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예뻐요. 산이 온통 빨갛게 물들었어요. 사진 찍어 기념으로 저장할까요?” 오랜만에 아빠 만나러 온 딸이 먼 산 바라보며 한 말이다. 기쁘게 같이 사진 찍으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요즘 애들 말로 ‘웃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소나무 재선충에 감염된 나무들이다. 여기도 빨갛고, 저기도 빨갛다. 얼핏 보면 붉은 단풍처럼 보이기도 한다. 순간 기후위기 시대를 헤쳐나가야 할 우리 아이들 미래가 걱정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해도 안타깝고 암울하다. 미안한 마음도 든다.예부터 소나무는 우리네 삶에 없어서
비둘기가 죽었다. 솜털 보송보송한 새끼 멧비둘기였다. 나뭇가지 몇 개로 얼기설기 엮어 대충 지은듯한 멧비둘기 집에서 새끼를 납치해왔다. 집에서 정성껏 키워볼 요량이었다. 어미와 생이별한 새끼는 식음을 전폐한 채 단식 투쟁에 돌입한듯했다. 결국, 죽고 말았다. 난감한 마음, 죄지은 느낌 가득 들어 뒷동산에 고이 묻어주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이야기다. 뒤늦게 알았다. 멧비둘기는 어린 새끼에게 ‘피존밀크’를 먹이는 특성을 가진 새였다. 피존밀크는 비둘기 젖이라고도 한다. 엄마와 아빠 모두 만들어 먹일 수 있다. 쌀과 보리, 콩을 번갈아
올여름 한반도는 폭우와 폭염이 여러 번 교차하고 있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이어지는 전통적인 여름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다들 기후변화를 거론하지만, 그 기후변화를 일으킨 게 사람이라고 보면, 인류는 온실가스 배출로 제 발등을 찍고 있는 셈이다.지구 기온은 가파르게 상승해 지난해 연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높았다. 파리 기후협정에서 정한 기온 상승 저지선이 일시적으로 뚫렸다. 올여름엔 경남에서만 300명이 넘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사망자까지 1명 나왔다. 폭염은 더 심해지고, 가뭄도 홍수도
강의 시간에 나는 학생들에게 뿔이 잘린 코뿔소가 초원에서 풀을 뜯는 사진을 보여주며 질문을 던진다. "누가 이 코뿔소의 뿔을 잘라냈을까." 학생들은 "밀렵꾼"이라고 대답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코뿔소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뿔을 자른 사람이 밀렵꾼이었다면 코뿔소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 속 코뿔소의 뿔은 밀렵꾼이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립공원 관리인들이 잘라냈다. 마취를 시키고 나서, 뿔을 제거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코뿔소가 밀렵꾼의 표적이 돼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과거 아프리카에서는 매년 1
여름 철새인 뻐꾸기는 동남아·아프리카 등 따뜻한 곳에서 월동한 뒤 한반도로 찾아와 5∼8월에 번식한다.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고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딱새 등 다른 새 둥지를 찾아다니며 알을 하나씩 낳는다. 탁란(brood parasitism)이란 형태로 숙주 새에 기생한다.둥지에서는 다른 알보다 먼저 나온 뻐꾸기 새끼가 뱁새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뱁새는 둥지를 독차지한 뻐꾸기를 자기 새끼인 줄 알고 부지런히 키운다. 뻐꾸기 새끼가 나중에는 어미 뱁새보다 덩치가 커지지만 그래도 계속 먹이를 물어다 준다.뻐꾸기·두견이·탁란찌
낙동강 물을 마시는 부산·경남지역 주민들은 녹조 외에도 걱정할 일이 더 있다.바로 발암물질로 알려진 과불화화합물이다. 낙동강 상수원수에서 과불화화합물이 다량 검출되는데, 정수장에서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과불화화합물은 탄화수소의 기본 골격에 불소 원자가 잔뜩 붙어 있는 화학물질로, 1만 종이 넘는다. 안정한 화학구조로 돼 있어 열에 강하고 가수분해·광분해·생분해가 잘 안된다.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로 불리는 이유다. 전선용 절연체, 소방용 거품, 조리기구의 테플론 코팅, 합성섬유 등에 사용된다.국내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어쩌다가 걱정거리가 됐을까. 걱정거리란 낙동강에서 번성한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 생산한 녹조 독소가 먼지·에어로졸 형태로 공기 중에 퍼졌고, 이것이 사람들 콧속에서 검출됐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지난 3일 낙동강네트워크와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등 민간 조사단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해 여름 97명의 콧속을 면봉으로 닦아내 분석했는데 절반 가까운 46명에게서 남세균 독소가 검출됐다.창원·밀양·합천·창녕 등 경남지역 참여자 47명 중 21명(45%)에게서도 검출됐다. 남세균이 만드는 독소
