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길고 저임금·노인 빈곤 심각
정년 연장·주4.5일제 해법은 반노동적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반기업 정책을 펼치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일하는 시민을 대표해 노동 행정을 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이중 메시지다. 언뜻 '일하는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을 접하면 '노동자들을 일컫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앞에 문장과 결합해 문맥을 파악하면 교묘하게 듣는 이를 속인다. 자신은 더는 '노동자'가 아니라 '일하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노동부장관'의 위치에 서서 행정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친기업적이다. 자영업자도, 거대기업 CEO나 재벌 임원진들도 '사업'을 하는, 즉 '일을 하는 시민'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을 두루 살피겠다는 메시지를, 노동자들의 반감이 최대한 덜하게 돌려 말한 것이다.

노조 위원장 출신이니까 확실히 언변이 화려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에 반해 김문수 전 노동부장관은 1980년대에 제조업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해 김영삼에게 영입되면서 정치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의 사상은 어느새 윤석열의 계엄을 옹호하며 극우 집회에 연사로 나설 정도로 나갔다. 그런 그가 노동부장관을 했으니 그의 말은 위선이 물씬 풍겼고, 그의 극우적 행보에 경악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김영훈 후보자가 노동부장관이 된다면 어떨까?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경제적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국가적 과제가 얼마나 중대한지 강조하면서 기업의 편에 서서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그는 "정년 연장, 주 4.5일제 등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이 또한 노동자들을 위한 공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임금이 아주 높고, 연금이 노후를 보장한다면 정년 연장이 왜 필요하겠는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노동시간이 길고, 그에 비해 임금은 낮고, 노인빈곤율도 높다. 노동자들이 정년 연장을 말한다면, '늙어서도 일을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공포에서 기인한 것에 가깝다. 저임금과 노인 빈곤 문제를 정년연장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친노동이 아니라 반노동적인 정책에 가깝다.

주 4.5일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라면(그 말은 시간당 임금의 대폭 인상을 의미한다)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지만, 그냥 주 4.5일제면 임금이 대략 20%씩 깎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노동자들이 환영할까?

김 후보자는 2017년도 정의당 활동을 시작해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대선캠프에 합류했다. 22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연합 비례 경선에 뛰어들었다. 그 뒤 윤석열이 파면되면서 민주당 총괄선대위에서 활동해 지금까지 왔다. 나는 '그의 꿈이 드디어 이뤄지고 있구나'하는 인상을 받았다.

정작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하고, 노동계는 별반 투쟁하지 않고 있다. 중동에서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면서 유가, 물가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조용히, 그러나 꾸준하게 삭감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것은 노조 출신 노동부장관도 아니고, 그의 화려한 수사도 아니다. 물가 인상보다 높은 임금 인상,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이를 통한 실업자들에게 일자리 보장 같은, 진짜 대책이다.

/이효정 청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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