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이란 단어가 점점 익숙해져만 가는 시대다. 모든 사회경제적 요소가 서울에 집중되었음을 가리키는 ‘서울 공화국’이란 단어가 등장한 지도 이미 오래고, 지방은 날이 갈수록 쇠퇴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특히 청년들에게 이 단어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지방 청년들은 지방에 머무르면 좋은 일자리와 보고 즐길 거리를 누리기 어려울뿐더러, 서울 청년들보다 힘겨운 삶을 살 것이란 암시를 공유한다. 지역의 어른들도 인구유출을 걱정하지만, 내 자식은 서울로 가길 바라며 더 좋은 삶을 지역 바깥에서 그리기에 함께한다.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지역
우리가 속한 사회는 이미 노동자 다수가 비정규직이다. 거기에 특수고용 노동자들,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들까지 포함하면 불안정한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사회 전반에 걸쳐 많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회를 향해서 어떤 것이 불합리한 부분인지 소리를 내고 꿈틀거리며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노조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나왔다. 바로, 이다.책에는 아사히 비정규직지회가 어떻게 세워지는지 조합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중심으로 담겼다.
서늘해진 날씨에 여름옷을 정리하고 가을옷을 꺼내 들었다. 일 년에 네 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할 때면 떠나보내는 계절을 향한 아쉬움과 다가오는 계절에 대한 설렘이 함께 뒤섞인다. 특히 길었던 여름을 보내고 짧은 가을을 맞이할 땐 마치 편애라도 하듯이 그 설레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 우리 곁을 잠깐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올해는 조금이라도 머물다 가길 바라는 애틋한 간절함도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는다.그러나 옷장을 정리했던 것이 무색하게끔 올해도 가을은 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휘몰아치는 매서운 바람과 뼈를 시
어느 날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속도로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한 사람의 삶에서도, 어떤 부분은 착실하게 어른이 되어가지만, 또 어떤 부분은 하염없이 어린 채로 남는다는 것을.스물두 살이 되어서야 바느질하는 법을 처음 배운 나는, 삶에서 꼭 필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를 여태껏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시절, 체육 시간에 골을 넣을 때마다 박지성처럼 모랫바닥을 무릎으로 쓸며 세레모니를 했던 나. 그 무릎 구멍을 메우는 것은 다 어머니의 몫이었다.아홉 살에 처음으로 달걀 프라이 하는 법을 배웠고, 열 살에는 밥통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사회생활을 한 지 곧 10년이 된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나 자신이든 세상이든 변화에 대해 조금은 체감을 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그 중 하나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체감상 코로나 때부터였던 것 같다. 여긴 지방인데도 내 또래의 사람들이 외제차를 몰고 다니거나 비싼 명품을 SNS에 자랑삼아 올리기 시작했다. 항상 부자들이야 있었겠지만 왜인지 갑자기 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은 느낌….점차 주변 사람들이 주식, 코인에 대해서 이
난데없이 한국 땅에까지 밀려온 미국 보수 인플루언서 찰리 커크에 대한 추모 물결은 가히 죽은 자인 찰리 커크가 살아있는 이 땅의 보수세력을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아 보였다. 그에 대한 추모의 물결은 그의 생전 문제가 되었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나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극단적인 배타성의 문제를 덮을 만큼 강력해, 어느 매체도 공공연히 비판하지 못했다. 서울 시내 곳곳에 국화꽃 더미와 함께 “우리가 찰리 커크다”라는 문장이, 노골적인 혐오 표현들에 둘러싸여 전시되었다. “짱깨, 북괴, 빨갱이는 대한민국에서 빨리 꺼져라” 등의 멸공과
