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 지키려 뿔 없앤 아프리카
낙동강 물고기는 보 열어야 산다

강의 시간에 나는 학생들에게 뿔이 잘린 코뿔소가 초원에서 풀을 뜯는 사진을 보여주며 질문을 던진다. "누가 이 코뿔소의 뿔을 잘라냈을까." 학생들은 "밀렵꾼"이라고 대답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코뿔소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뿔을 자른 사람이 밀렵꾼이었다면 코뿔소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 속 코뿔소의 뿔은 밀렵꾼이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립공원 관리인들이 잘라냈다. 마취를 시키고 나서, 뿔을 제거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코뿔소가 밀렵꾼의 표적이 돼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과거 아프리카에서는 매년 1000마리가 넘는 코뿔소가 밀렵으로 죽어 나갔다. 뿔은 코뿔소의 위엄을 상징하지만, 죽음을 부르는 표적이 됐다. 근원은 뜬소문이다. 코뿔소 뿔을 갈아 먹으면 암이 낫는다는,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 없는 믿음이 중국과 베트남 일부 지역에 퍼졌다.

코뿔소 뿔 1g은 암시장에서 금 1g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유럽 박물관의 코뿔소 머리가 도난당하고, 파리 외곽 동물원 코뿔소조차 습격당했다. 아프리카에 파견된 북한 외교관이 코뿔소 뿔과 코끼리 상아 밀거래에 연루돼 추방된 일도 있었다.

지난달 남아공 넬슨만델라대학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한 편의 논문을 실었다. 사전에 뿔을 제거한 결과 코뿔소 밀렵 피해가 무려 78%나 감소했다는 내용이다. 보존을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이지만, 뿔을 없애야 코뿔소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사람 탓에 생물종이 사라지는 게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땅,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코뿔소 대신 작은 물고기 흰수마자 얘기다.

흰수마자는 한국 고유종으로,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강바닥, 고운 모래가 깔린 곳에서만 산다. 긴 입수염이 흰색이어서 '흰 수염의 민물고기'라는 뜻으로 이름 붙었다. 낯선 기척을 감지하면 재빨리 모래 속으로 숨는 수줍은 생명체다.

하지만, 지금은 낙동강 본류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4대 강 '살리기' 사업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인 이 사업으로 낙동강은 흐르지 않고 깊은 호수처럼 변했다.

강바닥에 펄이 쌓이면서 모래를 덮었고, 흰수마자가 숨을 곳이 사라졌다. 낙동강엔 블루길·배스 같은 외래종이 득실거린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나 황강에서도 흰수마자 숫자는 급격히 줄었다. 8개 보가 강 본류의 흐름을 막고, 물고기 이동을 차단한 탓이다.

흰수마자 한 종(種)이 사라진다고 해서 낙동강 생태계가 당장 붕괴하지는 않겠지만, 생물종이 하나씩 사라지는 강을 끼고 살아가는 사람이 건강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흰수마자가 사라진 것과 같은 연유로 올여름에도 낙동강에는 남세균 녹조가 창궐하고 있다. 보에 막혀 정체된 낙동강은 사람에게도, 물고기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에서 환경 분야 첫 번째 공약으로 '4대 강의 재자연화와 수질개선'을 제시했다. 4대 강이 재자연화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당장은 취수구를 강바닥까지 내리고, 어도(魚道)를 고쳐 물고기가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녹조가 발생하든, 태풍이 닥치든 필요할 때 보 수문을 활짝 열 수 있다. 진정한 '가동보'를 만드는 것이 낙동강을 되살리는 첫걸음이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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