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치 새로 배우며 14년째 동고동락
습지 복원으로 살고 싶은 곳 만들기 과제

우포늪을 보며 세상 이치를 새로 배우고 있어요. 너무 좋아서, 도시에서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예요. 그렇지만 자연만 즐기고 있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13년 전 한 언론사가 왜 우포늪에 들어와 사느냐고 물어서 대답한 말이다. 오늘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말을 되뇌며 '비밀의 정원 우포늪'을 걷는다.

1986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며 중학생이 유서를 쓰고 죽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나는 30대 초반 젊은 교사로 인문고로 진학할 아이들에게 쉼 없이 자율학습을 강요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반 아이가 학업에 견디다 못해 가출을 하고, 이웃 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성적 독려로 소금물을 먹였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한마디로 학교는 입시 전쟁터였다. 인문고 진학을 위해 모의고사를 학교별로 비교 평가하면서 아이들을 달달 볶던 시절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상황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며 유서를 쓰고 숨진 아이의 글을 보며 '우리 아이들도 이러면 어쩌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입시용 참고서가 아니라 참교육의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책들을 뒤졌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 페스탈로치의 노동교육을 통한 인간성 회복 등에 관한 책은 큰 힘이 되었다.

그러다가 젊은 동료교사들이 모여 교육제도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 시작했다. 마침 1987년 6월 항쟁 시기 사회분야별 민주화 열기 속에 동료교사들과 교육민주화 대열에 나섰다. 우리가 교육민주화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들꽃은 스스로 자란다'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이미 거창의 샛별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같은 학교는 그런 정신으로 아이들을 교육했다. 그래서 교육민주화를 열망하는 교사들이 거창에서 모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깊이 있는 토론을 거쳐 1989년 5월 '민족, 민주, 인간화'를 주장하며 '전교조'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수만 명의 현장교사 지지와 후원 속에 교육민주화 세력이 탄생했지만, 노태우 정권은 공권력으로 탄압하며 끝까지 저항하는 교사들을 길거리로 쫓아냈다.

이렇게 장황하게 지난 세월을 늘어놓는 것은 그러한 세월의 인연이 우포늪 보전과 순천만 보전 등에 불씨를 지핀 까닭이다. 운명인지 해직교사로 교육 운동에 열심일 때 낙동강 페놀 사건이 터진 것이다. 페놀 사건을 수습하면서 환경단체가 만들어지고 그 인연으로 조현순 가톨릭여성회관 관장, 양운진 경남대 교수 같은 귀한 인연들을 만나면서 시민사회 속에서 역할도 알게 되었다.

페놀 사건의 원인과 피해 수습 과정을 들여다 보면서 낙동강 식수원에 접한 우포늪, 주남저수지 같은 습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실제로 1918년 지도에는 낙동강과 남강 등 지천에 1284개의 늪지가 있었다. 2010년 조사에서는 493개가 남아있고 면적으로는 76.7%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포늪도 1918년 자료에 비하면 30% 정도가 살아남은 것으로 확인된다.

운명을 바꾼 페놀 사태를 돌아보며 과거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많은 생태적 가치와 역사적 자산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 셈이어서 14년째 이곳에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동안 우포늪 보전과 따오기 복원에 이어 남은 과제는 과거 습지였던 곳을 복원하는 것으로, 생태계서비스 지역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이인식 우포자연학교 교장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