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생명 소리와 아름다운 풍광 마주하며
자연 터전 삼아 벗들과 황혼 함께하고파

오늘따라 내 고향 남쪽 바다가 그리운 날이다. 이수인의 '고향의 노래'를 들으면서 향수가 밀려온다. 특히 김재호가 쓴 노랫말은 우리 시대 삶의 한 표현이다. 어머니를 그리듯, 한 시대를 회고하는 가슴에 파동을 일으키는 글이 아닌가?

마산에서 초등부터 마산교육대학까지 살았다. 잠시 시골 학교 선생 노릇 5년 후에는 다시 마산제일여중 선생 노릇 하면서 쉰일곱 살까지 살았다. 창녕 영산 외가에서 보낸 5년을 제외하면 50여 년을 마산역 앞과 교원·구암·자산동 한우아파트를 끝으로 창녕 우포늪으로 돌아왔으니, 가장 긴 세월을 마산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셈이다. 특히 젊은 시절 옛 성호국민학교 옆 골목에 있는 만초술집은 마산 원로 예술인들을 처음 곁눈질하며 가끔 드나들던 곳으로 낭만과 토론이 오가던 시절이었다. 이후 함양 서상초교 선생으로 발령을 받아 타지 생활을 하다 마산제일여중으로 1982년 돌아왔다. 그때부터 좋은 선생으로 남고자 온 힘을 다하여 아이들을 가르치고 배웠다. 공립으로 가지 않고 사립으로 간 이유도 당시 교육계의 부패구조에 편입되기 싫었다. 사립에서 평생 승진문제에 얽히지 않고 아이들만 가르치는 훈장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부마항쟁과 광주항쟁 등으로 나만 깨끗한 선생으로 살겠다는 의지와 무관하게 교육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1980년대를 거쳐 교육운동과 환경운동으로 30년 세월을 거쳐 2010년 우포늪으로 들어왔다.

그 세월이 새삼 그리운 것은 젊은 시절 좋은 세상을 꿈꾸던 벗들이 있어서다. 늪에도 봄이 깊어진다. 우포늪의 연초록빛 왕버들은 어머니 품이다.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으면 나는 즐겨 왕버들을 벗 삼고 길을 나선다. 대대제방에서 겨울 철새들이 떠날 채비를 할 즈음 버드나무류가 제각기 연초록빛을 뽐내며 봄의 향기를 내뿜는다. 우포늪의 왕버들은 봄을 부르고 만드는 주인이다.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 비밀의 정원에 닿으면 뭇 생명의 소리와 아름다운 풍광을 눈앞에 놓고 잠시 눈부터 감는다.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보인다. 새들의 날갯짓 소리와 쇠오리 먹이 활동하며 내는 휘파람 부는 소리, 물속에 잠긴 왕버들 잔뿌리 흔들림까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다. 눈을 뜨면 눈앞에 나타나는 풍광만 볼 뿐, 자연 속에 스며 있는 내 모습이 아니라 눈앞에 나타나는 사물에 머무는 순간순간에 눈동자가 따라 움직일 따름이다.

다시 눈을 감고 포레의 '파반'을 감상하며 지나온 길을 묶어 머리에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 왕버들 가지를 오르내리며 깔깔대며 웃음 짓는 아이들의 몸짓과 그 모습을 둥지를 오가며 관찰하는 흰눈썹황금새와 오색딱따구리의 행동도 재미있다. 그 품속에서 온몸을 기대거나 하늘을 향해 드러눕기도 하면서 나도 자연 일부가 된다.

매일 스쳐 지나가는 고라니(물사슴)처럼 밥 먹고 목욕하고 풀밭을 달리는 그 모습을 흠모하며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행복이다. 우포늪을 보며 세상 이치를 새로 배우며, 너무 좋아서 도시에서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지만, 혼자 자연만 즐기고 살 생각은 전혀 없다. 우포늪 치유의 힘을 느끼며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세상과 마주하며 정의로운 삶을 산 벗들이 자연으로 온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작은 터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노을처럼 황혼을 함께하고 싶다.

/이인식 우포자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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