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 2차 세계대전 종식 역할
도전적·혁신적인 집단 연구 중요
올해로 종전 80주년을 맞는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9월 2일에, 일본 도쿄만 중앙 수역에 정박한 미군 전함에서 열린 '항복문서 조인식'을 통해,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연합군 대표들이 모두 참여한 조인식이었지만, 승리의 실질적인 주체는 미국이었다. 미국이 연합군을 주도해 최종적인 승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수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연방정부가 정부출연연구소를 중심으로 대규모 예산을 투자해 개발한 세 가지 첨단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우선, 영화 <오펜하이머>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핵무기 개발, 즉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이는 대규모 기술 집약형 과제였다. 물리학, 재료공학, 기계공학, 시스템 엔지니어링 등 다학제 융합형 국가 과학기술 연구 모델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출연연구소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전쟁의 화마를 피해 미국에 이민을 온 유럽의 우수한 연구자들이 참여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는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이민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핵무기가 전쟁을 종결시킨 잔인한 기술이라면, 페니실린의 대량생산 기술은 장기간 지속한 전쟁에서 연합군 병사들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인본적인 기술이다. 페니실린은 1928년 영국의 의사이자 세균학자인 알렉산더 플레밍에 의해 순수한 학문적 우연으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실험실 배양이 어려워 오늘날과 같은 실질적인 치료제로 만들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대규모 연구개발이 필요했다.
수많은 군인이 부상과 감염으로 사망하던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페니실린을 전쟁 전략 물자로 간주하고 정부 산하 연구기관을 총동원해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하는 과제를 배정했다. 정부출연연구소에서 페니실린의 대량생산이 가능한 곰팡이 균주를 수천 종 조사해 최적 균주를 찾아내었고, 이를 최적 조건에서 발효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후 민간 제약사와 협력해 대량생산을 위한 공정을 개발해 전쟁 중 감염으로 말미암은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레이더 기술도 빼놓을 수 없다. 1922년 미국 해군연구소에서 무선 전파가 지나가는 경로에 배가 있을 때 반사 신호가 생긴다는 사실을 처음 실험으로 확인했다. 전파 반사를 이용한 항공기 탐지 실험에 성공한 영국에서는 1936년부터 해안선에 다수의 송수신 시설을 설치했다. 독일 공군기의 접근을 탐지해 제2차 세계대전 초반 큰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해상도와 출력이 낮아 먼 거리의 작은 물체를 조기에 식별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고자 미국은 전쟁 초기인 1941년 매사추세츠 공대(MIT)에 국제협력을 위한 연방정부 출연연구소를 설립하고 영국의 마그네트론 기술을 받아들여 대량생산 및 실용화 기술개발에 나서게 된다. 이전보다 파장이 훨씬 짧은 초고주파를 고출력으로 발생시킬 수 있는 마그네트론 덕분에 레이다를 소형화하고 탐지 정밀도를 획기적으로 향상할 수 있었다.
단기적인 시장 수요나 민간 투자의 힘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기술들이 있다. 기술 전쟁의 최전방인 정부출연연구소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집단 연구를 통해 임무 중심의 핵심 역량을 중장기적으로 축적해 나갈 수 있도록, 기존의 연구과제중심제도(PBS)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 주의 깊게 살펴볼 때다.
/한성태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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