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많은 것에 다른 이의 손 필요해
혼자가 아니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어느 날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속도로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한 사람의 삶에서도, 어떤 부분은 착실하게 어른이 되어가지만, 또 어떤 부분은 하염없이 어린 채로 남는다는 것을.

스물두 살이 되어서야 바느질하는 법을 처음 배운 나는, 삶에서 꼭 필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를 여태껏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시절, 체육 시간에 골을 넣을 때마다 박지성처럼 모랫바닥을 무릎으로 쓸며 세레모니를 했던 나. 그 무릎 구멍을 메우는 것은 다 어머니의 몫이었다.

아홉 살에 처음으로 달걀 프라이 하는 법을 배웠고, 열 살에는 밥통에 쌀을 안쳐 간장 계란밥을 해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학교에서 무얼 배웠는지는 솔직히 기억나지 않지만, 밥 짓는 법은 여전히 살아남아 내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밥을 할 줄 안다는 것이, 때로는 자부심이 되기도 했다. 스스로 삶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밥을 할 줄 알게 된 지 칠 년이 지나서야, 쌀 한 톨이 나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계와 사람 손을 거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과정이 아주 고단하다는 것도.

그 과정이 쌀뿐만 아니라, 내가 먹고, 마시고, 입고, 만지는 모든 것에 존재한다는 것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된 것은, 아마 스무 살은 되어서였을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된 데에는 서정홍 농부 시인님의 역할이 컸다.

선생님은 늘 “오늘 내가 있기 위해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도움을 준 사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하나로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때 100원짜리 동전을 거슬러주었던 아주머니나, 주유소에서 기름을 다 넣으면 꼭 차 문을 손바닥으로 탕탕 치는 삼촌도 있는 것이었다.

그분들이 없었더라면 내 삶은 어떻게 됐을까? 똑같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서로 아주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 삶에서 자랑거리라 할만하다.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의미이다.

예전에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이 될수록 내가 혼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는지를 느끼게 된다.

나는 여전히 길 찾는 것이 서툴고, 매듭을 단단하게 맬 줄 모른다. 노래를 부를 때도 부를 수 없는 음역이 있고, 레시피만 가지고는 따라 할 수 없는 손맛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삶을 성큼성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나 대신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해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들은 나를 도울 것이고, 나도 물론 그들을 도울 것이다. 때로는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사실을 나는 스물일곱에 배웠다. 그리고 스물여덟이 된 나는, 이 글을 쓰며 지난날을 돌아보고 있다. 어떨 때는 빠르고 또 어떨 때는 느리다고 느꼈지만, 지나고 보니 결국 내 속도대로 살아온 날들. 나는 앞으로도 여러 가지 일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영 잘하지 못하는 일도 있겠지.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영 잘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곳을 채우는 이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고, 나는 그 사실을 고마워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고마울 일이 늘어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김수연 청년농부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