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패권 시대 속 필요악
중도 하차 않는 육성계획 수립을
정부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 청사진으로 '국가전략기술' 육성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국가전략기술은 공급망·신산업·외교안보 측면에서 국가가 반드시 확보해야 할 12대 기술과 50개 세부 중점기술을 일컫는다. 정부는 인공지능, 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등 12대 국가전략기술에 5년 동안 30조 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러한 기술개발을 제대로 뒷받침하고자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까지 제정했다.
2024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무려 13.9% 삭감된 초유의 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2025년도 R&D 예산 증액과 국가전략기술 육성계획 발표는 과학기술계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반가운 소식을 접하면서도, 역대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비춰 볼 때 이번 국가전략기술 육성계획에 대해 몇 가지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첫 번째는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국가전략기술 선정이 유효한가에 대한 우려이다. 불과 몇 년 전에 우리 미래 성장동력으로 손꼽았던 3D프린팅, 사물인터넷(IoT), 가상·증강현실(VR·AR) 등은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되지 못했다.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와 같은 유명 인물들조차 오늘날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인공지능(AI)을 미래 투자·지원 분야로 예상하지 못했다. 정부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학계에서 무시당했던 mRNA(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RNA) 기술은 갑작스러운 코로나19 대유행에 전 세계를 구원한 백신으로 탄생했다.
두 번째는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되지 않은 비국가전략기술 연구자들의 소외감과 불안감이다. 앞서 정부가 밝힌 투자금액 30조 원은 연간 정부 R&D 예산의 25%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수천 개의 연구개발 기술 중에서 50개 세부기술에 그만큼 투자되는 것은 엄청난 편중이다. 2025년도 R&D 예산이 증액되었다고 하지만, 비주류 비인기 주제의 연구자들에게는 연구비 수주가 여전히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나아가 과학기술계의 연구 다양성이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
세 번째는 정권을 넘어 국가전략기술의 연속성이 확보될 것인가에 관한 우려이다. 노무현 정부는 차세대성장동력사업, 이명박 정부는 녹색기술,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기술, 문재인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술과 같이 많은 탈바꿈이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자들은 정부가 요구하는 기술 목표에 대응하느라 혼란스러웠다. 결과적으로 깊이 있는 중장기적인 연구보다는 정권의 트렌드에 맞는 단기적 연구에 그치는 경향이 많았다. 이전 정부의 색깔을 지우는 데 급급했던 그동안의 과학기술전략을 볼 때 이번 국가전략기술 투자 역시 그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우려에도 글로벌 기술패권 시대에 국가전략기술 선정과 R&D 투자 확대는 과학기술계가 감내해야 할 필요악임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속성과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국가전략기술이 정권에 따라 중도 하차하지 않도록 정치 노선과 무관하게 연구개발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또한, 비국가전략기술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도 연구기회가 보장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보여주기식' 과다한 연구비 지원이 아니라, 적더라도 장기적인 연구를 원하는 연구자들의 욕구를 잘 헤아리는 국가전략기술 투자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