을사년(乙巳年) 뱀해인 2025년 새해가 밝았다. 탄핵 정국에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120년 전 을사늑약이 체결됐던 1905년만큼이나 날씨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그래도 2024년 한 해 지구촌은 극심한 폭염에 시달렸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 지구 평균 기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발표했다. 산업화 전인 1850~1900년 평균보다 1.5도 이상 올랐다.이런 기후변화 탓인지 경남지역 주요 식수원인 낙동강에서는 지난해 녹조가 유난히 심했다. 함안과 창녕 경계인 칠서 지점에서는 조류(藻類) 경보 '관심' 단계가 지금도 발령
가을이 깊어가면서 백조의 호수에서 겨울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주남저수지와 우포늪에는 1000마리가 넘는 고니류가 눈부시게 하얀 날갯짓으로 방문객들에게 감동을 선물한다. 지난밤 한 사람을 보내는 조시 속에 "세상의 가여운 사람을 모두 품어냈던 사람이여/ 한 그루 나무가 숲에서 말없이 서 있다 가는 것처럼/그대는 이미 이 세상을 살려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며 미소 짓기 바라오"라고 했다. 추모객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당신의 흔적을 더듬었다.그곳에서 옛 선비들의 올곧은 죽음 앞에 수없이 나부끼던 만장을 생각했다. 추모제에
우포따오기복원센터가 폐쇄되면서 조류인플루엔자(AI)로 또 주민들은 긴장한다.농림축산식품부는 올겨울에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감염된 철새에 의해 국내로 유입되고, 사람·차량 등의 매개체를 통해 바이러스가 농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농식품부·환경부는 일본을 경유해 유입될 수 있는 야생조류에 대응하고자 경남과 부산 지역 등 철새도래지에 대한 야생조류 예찰(미리 살피기)을 확대하고, 철새도래지 주변 도로와 인근 농가에 대한 소독도 강화한다.폭염이 누그러지고 가을 초입 북풍이 불어오면서 우포늪 등 낙동강을 찾
엊그제 뉴스에 경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경남도환경재단으로 통합 출범해 비전 선포식을 했다는 기사를 봤다. 경남도람사르환경재단은 시민사회가 제안하고 행정이 수용해 개최한 2008년 창원 람사르협약당사국총회 때 만든 국제적 브랜드를 가진 조직이다. 국제환경회의를 통해 획득한 '람사르'라는 브랜드는 경남도민의 귀중한 환경자산이다.그런데 이러한 자산을 왜 떼어내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필요에 따라 조직을 통합할 순 있다. 그러나 통합의 명분은 적어도 당시 이런 일을 한 전문가와 활동가들의 최소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그런데 2008년
중국 은 5월 25일 자에 '中 '길조' 따오기…멸종 위기서 구한 中(중)·日(일)·韓(한) 모범 사례'라는 기사를 보도했다따오기는 '동방의 보석'으로 알려졌다. 동아시아 지역 고유종인 따오기는 한때 멸종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중국이 한국과 일본에 우정의 선물로 따오기를 기증한 후 개체 수가 늘었다. 중국 '국가임업초원국' 통계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전 세계 따오기 개체 수는 1만 1000마리로 집계됐다.은 멸종 위기에서 부활한 '길조' 따오기는 이제 중·한·일 3국 우정의 상징이 됐다고 보도했다. 현
지난밤 솔부엉이가 별처럼 반짝이는 사랑 노래를 했다. 이웃인 오종식 우포늪해설사와 둘이서 달과 별, 밤을 가르는 새들의 사랑 소리와 검은등뻐꾸기가 갓 태어난 자식에게 보내는 울음소리를 미루나무 아래서 들었다. 이런 생태적 감수성을 우포늪을 방문하는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들려주는 기쁨을 생각하며 밤길을 걸었다.다음날 이른 아침에는 새벽 물안개 속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부지런한 왜가리 가족에게 "안녕" 하고 아침인사를 하며 해님을 향하여 두 손 모은다. 마침 어제는 환경의 날(6월 5일)이었고 오늘은 현충일이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우포자
