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퍼레이드 뜨거웠지만 혐오도 여전
차별금지법 제정 미루는 자는 공범이다
14일, 장마가 시작되며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 예보를 보고 며칠 전부터 기상을 확인하며 걱정했다. 그런데 이 간절함을 하늘도 알았는지 당일엔 걱정한 것이 무색할 만큼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이날은 26회 서울퀴어페레이드가 개최된 날. 나는 난생처음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가했다. 형형색색 옷을 입고 무지개 팔찌를 착용한 사람, 무지개를 얼굴에 그린 사람 등 화려하고 밝은 색상의 옷과 액세서리로 꾸미고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밝은 에너지가 넘쳤다.
오전 11시에 시작한 퀴어퍼레이드는 오후 2시가 되자 행사장 안으로 인파가 가득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행사 부스 거리를 더 넓히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난해에 비해선 넓어진 거라고 한다. 주최 측 설명으로는 이번 퀴어퍼레이드에 약 15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파가 다녀갔다고 한다.
행사 부스 안에는 다양한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었고 행사장 곳곳에는 퀴어페레이드를 지지하는 현수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꼭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었다. 차별금지법은 2020년에 정의당 소속 장혜영 국회의원이 발의했지만 일부 기독교세력을 중심으로 한 반대세력과 정의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은 소극적이거나 반대함으로써 결국 법안은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이번 6.3대선 1차 토론회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이재명 후보에게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이냐 물었고 이재명 후보는 "복잡한 현안들이 많이 얽혀있어 이걸로 새로운 논쟁, 갈등이 심해지면 지금 당장 새롭게 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렵다"는 부정적 답변을 내놓았다. 이에 권영국 후보는 "영원히 못 할 것 같다"고 따끔하게 일침 하였다.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모든 정치권에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뤄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보편적 권리를 존중해 달라는 것인데 그것이 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혐오세력이 내뱉는 성소수자들을 향한 멸시와 차별을 정치권이 바라만 보는 것은 방임을 넘어 그 세력에 동조하는 공범이다. 이제는 제정해야 한다. 언제까지 부스 안에서만 자유로워야 하는가.
퍼레이드에 참가한 사람 모두 그 행사장 안에서만큼은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본인을 그대로 드러내며 자유로웠다. 하지만, 행사장 밖으로 나가는 순간 확성기를 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혐오 단어들을 쏟아내는 세력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일상을 다시 살아가야 한다. 이는 학교에서, 군대에서,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삶 자체가 부정 당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그 울타리 안에서만 자유로워야 하는가.
앞서 말했듯이 비교적 올해는 지난해보다 부스가 넓어졌다고 한다. 지난해보다 넓어진 부스가 기쁘면서도 그 자유를 겨우 이 울타리 안에서만 보장받는구나라는 씁쓸한 생각도 머릿속을 스쳤다. 내년 서울퀴어퍼레이드의 규모는 얼마만 할까. 우리의 권리는 얼마나 더 존중받을 수 있을까.
규모가 확장된 행사장 울타리 안에서만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누리를 것이 아닌 울타리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우리는 오늘도 무지개 깃발을 휘날린다.
/조은성 청년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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