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만날 수 없음에 화나고 미안해져
대체 불가능한 존재들 그저 감사할 뿐

오래 아프시던 할머니가 끝내 돌아가셨다. 몇 년의 마음의 준비 기간이 있었던 만큼,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게 처음이라서,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지 많이 막막했다.

아버지에게는 모친상이지만 나에게는 조모상이라서 주변에 많이 알리지는 않았다. 내가 7살까지, 엄마·아빠가 맞벌이를 해 나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동안 매일 함께하며 돌봐주고, 먹여주고, 놀아주었던 할머니였다. 또 다른 엄마라고 할 수 있어서, 꽤 상심이 컸다.

기쁜 일은 못 가더라도, 슬픈 일은 꼭 가보라고 했던가, 그 말의 의미를 체감할 수 있었다. 가까운 친구들이 와서 함께 있어 줘 위로가 많이 됐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걸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친구들의 슬픈 일에도 꼭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했다.

"이제 언니 다음은 내 차례라며 우리 남매가 몇 명 남지 않았다"는 이모할머니 말씀을 들을 때는, 나이가 들면 죽음을 차례처럼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도 처음 인식을 하게 됐다.

둘째 날 밤, 새벽 3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할머니 흔적을 조금이라도 더 찾고자 나는 장례식장에서 친척 어른들 옆에 앉아서 할머니의 삶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할머니 입으로는 절대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많았다. 서러움, 기쁨, 분노, 절망, 좌절…. 모두 풀어놓고 마음이 좀 가벼워지셨으면 좋았을 텐데, 항상 남편을 위해, 아들들을 위해, 손주들을 위해 사시느라 그 마음 하나 풀어보지 못하고 혼자 삭히시다가 끝내 돌아가셨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가슴이 미어졌다.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 영정사진을 보면서 모두가 지쳐 잠든 시간 혼자서 눈물을 찔끔거리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도 화가나고 미안하고 답답하고….

아침에 발인을 하고 납골당에 모시고 급하게 돌아와 일터로 출근했다. 퇴근 뒤에는 밀린 잠을 잤다. 할 수만 있다면 며칠 내내 자고, 또 자고, 잠만 자고 싶은 기분이다, 하지만 이번 주는 그럴 수가 없는 바쁜 일정들이 가득한 한 주다.

다들 이렇게 슬프고 힘들 때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려고 노력하는 건가, 노력하면 그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내 앞에 놓인 일들을 열심히 했다. 우리 할머니도 서럽고 힘들 때 어떻게 하나하나 참아가면서 살아나가셨을까, 나 어릴 때는 항상 밝게 웃는 모습만 보여주시던 할머니인지라 그 웃음 뒤에 어떤 마음이 숨겨져 있는지 몰랐는데, 우리 할머니 참 대단한 여자였구나 싶다.

이제 다시는 볼 수가 없어서 오래도록 슬프고, 그리울 것 같다. 어떤 존재로도 대체될 수 없는 게 관계인 것 같다. 우리 집 강아지가 나에게 특별한 존재지만 할머니를 어떻게 대체하겠는가, 동네 할머니들이 계시지만 그들이 나의 6살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엄마를 대체할 수 없듯, 할머니도 대체할 수 없다.

삶이란 대체할 수 없는 존재를 잃어가는 과정인 것도 같다. 살려면 관계들이 필요하다. 그 관계들을 언젠가 잃을 것이라는 것은 예정된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나를 있게 해준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그들이 떠나갔을 때 소중하게 추억 해야 할 따름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삶에 아름답게 존재하려고 애써야 할 따름이다.

/이효정 청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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