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캄보디아에서 온라인 사기(Scam) 범죄에 연루된 한국인 수십 명이 송환되었다. 그들은 단순한 인신매매 피해자가 아니었다. 사기 조직이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연애사기 등 불법 온라인 사기에 가담하도록 강요받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다루던 것은 총이나 칼이 아니라, 인공지능(AI) 기능을 활용한 디지털 도구였다. AI 기술이 범죄 도구로서 그 역할과 위험성이 더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캄보디아 사건은 전통적인 보이스피싱 단계를 넘어섰다. AI 번역기와 딥페이크(AI로 만든 이미지·영상), 음성합성 기술이 결합하면서 범죄조직은
캠핑의 계절이다. 바싹 마른 장작이 이글거리며 타들어 가는 잉걸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을 지켜보는 ‘불멍’은 가을 캠핑의 고갱이다. 이때 보이는 불꽃은 대부분의 뜨거운 기체와 고체 입자, 그리고 소량의 이온이 뒤섞인 혼합물이다.수천도 이하의 화염(flame)은 뜨거워진 그을음(탄소 먼지)에 의한 흑체복사(주로 오렌지색)가 대부분이다. 불에 달궈진 쇠가 벌겋게 빛을 내는 것처럼, 모든 물체는 온도가 오를수록 더 짧은 파장의 빛을 방출한다.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면 장작 틈 사이로 일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연소성 기체가 스며 나오는 소리가 들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 데 있어 과학기술은 가장 중요한 축이다. 이재명 정부가 최근 내놓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과학기술 5대 강국, 인공지능(AI) 3대 강국’이라는 구호는 단순한 비전이 아니라, 연구개발 방식부터 인재정책, 제도 개편까지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보면 과학기술정책의 핵심은 단연 ‘AI 대전환’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그래픽 처리 장치(GPU) 5만 장을 확보하고,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연결한 ‘AI 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고 한다. 공공 행정서비스에도 AI
올해로 종전 80주년을 맞는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9월 2일에, 일본 도쿄만 중앙 수역에 정박한 미군 전함에서 열린 '항복문서 조인식'을 통해,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연합군 대표들이 모두 참여한 조인식이었지만, 승리의 실질적인 주체는 미국이었다. 미국이 연합군을 주도해 최종적인 승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수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연방정부가 정부출연연구소를 중심으로 대규모 예산을 투자해 개발한 세 가지 첨단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우선, 영화 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핵무기 개발, 즉 미국
윤석열 정부가 탄핵으로 막을 내렸지만, 과학기술 정책에서는 잘한 점이 있다. 2024년 5월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항공청(KASA)을 출범시켜 우주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부여했고, 같은 해 3월에는 '국가전략기술 육성법'을 제정해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 등 국가전략기술을 종합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 것이다.과학기술계는 이미 2023년 결정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라는 거센 폭풍에 휩쓸리고 있었다. 2023년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 'R&D 카르텔'이라는 날
학회 참석을 위해 1박 2일 출장을 다녀왔다. 첫날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와 TV를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함께 출장 온 동료가 맥주 한 잔 마시자고 전화한 것이려니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호텔 프런트에서 옆 방 투숙객의 불평을 전하고자 건 전화였다. TV 소리가 너무 크니 볼륨을 줄여달라고 했다.최근 건강검진에서 '고주파 난청'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긴 했지만, 내 귀가 이제 노화의 한가운데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이토록 생생하게 체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우리가 귀로 듣는 소리는 기본적으로 공기 분자의