오늘날 농촌이란 무엇인가? 농촌 문제를 고민하는 연구자로서, 오래전부터 화두였던 질문이다. 많은 이에게 농촌은 고령화·저출생, 지역소멸, 공동체 해체 등 이미지로 점철되어 ‘살기 힘든 곳’의 전형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이렇게 다시 질문하고 싶다. 정말 농촌을 이루는 모습이 그것뿐인가?전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농촌의 모습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농촌 공간은 도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모습을 지닌 사람·자연 관계가 얽힌 움직이는 현실이다. 곳곳이 사회문제 균열들로 가득하지만, 각각의 사정과 이해관계에 따라 이러한 문제에 순
창원시가 올해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산후 도우미) 사업 예산을 편성했으나 일찍이 전액 소진돼 세 차례 추경으로 보완했다. 그럼에도 예산이 또 바닥난 것은 단순한 회계 상 문제를 넘어 창원 지역 출산과 돌봄 체계 전반의 취약성을 드러낸다.2024년 12월 26일 는 ‘창원시는 2024년 편성한 42억 3800만 원의 예산을 추가경정으로 9억 6000만 원·5억 700만 원·7400만 원을 보태는 등 긴급조치를 반복했다가 결국 지급 지연과 환급 중단 사태를 맞았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해가 바뀐 올해에도 계속 예산 부족으로
한국서도 미등록 이주민 혐오·폭력반인권적인 단속과 묵인 반성해야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 317명이 대거 구금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비자 문제로 벌인 일로 무장한 요원들이 공장을 급습해 한국인 노동자들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이들을 체포하는 당시 사진과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우리 국민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한국인 노동자들의 손과 발에는 수갑과 쇠사슬을 채워져 있었고 심지어 허리에도 쇠사슬이 둘려 있었다.구금되었던 한국
나에게 음악은 지금까지 쭉 ‘좋은 것’이었다. 음악을 하는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휙휙 바뀌지만, 그렇다고 음악이 싫은 것이 된 적은 없었다. 그 좋은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무대에 올랐다.누군가는 그런 나를 치켜세워 주기도 하고, 동경하기도 했다.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오래 살아 있지 못했다. ‘잘해야만 하는’ 음악은 때때로 내 마음을 복잡하게 휘저어놓았다. 이런 마음으로 계속 음악을 해도 될까?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무대와 관객석보다 더 가까이, 내가 서 있는 곳에 사람들을
벌써 보수 언론들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이 ‘노조 전성시대’를 만든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한국지엠 비자 레알 사장도 노란봉투법 때문에 본사가 철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했는데 이것이 언론을 통해 기정사실인 것처럼 확산하고 있다.정말로 한국지엠은 부평 1공장과 창원공장 중 한 곳을 곧 폐쇄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는 노란봉투법 때문이 결코 아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공장 폐쇄를 오래전부터 우려해왔다. 한국지엠이 군산공장을 폐쇄한 2018년 이후 산업은행으로부터 혈세 8100억 원을
광복절을 전후로 해서 7박 8일간 만주-연해주 지역 독립운동 현장을 돌아보는 역사 기행을 다녀왔다. 신흥무관학교 옛터부터 봉오동을 거쳐, 러시아 최초의 한인 정착촌과 독립운동 활동지 및 강제 이주와 재정착을 겪은 고려인들의 삶의 현장을 보았고, 하얼빈으로 돌아와 김좌진과 안중근을 마주했다.기행은 긴 암흑의 역사를 넘어서기 위한 의인들의 투쟁 전 과정을 이해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쇠락해 가던 조선의 동학농민혁명과 의병 투쟁으로부터 이어져 국내의 한계를 넘어 강토와 민중의 삶을 온전하게 만들고자 국외로 떠났다. 낯
제주도에 다녀왔다. 이번에 제주에서 알게 된 건 '곶자왈'이라는 곳이었다. 곶자왈이란, 제주도의 독특한 지형과 생태계를 형성하는 숲을 일컫는다. '곶'은 '숲', '자왈'은 '가시덤불', '무언가 얽혀있는 모양'의 합성어라고 한다.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점성 높은 용암이 굳어지면서 형성된 불규칙한 암괴지대에 나무와 덩굴 식물이 자라나 원시림 같은 숲을 이룬 곳을 말한다. 곶자왈 지역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소개되었다. 이런 곶자왈 지역은 제주도에서 10% 미만으로 있
이번 여름은 더위를 식힐 겸 인생 첫 '스노클링'을 하고자 작은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그렇게 제법 달렸을까, 목적지를 향해 점점 속도를 높이던 배가 갑자기 속도를 급격히 줄였다. 이유가 뭐지? 배가 고장이 났나? 걱정이 돼 보트 주변을 둘러보니 아뿔싸 수많은 쓰레기가 배 주변을 넓게 둘러싸고 있었다. 바로 바다를 떠도는 쓰레기 더미 사이를 안전하게 지나가려고 배 속도를 줄인 것이다. 쓰레기 더미에는 낡은 비닐봉지부터 플라스틱 페트병, 그리고 찢겨 형체를 알 수 없는 자잘한 쓰레기들까지. 바다를 떠도는 해양쓰레기에 관
