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생명평화 운동 불꽃 피워
선조 뜻 이어 후손 물려주자 다짐
가을이 깊어가면서 백조의 호수에서 겨울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주남저수지와 우포늪에는 1000마리가 넘는 고니류가 눈부시게 하얀 날갯짓으로 방문객들에게 감동을 선물한다. 지난밤 한 사람을 보내는 조시 속에 "세상의 가여운 사람을 모두 품어냈던 사람이여/ 한 그루 나무가 숲에서 말없이 서 있다 가는 것처럼/그대는 이미 이 세상을 살려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며 미소 짓기 바라오"라고 했다. 추모객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당신의 흔적을 더듬었다.
그곳에서 옛 선비들의 올곧은 죽음 앞에 수없이 나부끼던 만장을 생각했다. 추모제에 참석한 수백 명 조문객들의 얼굴이 그녀 삶의 흔적이었다. 평생을 자신을 위해서는 꽃 한 송이 피우지 않으면서 교육, 노동, 인권, 생명평화, 통일운동에 더하여 일본 사람들에게 '조선학교도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함께 외치며 '몽당연필' 활동까지 변함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살아왔다. 암 투병 중에 세월호 아이들을 생각하는 집회에도 참석해 마지막 가는 길에 또 한 송이의 꽃을 피우고 떠난 것이다. 추모식장에 수많은 추모 글이 만장이 되어 그녀의 환하게 웃는 모습에 꽃비가 되었다. 특히 낙동강변 경북 상주에서 이명박 정권이 4대 강 사업으로 강물의 흐름을 차단하고 하얀 모래톱을 물속으로 수장할 때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사람들' 활동을 통해 낙동강변 사람들의 식수원을 녹조로 오염시키는 현장에서 투쟁한 일은 생명평화 운동의 꽃이었다. 그녀의 삶에서 어쩌면 낙동강이 단순히 생태적 가치를 넘어 선조가 지켜온 역사적 강이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지봉유설>에서 이수광은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떨쳐 일어선 장군 중에 유독 이순신과 곽재우의 공이 제일"이라고 했다. 곽재우는 관직을 주면서도 귀 기울이지 않는 왕에게 "전하는 신의 말을 쓰지 않으면서 신의 몸만 이용하려 한다(殿下不用臣言 而欲用臣身者). 이는 신을 관직으로 묶어 다른 여러 신하처럼 부리기만 하려는 것이다. 전하는 여러 신하를 개와 말처럼 여긴다(殿下視群臣如犬馬). 그런데도 신까지 그 가운데로 몰아넣으려고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자신은 개와 말이 될 수 없다고 관직을 거부하면서,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시옵소서(伏願殿下勿復召臣焉)"라고 선언했다고 전한다. 과연 남명의 제자이다. 궁궐의 정치도 똑바로 못하면서 재야의 명망 있는 선비들을 일회용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도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단호한 역사적 판단이다.
오늘날에도 경계인으로서 벼슬아치들과 국록을 먹는 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이렇듯 조영옥도 경상도 재야 선비처럼 올곧게 살아온 곽재우를 비롯한 낙동강변 의병들이 나라를 구한 그 역사의 흔적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온 까닭이리라. 한 사람을 보내며 많은 사람이 그녀가 떠나면서 산 자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를 화두로 삼았다. 마지막 삶의 불꽃을 생명평화 결사운동에 전념하면서, 선비들은 고향 땅에서 후학들을 기르며 미래를 가르쳤다. 추모객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생명평화 운동'을 조직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특히 태아와 막 태어난 아기들의 안전한 내일을 위해 맑은 공기, 파란 하늘, 푸른 숲, 물고기 가득 뛰노는 강과 바다를 우리 아기들에게 물려주는 행동에 참여하자고 마음 깊이 새기며 늦은 밤 헤어졌다. 나는 선조가 살아온 역사의 강인 낙동강을 꼭 살리리라 다짐했다.
/이인식 우포자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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