오늘따라 내 고향 남쪽 바다가 그리운 날이다. 이수인의 '고향의 노래'를 들으면서 향수가 밀려온다. 특히 김재호가 쓴 노랫말은 우리 시대 삶의 한 표현이다. 어머니를 그리듯, 한 시대를 회고하는 가슴에 파동을 일으키는 글이 아닌가?마산에서 초등부터 마산교육대학까지 살았다. 잠시 시골 학교 선생 노릇 5년 후에는 다시 마산제일여중 선생 노릇 하면서 쉰일곱 살까지 살았다. 창녕 영산 외가에서 보낸 5년을 제외하면 50여 년을 마산역 앞과 교원·구암·자산동 한우아파트를 끝으로 창녕 우포늪으로 돌아왔으니, 가장 긴 세월을 마산만을 바라보며
오늘은 매화향 맡으며 동네 한 바퀴다. 나무며 새들에게 일일이 안부를 물었다. 따오기 한 마리는 거짓말처럼 내가 사는 창고도서관 앞에서 선회 비행하다 떠났다. 곧 봄을 맞아 도서관과 자연학교 겨울 묵은 때를 벗겨 내고 내부 정리를 해야겠다. 반가운 생명이 우포늪에 나타났다. 10여 년 전에 두루미(단정학) 한 마리가 우포늪에 나타나 이웃집 정봉채 사진가와 관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추억이 새롭다. 이번에는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궁금증은 곧 해소되었다. 페이스북에서 익히 보아왔던 두루미다. 그래서 거제 산촌 습지에서 지극정성
우포늪을 보며 세상 이치를 새로 배우고 있어요. 너무 좋아서, 도시에서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예요. 그렇지만 자연만 즐기고 있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13년 전 한 언론사가 왜 우포늪에 들어와 사느냐고 물어서 대답한 말이다. 오늘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말을 되뇌며 '비밀의 정원 우포늪'을 걷는다.1986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며 중학생이 유서를 쓰고 죽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나는 30대 초반 젊은 교사로 인문고로 진학할 아이들에게 쉼 없이 자율학습을 강요하던 시절이었다.
호사비오리가 우포늪에서 가까운 합천과 고령 사이로 흐르는 모래강에서 지난해에 이어 6쌍이 겨울을 나고 있다. 호사비오리는 백두산 산지, 중국 동북부 아무르 유역, 러시아 우수리 유역 등 원시림 계류 활엽수 구멍에서 번식한다. 호사비오리는 현재 지구 상에 1000여 마리가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매우 희귀한 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철원 하천 계곡에서 12마리가 관찰되었으며, 그 후 충남 대청호와 최근에는 강원도 춘천호, 진주 남강에 소수가 도래하여 월동한 것으로 관찰
"대한민국 국민과 외국인 981만 2157명이 사랑한 박람회.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오늘 폐막했습니다." 노관규 순천시장이 10월 마지막 날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나는 댓글을 달았다. "제10차 창원람사르협약총회는 후속 조치 부족으로 지역 생태자산을 순천정원박람회 같은 미래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제 순천시의 생태자산과 역사문화자산, 예술자산을 통합적으로 기획하여 아이들과 노인들의 일상적인 생태학습장으로 운영되어 지구촌의 대표적인 생태전환 민주시민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소원합니다. 그동안 애 많이 쓰셨습니다"라고.노 시장은 20
경북 안동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휘감아 물이 돌아 흐른다고 하여 '물동이동'이라고도 한다. 마을을 감싸도는 화천(花川)은 낙동강 상류이며, 그 둘레에는 퇴적된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서 경관이 아름다운 자연문화유산이다. 특히 1999년 방문했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곳에서 73세 전통 생일상을 받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국내외의 큰 관심을 받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은 세계자연기금(WWF) 총재로 한국을 방문한 뒤, 한국의 자연보전 활동가들을 영국으로 초청했다.필자는 이때 10박 11일 동안 자
경남도청 현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눈에 띄는 사진 한 장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주남저수지에 앉은 재두루미 떼 사진이다. 크기가 가로 5.7m 세로 2.7m의 대형 사진이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러시아와 중국 국경을 따라 아무르강(우수리강)에서 태어난 두루미류가 해마다 낙동강을 따라 이동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광활한 농경지가 펼쳐진 주남지에서 겨울을 나면서 가족들과 무리지어 볍씨를 먹고, 황혼빛이 물들면 일제히 날아올라 날갯짓하는 모습은 자연예술이다. 어둠이 내리면 갈대숲 아래 모래톱에서 서로를 확인하며 잠이 든다. 이런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