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장마에 농사 걱정했는데 폭우 침수
생각보다 너무 빨리 현실이 된 기후 위기

괜한 소리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한 동생이 "요즘 농사일은 어때?"하고 묻길래, 장마가 너무 빨리 끝나 걱정이라고 했다. 안 그래도 여름이 길어져 걱정인데, 장마까지 슬쩍 지나가 버리니 한참 남은 무더위를 작물들이 버텨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런 농부들 마음을 들은 건지, 이젠 정말 손 쓸 수 없는 기후가 된 것인지, 반년 동안 와야 하는 비가 사흘 만에 쏟아졌다.

급하게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구들에 물이 차서 물을 급하게 퍼내야 한다고 했다. 서둘러 옷을 챙겨입고 나갔다. 밖에는 장대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양동이로 물이 가득 찬 구들에서 물을 퍼내는데, 비가 어찌나 세차게 내리는지, 네 사람이 물을 퍼내는데도 퍼내는 것보다 빠르게 물이 찼다. 물이 다시 차는 것을 막으려고 벽돌을 둘렀지만, 벽돌 틈으로 물이 새어 들어와 금세 다리가 잠길 정도로 물이 찼다.

겨우겨우 물을 다 퍼내고, 구들 문을 비닐로 막아두었다. 온몸이 홀딱 젖은 채로 돌아오니, 누가 빨대로 빨아간 것처럼 기운이 쭉 빠졌다. 바지에 물이 차서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았다.

옷을 갈아입고 앉으니, 이웃들 생각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단톡방에서 소식과 안부가 오가고 있었다. 하천 가까이 사는 이웃들은 특히 긴장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집 앞 강물이 불어나서, 벌써 윗마을로 피신을 왔다는 소식도 있었다.

비는 쉽사리 그치지 않았다. 전봇대가 무너진 것인지 갑작스레 정전이 되었다. 전기가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하는 것도, 노는 것도, 심지어 밥해 먹는 일도 전기가 있어야 했다. 촛불을 밝혀 책을 읽고, 아침으로 먹고 남은 빵과 시리얼로 끼니를 때웠다.

생필품을 좀 사 오겠다고 나가셨던 아버지가 금방 돌아오셨다. 마을 들머리가 완전히 무너져 내려서 차로 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꼼짝없이 갇혀버린 것이다. 높은 지대에 있는 우리 집도 이 정도인데, 아랫마을은 어떨까, 걱정이 되었다.

휴대전화가 꺼져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아졌다. 이제 비는 지긋지긋하다는 농부들 마음이 또 한 번 하늘에 닿은 것처럼, 마지막 구름 한 점까지도 모조리 몰고 갔다. 새파란 하늘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전기가 들어와서 휴대전화를 켜보았다. 멀리 있는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 연락, 그리고 피해 상황을 나누는 이웃들의 메시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비 온 뒤 생강밭 모습이라고 올라온 사진에는, 밭이 없었다. 하천에 물이 불어나면서, 밭으로 가는 길이며, 밭에 흙까지 모조리 쓸려 가버린 것이다. 길에는 커다란 고목들이 나뭇가지처럼 쓰러져 있었다. 땅은 갈라지고, 부서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도 많았다. 사진을 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가끔 오가면서 들여다본 게 전부인 나도 이런데, 밭 주인들은 얼마나 허무할까?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었다.

그동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기후 위기에 관한 책을 보고, 강의를 듣고, 친구들한테도 훈계하듯 떠들고는 했다. 내 마음속에 기후 위기는 어디까지나 앞으로의 대한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김수연 청년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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