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발전한다며 개발 반복할 게 아니라
‘살아갈 곳’의 주체가 설계할 수 있어야

‘지방소멸’이란 단어가 점점 익숙해져만 가는 시대다. 모든 사회경제적 요소가 서울에 집중되었음을 가리키는 ‘서울 공화국’이란 단어가 등장한 지도 이미 오래고, 지방은 날이 갈수록 쇠퇴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특히 청년들에게 이 단어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지방 청년들은 지방에 머무르면 좋은 일자리와 보고 즐길 거리를 누리기 어려울뿐더러, 서울 청년들보다 힘겨운 삶을 살 것이란 암시를 공유한다. 지역의 어른들도 인구유출을 걱정하지만, 내 자식은 서울로 가길 바라며 더 좋은 삶을 지역 바깥에서 그리기에 함께한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지역이 붕괴하리라 생각할까? 지방소멸론은 서울로 모든 것이 초집중된 상태에서, 인구유출로 말미암은 지역 경제의 쇠퇴와 지방 시민 삶의 질 저하 문제를 ‘소멸’이란 용어로 명시한다. 실제 지역이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던 지역민들, 그리고 잠시 나가더라도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는 청년들 모두에게 이 단어는 지방이란 공간 자체에 대한 희망을 잃게 한다. 현실의 문제를 개선해야 하지만, 소멸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개선의 의지조차 갖추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지방은 서울보다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다. 그 어려움은 현실의 제약을 드러낼 뿐, 그 현실 자체가 무너짐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지방소멸 담론을 소비한다. 특히 정치인에게 지방소멸 담론은 가장 내세우기 좋은 구호다. 지방소멸을 근거로 지역개발을 내세워 지지를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멸하지 않기 위해, 청년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이들은 지역 소멸의 대안을 내세운다. 메가시티 조성, 대규모 건설사업, 공공기관 이전, 잼버리와 올림픽 같은 성대한 이벤트 등 온갖 개발 정책이 공약으로 내세워진다. 문제는 그것이 진정 지역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작용해 왔느냐다.

‘지역균형발전’이란 이름 아래 여러 개발 사업들이 진행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오늘날 지역의 현실은 어떠할까? 공공기관 유치 경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청년들의 유출은 계속되고 있다. 거대 이벤트는 비슷한 레퍼토리의 형태를 양산하거나, 부실 관리와 파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공공기관 유치와 대규모 건설 사업이 정확히 지역민들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줬는지는 명확히 다뤄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이 역시 모호하다.

결국, 지방소멸 담론은 현실의 위기를 진단하는 언어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쉽게 활용 가능한 프레임으로 작동해왔다. 담론은 위기의 크기를 과장하고, 해결책으로는 개발주의적 상상력만을 반복한다. 하지만, 지역이 처한 위기는 단순히 인구의 수나 기반 시설의 부족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관계를 맺으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조건의 부족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에 대한 고민이다. 개발이 아닌, 머무름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적 조건. 개발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지역 가꾸기의 주체가 되는 시민. 삶의 질을 공급받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지역 주민. 이들이 중심에 놓일 수 있을 때, 지역은 소멸이 아닌 ‘변화’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지방소멸’이라는 언어로 현실을 규정짓는 대신, 우리는 다시 지역을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상상하고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개발주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논리가 필요하다. 지역을 위한 정치는,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과 관계, 그리고 선택을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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