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적·치료 약 없는 소나무재선충
쉽지 않지만 방재 발상 전환 필요

“단풍이 예뻐요. 산이 온통 빨갛게 물들었어요. 사진 찍어 기념으로 저장할까요?” 오랜만에 아빠 만나러 온 딸이 먼 산 바라보며 한 말이다. 기쁘게 같이 사진 찍으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요즘 애들 말로 ‘웃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소나무 재선충에 감염된 나무들이다. 여기도 빨갛고, 저기도 빨갛다. 얼핏 보면 붉은 단풍처럼 보이기도 한다. 순간 기후위기 시대를 헤쳐나가야 할 우리 아이들 미래가 걱정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해도 안타깝고 암울하다. 미안한 마음도 든다.

예부터 소나무는 우리네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나무였다. 아이는 소나무 기둥과 소나무 서까래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생솔가지 꽂은 금줄 처진 집에서 첫 삶을 시작했다. 살아가는 동안 쓰는 가구나 각종 도구도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죽어서는 소나무 관에 누워 소나무가 지켜주는 도래솔 도움받아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왕릉을 비롯한 무덤 주변에 소나무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나무는 애국가부터 유행가 가사까지, 온갖 옛이야기와 전설, 민담, 민화, 선비들이 그린 산수화와 도자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만큼 상징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은 그야말로 소나무 수난 시대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뒷동산으로 송충이 잡으러 다녔던 기억이다. 알고 보니 송충이는 우화화기 전에 솔잎 먹는 솔나방 애벌레였다. 온몸에 털이 나 있어 쏘이면 아팠다. 흑갈색 몸통은 징그럽게만 보였다. 동무들 함께 모여서 젓가락으로 잡았었다. 솔나방뿐만 아니라 솔잎혹파리도 전국을 휩쓴 적이 있다. 1929년 전남 목포와 서울 창덕궁 후원에서 처음 보고되었고 1982년쯤 전국으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유충이 솔잎 밑에 벌레혹을 만들고 수액을 먹는다. 상처가 난 솔잎은 생장을 멈추고 붉은색으로 변해 떨어진다. 심하면 소나무가 죽는다. 하지만, 송충이나 솔잎혹파리 피해와 소나무 재선충 피해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소나무 재선충은 매개충에 대한 천적도 없고, 근본적인 치료약도 개발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나무 에이즈’라고도 부른다.

소나무 재선충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생했다. 매개 곤충은 솔수염하늘소 또는 북방수염하늘소 선충이다. 크기가 1mm 안팎으로 실 같은 모양이다. 재선충이 침투하면 수분과 양분 이동통로를 막아 나무를 말라 죽게 한다. 한 쌍의 재선충이 20일 후에는 20여만 마리로 불어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매개충은 토착종인데 재선충은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외래종이다. 산림청 자료에 의하면 피해지역은 전국 226개 시군구의 70.4%인 159곳에 이른다. 감염된 나무는 약 150만 그루, 감염이 우려되는 나무는 260여만 그루로 추산된다. 정부는 37년간 사투를 벌였고 방제에만 2조 원 이상 투입했으나 실패했다. 그동안 3000만 그루의 소나무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올 만큼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쯤 되면 근본부터 다시 살펴볼 때가 되었다. 축구로 치면 감독과 선수 몇 명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쉽지는 않겠다. 천적과 치료약이 없다. 따뜻해지는 기온 탓만 할 수도 없다. 자꾸만 죽어 나가는 소나무 바라보며 안타까워한다고 당장 묘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꿀 필요는 있어 보인다. 난감하지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다른 방재 계획 세우며 돈만 자꾸 쏟아붓는다고 될 일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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