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거듭하며 숙주의 저항 뚫어
알 모양도 새끼 우는소리도 변화
여름 철새인 뻐꾸기는 동남아·아프리카 등 따뜻한 곳에서 월동한 뒤 한반도로 찾아와 5∼8월에 번식한다.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고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딱새 등 다른 새 둥지를 찾아다니며 알을 하나씩 낳는다. 탁란(brood parasitism)이란 형태로 숙주 새에 기생한다.
둥지에서는 다른 알보다 먼저 나온 뻐꾸기 새끼가 뱁새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뱁새는 둥지를 독차지한 뻐꾸기를 자기 새끼인 줄 알고 부지런히 키운다. 뻐꾸기 새끼가 나중에는 어미 뱁새보다 덩치가 커지지만 그래도 계속 먹이를 물어다 준다.
뻐꾸기·두견이·탁란찌르레기 같은 탁란종(種)은 오로지 자신의 번식에만 골몰한다. 번식을 못 하게 된 숙주 새가 입는 피해는 엄청나다. 그래서 숙주는 탁란종의 침탈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탁란종은 어떻게 하면 숙주의 저항을 뚫고 둥지에 알을 낳을까 애쓴다. 숙주와 탁란종은 진화 과정을 통해 창과 방패를 개량하는 군비 경쟁을 끝없이 벌인다.
그럼에도, 숙주는 탁란종에게 번번이 당한다. 탁란종은 숙주의 알과 닮은 알을 낳고자 계속 진화한다. 암컷에서 암컷으로 알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전달된다. 탁란종은 눈 크기가 몸집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새를 숙주로 고른다. 눈이 작은 새는 알을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구별을 잘 못하는 숙주 새는 남의 알을 버리려다가 자칫 자신의 알까지 버릴 수도 있어 일단 둥지 안의 모든 알을 부화시키고 기른다.
뻐꾸기는 사나운 매와 비슷한 깃털을 갖고 있다. 알을 낳으려 둥지에 접근했을 때 숙주 새가 저항할 수도 있는데, 자신을 매로 착각하게 해 저항 의지를 꺾는다. 뻐꾸기알이 둥지에서 가장 먼저 부화하는 것은 어미의 따뜻한 몸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나오기 때문이다.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먹이를 보채는 우는소리도 숙주의 새끼와 닮았다.
자연계에서는 곤충이나 물고기도 탁란한다. 유럽산 잔점박이푸른부전나비는 개미에게 알을 맡긴다. 이 나비가 낳은 알은 개미 냄새를 풍기는 화학물질로 덮여 있다. 개미들은 이 알을 자기들의 알로 착각해 집으로 데려간다. 개미는 나비의 애벌레를 먹이고 키운다. 나비 애벌레는 여왕개미 소리를 흉내 내면서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데, 먹이가 부족해지면 개미들이 자기 애벌레를 죽여서까지 나비 애벌레를 먹여 기른다. 실험실에서 여왕개미가 나비 애벌레를 공격하는 상황을 만들었더니, 일개미들은 오히려 여왕개미에게 맞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토종물고기인 감돌고기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꺽지를 이용한다. 꺽지는 물속의 돌 아래 공간에 산란터를 마련한다. 암컷이 산란한 알을 돌에 붙이면 수컷이 정자를 내보내 체외수정한다. 수컷 꺽지는 가슴지느러미로 물살을 일으켜 알에 산소가 풍부한 물을 공급하고, 다른 생물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감시한다.
꺽지의 활동이 줄어드는 이른 아침에 감돌고기는 떼를 지어 산란터에 접근한다. 꺽지알 옆에 훨씬 많은 알을 붙이고 수정까지 완료한다. 이 와중에 꺽지알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꺽지알 옆에 붙은 감돌고기알은 수컷 꺽지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안전하게 부화한다.
개중에 똑똑한 숙주가 있다면 탁란종도 실패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새끼를 기르고 보호하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떠넘길 수 있고, 거기서 얻는 이익이 너무도 크다. 오늘도 뻐꾸기·감돌고기가 남의 둥지·산란터를 노리는 이유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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