다. 오늘 얼려봤자 내일 오전 커피에 여문 얼음을 넣을 순 없겠지만 내일 오후에는 윤지가 퇴근하면 간식으로 만들어 줄 미숫가루에 꽝꽝 언 얼음을 넣어줄 수 있으니 말이다.
얼음 틀에 물을 적당히 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가득 붓거나 틀보다 적게 부으면 나중에 얼음을 빼먹는 데에 애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틀에 물이 찰랑찰랑할 때까지 붓고 조심스럽게 냉동실 맨 위 칸으로 손을 올리면...문디! 어깨가 안 올라가서 틀 안에 있던 물을 홉 신 뒤집어썼다. 곱실곱실한 머리에 묻은 물을 손으로 털어내고 다시 물을 찰랑찰랑할 만치 받아서 이번에는 숨을 참고 팔을 들어 틀에 한 번에 끼워 넣었다.
매번 얼음을 얼릴 때마다 뻣뻣한 어깨와 냉동실 위 칸보다 아슬아슬하게 큰 키 때문에 애를 먹지만 요령이 생기지 않아 고생한다. 볕이 뜨거울수록 수고로움이 늘어나지만 그래도 돈 안 들이고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어서 36개의 얼음이 여물게 얼어있을 때면 곳간이 가득 채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얼음을 얼리는 것은 지구가 내일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것과 같다. 너무 거창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 품을 들여도 바로 결과물이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내가 그것을 누리지 못할지라도 남을 위해 일을 한다는 점에서 뜻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할머니가 인류의 희망을 위해 얼음이 떨어지지 않게 채우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얼음은 할머니의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마음일 것이다. 당장 내 불편을 없애지 못해도 내 주변인들의 불편함은 해소해주기 위한 행위일 것이니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건 우리 집만의 일은 아니다. 어느 집이나 여름에 냉동실에 얼음을 가득 채워두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얼음은 우리의 지겨운 여름 낮을 버틸 수 있는 시원한 간식이 될 수도 있고 날카로운 볕에 그은 피부를 다독여주는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그들이 만드는 것은 단지 얼음이 아닌 사랑이라는 것이다. 한없이 땅이 끌어당기는 이 여름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무 대가 없이 수고로움을 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들은 집집이 한여름에 피어나는 능소화일지도 모른다. 만물이 바닥으로 향하는 이 여름에 기어코 볕에 맞서 고개를 드는 것은 오롯이 능소화뿐이니 말이다.
덥다 못해 소름 끼치는 이 위험한 여름을 버틸 수 있는 모두에게나 미치는 뜨거운 중력을 이겨내는 능소화 같은 이들 덕분이다. 그리고 올해도 우리 집에 피어난 능소화 덕분에 나는 무사히 여름을 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번 주말엔 조용히 얼음을 준비해 주는 이들을 위해 감사의 표시로 시원한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냉면이나 콩국수 한 그릇 대접해 보는 건 어떨까?
(참고로 저는 할머니께 얼음이 동동 떠있는 콩국수를 대접했습니다.)

/김윤지 하동군청 근무
※ 필자소개 (얼떨결에 담담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지만 속은 아주 기름지답니다. 간혹 글에 누런 기름이 뜨더라도 페이퍼타월처럼 저를 감싸주시고 닦아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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