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수 16%·참여연구자 25% 급감
연구생태계 역동성 회복이 급선무

윤석열 정부가 탄핵으로 막을 내렸지만, 과학기술 정책에서는 잘한 점이 있다. 2024년 5월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항공청(KASA)을 출범시켜 우주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부여했고, 같은 해 3월에는 '국가전략기술 육성법'을 제정해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 등 국가전략기술을 종합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 것이다.과학기술계는 이미 2023년 결정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라는 거센 폭풍에 휩쓸리고 있었다. 2023년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 'R&D 카르텔'이라는 날 선 용어들로 과학기술계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무려 16.6%라는 전례 없는 정부 R&D 예산 삭감이었다.

이 사건은 과학기술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결국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연구자들에게 '예산 삭감'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2024년 실제로 시행된 예산 삭감의 영향은 올해 통계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 자료를 보면 2024년 정부투자 연구비는 전년 대비 16.8% 감소한 2조 5000억 원이었다. 이에 따라 국가 R&D과제 수도 2023년 7만 1804개에서 2024년 6만 98개로 16.3% 줄었다. 특히 참여연구자 수는 2023년 73만 명에서 2024년 54만 명으로 무려 25.8%나 감소했다. 연구비와 과제 수 감소율보다 훨씬 큰 참여연구자 수 감소는 단순 계산만 해도 약 19만 명의 연구자들이 연구를 중단했거나 궁핍한 연구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연구현장을 떠난 연구자들도 있을 수 있다.

주체별로 살펴보면, 중견기업 38.7%, 중소기업 23.9, 대학 24%의 연구비가 감소했다. R&D 환경이 취약한 중소·중견기업과 대학이 더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필자가 몸담은 한국재료연구원도 R&D 예산 삭감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산학연 공동 연구비와 대학으로 보내는 위탁연구비가 각각 24%, 42%나 줄어들었다. 우리 연구원과 관계를 맺은 교수와 대학원생 절반 가까이가 연구와 학업에 큰 차질을 빚었을 것이다. 정부 R&D 예산 삭감이 과학기술계 공동연구를 위축시키고, 대학 연구인력 양성과 배출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연구생태계 전반에 균열을 초래한 것이다.

새로운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각 부처와 위원회는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설계하고 있을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AI 육성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듯 보인다. 물론 AI는 미래 국가 경쟁력의 핵심 기술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R&D 예산 삭감 쇼크'로 인한 연구자들의 사기 저하, 정부정책 불신, 탈(脫)이공계 현상 등 심각한 후유증을 해소하고, 연구생태계의 역동성을 되살리는 일이다.

국가의 가장 큰 경쟁력은 '사람'이다. AI도 사람이 만들고, 혁신도 연구자의 도전에서 시작된다. 과학기술 정책은 연구자들의 신뢰와 사기를 회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중장기 R&D 투자계획을 명확히 확정·공개해 정치적 상황 변화에도 흔들림 없는 안정적인 예산 편성으로 연구자들이 미래를 내다보며 장기적이고 도전적인 과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다시 꿈꾸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새로운 정부가 과학기술정책에서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할 때 대한민국은 과학기술의 재도약을 위한 출발점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채재우 한국재료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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