우리는 시대마다 정책과 사회 담론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경험해 왔다. 1990년대 '세계화', 2000년대 '지식기반경제', 2010년대 '뉴노멀'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2020년대 오늘날, 우리는 어떤 키워드로 이 시대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필자는 '대전환의 시대'라는 표현에 매우 공감하고 있다.'대전환'은 단순한 변화나 점진적 개선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존 질서와 시스템의 전면적 재설계를 요구하는 총체적 전환을 뜻한다. 기후위기, 인구감소, 저성장과 같은 문제는 더는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
작품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류츠신 작가의 다(넷플릭스에 동명의 드라마도 있다). 태양계에서 4.37광년 떨어진 '알파 센타우리' 자리에 지구보다 앞선 문명을 이룩한 외계인들이 지구를 향해 침공해온다는 설정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알파 센타우리는 하나의 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리길 켄타우루스, 톨리만, 그리고 프록시마 3개의 항성으로 이루어진 삼중성계다.작가는 이 세 개의 항성 주위를 도는 행성에서 진화한 삼체 문명을 설정하고 우주 문명 간의 상호 관계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2020년 2월 18일 오전 10시. 재료연구소 소장과 필자는 절박한 마음으로 창원시장 대기실에서 시장면담을 기다리고 있었다.당시 창원시는 재료연구소(현 한국재료연구원) 제2연구소(현 첨단소재실증연구단지)가 들어설 옛 육군대학 진해 터(이하 육대 터)를 애초보다 절반으로 대폭 줄이겠다는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고, 재료연구소는 이를 방어해야 하는 처지였다.재료연구소는 2003년부터 창원시 상남동에 있는 연구소의 부족한 터 문제를 해결하고자 전국 방방곡곡을 물색하고 다녔다.2만 평 이상의 넓은 터를 무상으로 받아야 했기에, 어느 지자체도
전기(electricity)의 어원이자 전자의 영어 표현인 electron은 '호박'(송진이 화석처럼 굳어 만들어진 보석)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2000여 년 전 자연철학자 탈레스는 털과 호박을 문지르면 서로 끌어당기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에서 전기력의 존재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마찰전기로 알려진 이 현상은 전자를 주고받는 성향이 다른 두 물체의 마찰로 전자가 이동하기 때문에 발생한다.양의 전하를 띤 원자핵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전자들이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일 때 발생하는 전하
중국의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Deep Seek) 발표는 그야말로 큰 충격이었다. 챗지피티(GPT)를 개발한 미국 오픈 에이아이(Open AI)와 같은 선두 기업들이 조 단위의 엄청난 자금을 개발에 투입하는 상황에서 고작 80억 원 수준의 적은 비용으로 고성능 생성형 AI를 개발했기 때문이다.더 놀라운 사실은 딥시크 개발자들이 국외 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들이며, 개발 인력 숫자는 139명에 불과해 1200명에 달하는 Open AI와 확연한 차이가 비교되기도 했다.중국 과학기술의 이러한 약진은 우리에게 한마디로 '비상사
30년쯤 전의 일이다. 복학 후,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던 시기였다. 누군가 나의 적성과 능력에 대한 객관적 진단을 내려주면 진로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상담소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고민의 유형을 신청하고 나서 적성검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심리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이때 처음 접한 것이 'MBTI'다. 2020년 전후로 한국에 MBTI 광풍이 몰아치기 전까지는 일반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검사였으니 나름 제법 이른 시기에 제대로 된 검사를 접했던 셈이다.카를 융이 1921년에 발표한 성격 유형 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을 내걸며 등장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제2기 시대가 열렸다. MAGA는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에서 비롯된다. MAGA는 전 세계 경제·산업·사회·군사 분야 등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며, 트럼프발 높은 파도를 넘고자 세계 각국의 대응이 분주하다.또한, 세계 강국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촉각을 세우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트럼프의 과학기술 혁신 정책은 1기 때 추진한 정책을 강화하고, 글로벌 기술 패권을
