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밀어내고 만물의 천적이 된 인간
생태 공존 없으니 러브버그 창궐 반복
근래 탐조(새를 관찰하는 활동)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휴일이면 동료들과 쌍안경을 매고 도시의 근린공원을 누비며 작은 새들의 자취를 좇는다. 평생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탐조는 처음으로 내가 사는 도시 공간이 인간뿐 아니라 다른 생물종들의 어엿한 터전임을 몸소 깨닫게 하는 활동이었다. 알지 못했던 새들의 모양과 색깔과 습성과 소리와 이름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즐거움은 늘 새롭다.
도시에서 탐조를 하다 보면 새들이 어디에 둥지를 트는지, 무엇을 먹이로 하고 무엇의 먹이가 되며, 어떻게 번식하거나 사라지는지 그 총체적인 생애과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새들이 활공하는 하늘이나 울창한 나무 사이만큼 어딘가에 깔리거나 부딪치거나 공격당해 싸늘히 누운 도로 바닥의 구석진 곳도 살피게 되었다. 도시에서 새들의 가장 큰 천적은 유리창·자동차·길고양이·고압전선 등 인간을 위해 조성된 도시 환경 그 자체였다.
인간은 야생을 문명화된 도시 바깥으로 밀어냄으로써 맹금류와 같은 생태계의 포식자들이 비켜난 자리에 만물의 직간접적인 천적으로 우뚝 섰다. 새들을 위협하는 것은 인간만이 천적이 되는 환경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만이 모든 생물종의 유일무이한 천적이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인간이 혼자 살고 있다는 착각은 인간의 도시환경이 인지적이고 인위적인 통제로서 '살만한 조건'을 유지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진다.
그러한 착각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올여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창궐한 러브버그 사태였다. 지난 몇 해간 서울 서북권을 중심으로 말썽을 일으키던 러브버그가 전보다 빠르게, 더 많이 수도권 전역으로 퍼졌다. 러브버그의 확산이 '통제 불능'이었던 까닭은 천적이 부재했기 때문이었다. 도시 내에서는 천적에 의한 러브버그 개체수의 자연 조절 효과가 없어서 생물학적 방제에 한계가 있다. 정부에서는 살충제를 살포하기 바빴지만 인위적이고 성급한 방제는 도리어 천적을 몰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러브버그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하거나 없었던 지역에서는 이 사태를 강 건너 불 보듯 '수도권의 해프닝'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러브버그의 주요한 출몰 조건 중 하나가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기온상승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점점 더 예측불가능하게 닥쳐오는 기후재난으로부터 더는 안전한 곳은 없다. 러브버그 사태는 인간만이 궁극의 천적이 됐을 때 발생하는 비극을 보여준다. 인간이 모든 것의 천적을 자임하는 이상,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하는 불가능한 임무를 홀로 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다양한 천적이 살아있는 생태계가 필요한 까닭이다.
인간은 도시공간에 홀로 살아가지 않는다. 도시가 인간의 터전으로 조성된 와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도시공간을 공유하는 다른 생물종들이 있으며, 그들의 조용한 움직임이 우리들의 '살만한' 환경을 지탱하고 있다. 자연을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보는 궁극의 천적으로서 자의식을 버리고 이미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것들의 생태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러한 인식은 막연히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한다는 정언을 학습하는 것만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마치 새를 보는 일이 나에게 그러하였듯 우리 모두에게 공존의 감각을 일깨우는 일상의 작은 탐험들이 필요하다.
/백소현 프리랜스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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