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지도 못한 가을옷, 기후위기 실감
무분별한 생산과 구매가 더 악화시켜

서늘해진 날씨에 여름옷을 정리하고 가을옷을 꺼내 들었다. 일 년에 네 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할 때면 떠나보내는 계절을 향한 아쉬움과 다가오는 계절에 대한 설렘이 함께 뒤섞인다. 특히 길었던 여름을 보내고 짧은 가을을 맞이할 땐 마치 편애라도 하듯이 그 설레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 우리 곁을 잠깐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올해는 조금이라도 머물다 가길 바라는 애틋한 간절함도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옷장을 정리했던 것이 무색하게끔 올해도 가을은 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휘몰아치는 매서운 바람과 뼈를 시리게 하는 찬 기운이 10월 말 우리를 덮쳤다. 아직은 겨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나는 옷장 앞에 다시 앉아 가을옷을 정리하고 겨울옷을 꺼내 든다. 올해도 상쾌한 가을바람 내음 한번 맡지 못하고 다시 ‘퀴퀴한’ 옷장 안으로 들어가 버린 나의 옷들만 한 뭉텅이.

가을 재킷을 입기엔 이제는 춥고, 그렇다고 두꺼운 패딩을 입기엔 더운 애매한 날씨. 이런 날씨에 맞춰 패션업계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경량 패딩을 대거 출시했다. SNS에선 색깔별로 경량 패딩을 구매했다는 인증이 쏟아졌고, 브랜드별로 인기 있는 그야말로 핫한 경량 패딩을 구매해 소개하는 영상은 조회 수가 몇만을 달성하기도 했다. 고가 브랜드, 저가 브랜드를 불문하고 경량 패딩은 그야말로 효자상품이 됐다. 이렇게 SNS에서 모두가 제품의 장점만을 이야기하며 구매욕을 자극할 때 내 눈을 사로잡은 ‘쇼트’ 영상이 하나 있었다. 바로 “사지 마세요~”를 외치는 영상이었다. 브랜드별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을 소개하는 것은 같지만 제품의 단점을 이야기하고, 무분별하게 옷들을 생산해내는 패션업계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으며 짧은 영상은 끝났다.

그렇다. 항상 그래왔듯이 이렇게 유행을 확 타는 옷들은 한철 대량으로 생산되고 단숨에 유행이 끝나 옷장에 차곡차곡 쌓이거나 버려진다. 모두가 “사세요”를 외칠 때 누군가는 “사지 마세요”를 외쳐야 한다.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봄과 가을이 사라져 가는 건 기후위기 때문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필요 이상으로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습관 또한 기후를 악화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기후변화로 더 더워진 여름을 견뎌내기 위해 더 낮은 온도로, 더 강한 바람으로 트는 에어컨이 다시 기후를 악화시킨다는 것 또한 우리는 안다. 기업은 자연을 파괴해 자본을 얻고 우리는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편의와 물질을 얻는다. 그리고 그 대가는 이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정치권에서 기후위기 이야기를 하면 ‘먹고살기 힘든데 무슨 기후 이야기냐. 민생이나 신경써라’는 여론이 대다수였다. 특히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는 이러한 정서가 더욱 강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후위기가 내 삶과 직결된다는 것을 우리는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다. 폭등하는 농산물 가격은 우리의 밥상을 괴롭히고, 매년 여름마다 퍼붓는 집중호우와 매 겨울 발생하는 한파는 우리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기후위기는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즉, 기후위기가 곧 민생위기이다.

내년의 가을은 또 우리 곁을 얼마나 짧게 스쳐갈까. 이제는 더이상 우리 곁을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의 가을이 더욱 아쉽게만 느껴진다.

/조은성 청년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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