2024년! 유례없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초토화된 연구 현장을 달래려고, 관계 부처는 올해 초부터 과학기술 진흥 정책을 의욕적으로 쏟아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R&D에는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며 "과학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꿈을 밝히기도 했다.비상계엄과 탄핵의 급작스러운 정치적 사태는 예산 원복으로 한껏 희망에 부풀어 있던 과학기술계를 혼란과 당황 속으로 밀어 넣었다. 또한 과학 대통령의 꿈도, 정부의 화려한 청사진도 일단 멈춤을 넘어 물거품이 될 위기까지 몰렸다. 기
좋아하던 커피를 끊었다. 하루 세 잔 이상도 거뜬히 마셨고,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지 못하면 머리가 무겁고 졸려서 업무를 시작하지 못하던 나였다. 무언가에 의존해야 하는 중독 상황은 주체적인 인간으로 사는 데 바람직하지 않고 몸에도 무리가 느껴져 끊기로 결심했다.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권장하는 카페인 섭취량은 성인 기준 하루 400㎎이라고 한다. 아메리카노 한 잔의 카페인이 125㎎ 정도라고 하니 싱글 샷으로 하루 세 잔 이상 마셔도 거뜬했던 건 당연한 거였다. 통상 250㎎ 정도의 용량에서 집중과 각성 효과가 나타난다고
정부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 청사진으로 '국가전략기술' 육성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국가전략기술은 공급망·신산업·외교안보 측면에서 국가가 반드시 확보해야 할 12대 기술과 50개 세부 중점기술을 일컫는다. 정부는 인공지능, 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등 12대 국가전략기술에 5년 동안 30조 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러한 기술개발을 제대로 뒷받침하고자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까지 제정했다.2024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무려 13.9% 삭감된 초유의 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2025년도 R&D 예산 증액과
역사 속에서 초강대국이라 불렸던 나라들은 어떤 힘으로 세상을 제패했을까? 경제력·군사력·정치력·문화력 등 세상을 지배하려면 다양한 힘이 필요하겠지만,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필요로 하는 힘의 경중은 달랐을 것이다.거대국가를 유지했던 로마제국은 잘 훈련된 군사력 이상으로 효율적인 정책 결정 구조와 법률 기반의 '정치체계'가 세상을 지배하는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넓은 도로망을 구축해 군대와 상업의 이동 시간을 단축했다. 또한 달력 체계를 도입해 통치 지역들의 시간 통제를 강화했다.범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한 몽골제국은 유목 민족답게 '기동성
필자가 대학생일 때 이라는 라디오 방송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했었다. 당시 진행자였던 정은임 아나운서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추억하고 있다. 고인의 20주기를 맞은 지난달, 특집 다큐멘터리를 통해 과거 녹음을 인공지능이 학습해 복원한 고인의 목소리가 방송되기도 하였다. 음색, 발음, 음고, 강세 등의 음성 지문을 분석해 자연스러운 발화가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지난 6월에 개봉한 라는 SF 영화도 유사한 맥락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세상을 떠난 가족과 연인을 인공지능으
2024 파리 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을 마무리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은 친환경·저탄소 올림픽을 내세웠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설정한 탄소 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첫 번째 국제 스포츠 이벤트였다.이산화탄소 230만 t이 배출된 2012년과 340만 t이 배출된 2016년 대회와 견줘 탄소발자국을 절반으로 줄이고, 배출되는 탄소보다 더 많은 양을 상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이를 위해 탄소 배출량이 많은 아보카도, 에어컨, 일회용이 없는 3무(無) 올림픽을 실천하고자 했다. 필자는 3무에 아보카도가 들어 있어서 '생뚱
일본은 전국시대(16세기)부터 서양과 접촉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서양 문물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에도시대(1603~1863)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다시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현재의 도쿄(에도)를 기반으로 막부를 세우면서 에도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대항해 시대에 뛰어든 다른 서양 국가들과는 다르게 상업에만 관심이 있었던 네덜란드는 기독교를 전파하지 않는 조건으로 나가사키를 거점으로 에도 막부와 교류를 유지했다. 그 당시 네덜란드를 통해 일본으로 들어온 서양의 학문을 '난학( 蘭学)'이라고 한다.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