괜한 소리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한 동생이 "요즘 농사일은 어때?"하고 묻길래, 장마가 너무 빨리 끝나 걱정이라고 했다. 안 그래도 여름이 길어져 걱정인데, 장마까지 슬쩍 지나가 버리니 한참 남은 무더위를 작물들이 버텨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런 농부들 마음을 들은 건지, 이젠 정말 손 쓸 수 없는 기후가 된 것인지, 반년 동안 와야 하는 비가 사흘 만에 쏟아졌다.급하게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구들에 물이 차서 물을 급하게 퍼내야 한다고 했다. 서둘러 옷을 챙겨입고 나갔다. 밖에는 장대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양동이로
오래 아프시던 할머니가 끝내 돌아가셨다. 몇 년의 마음의 준비 기간이 있었던 만큼,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게 처음이라서,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지 많이 막막했다.아버지에게는 모친상이지만 나에게는 조모상이라서 주변에 많이 알리지는 않았다. 내가 7살까지, 엄마·아빠가 맞벌이를 해 나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동안 매일 함께하며 돌봐주고, 먹여주고, 놀아주었던 할머니였다. 또 다른 엄마라고 할 수 있어서, 꽤 상심이 컸다.기쁜 일은 못 가더라도, 슬픈 일은 꼭 가보라고 했던가, 그 말의 의미를 체감
근래 탐조(새를 관찰하는 활동)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휴일이면 동료들과 쌍안경을 매고 도시의 근린공원을 누비며 작은 새들의 자취를 좇는다. 평생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탐조는 처음으로 내가 사는 도시 공간이 인간뿐 아니라 다른 생물종들의 어엿한 터전임을 몸소 깨닫게 하는 활동이었다. 알지 못했던 새들의 모양과 색깔과 습성과 소리와 이름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즐거움은 늘 새롭다.도시에서 탐조를 하다 보면 새들이 어디에 둥지를 트는지, 무엇을 먹이로 하고 무엇의 먹이가 되며, 어떻게 번식하거나 사라지는지 그 총체적인 생애과정과
온 국민을 힘겹게 만들었던 겨울의 시간이 국민주권정부 성립으로 한 국면을 넘겼다. 그러나 내란은 온전히 끝나지 않았다. 관련자들의 처벌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대선 과정에서 보았듯 내란을 옹호하거나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이들은 여전히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그동안 멈춰 있던 수많은 과제 해결 요구에도 새 정부가 쉽사리 급진 개혁을 내세울 수 없게 한다.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6월 23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했다. 송 장관은 전 정부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농업 4법(양곡관리법·농안법·농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반기업 정책을 펼치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일하는 시민을 대표해 노동 행정을 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이중 메시지다. 언뜻 '일하는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을 접하면 '노동자들을 일컫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앞에 문장과 결합해 문맥을 파악하면 교묘하게 듣는 이를 속인다. 자신은 더는 '노동자'가 아니라 '일하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노동부장관'의 위치에 서서 행정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친기
14일, 장마가 시작되며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 예보를 보고 며칠 전부터 기상을 확인하며 걱정했다. 그런데 이 간절함을 하늘도 알았는지 당일엔 걱정한 것이 무색할 만큼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이날은 26회 서울퀴어페레이드가 개최된 날. 나는 난생처음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가했다. 형형색색 옷을 입고 무지개 팔찌를 착용한 사람, 무지개를 얼굴에 그린 사람 등 화려하고 밝은 색상의 옷과 액세서리로 꾸미고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밝은 에너지가 넘쳤다.오전 11시에 시작한 퀴어퍼레이드는 오후 2시가 되자 행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