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장벽 '지자'한국정치 떠올라
자율적 연구 '면벽자' 과학계 숙원
작품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류츠신 작가의 <삼체·The Three Body Problem>다(넷플릭스에 동명의 드라마도 있다). 태양계에서 4.37광년 떨어진 '알파 센타우리' 자리에 지구보다 앞선 문명을 이룩한 외계인들이 지구를 향해 침공해온다는 설정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알파 센타우리는 하나의 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리길 켄타우루스, 톨리만, 그리고 프록시마 3개의 항성으로 이루어진 삼중성계다.
작가는 이 세 개의 항성 주위를 도는 행성에서 진화한 삼체 문명을 설정하고 우주 문명 간의 상호 관계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간다.
두 개의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과 그에 따른 운동 궤도의 해는 고전역학에 따라 해석적으로 완벽하게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세 개 이상의 물체 간에 작용하는 중력과 그로 의한 궤도운동을 해석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함'이 푸앵카레에 의해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컴퓨터 엔지니어 출신인 작가는 탄탄한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삼중성계인 알파 센타우리에 행성이 존재한다면 어떤 물리적 특성과 진화 법칙이 적용될 수 있을지 탐색한다.
작품 속 삼체 문명은, 예측할 수 없는 주기로 뜨고 지는 세 개의 태양 때문에, 생존이 불가한 '난세기'(극심한 기후 위기)를 반복적으로 극복하며 진화한 문명이다. 인류를 '벌레'라고 단정할 정도로 진보한 문명이지만, 안정적인 '항세기' 상태에서 진행되는 지구 문명의 발전 속도가 빨라 그들의 함대가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400여 년쯤 뒤에는 자신들의 수준을 넘어서게 될 것을 우려한다.
이를 막기 위해 '초끈이론' 기반의 컴퓨터인 '지자'라는 양자입자를 만들고 이를 광속에 가깝게 가속해 지구로 먼저 보내놓는다. 삼체 문명은 양자입자인 '지자'의 얽힘 현상을 이용한 양자 통신으로 지구인 반역자들과 소통하며 지구 문명의 진보를 방해한다. 또한 '지자'를 이용해 과학 기술 발전의 기본이자 돌파구를 제공하는 기초물리학 실험을 방해하며 인류의 대응을 감시한다. 작가가 상상한 '지자'는 "외계인이 인류의 과학 앞에 세워 놓은 거대한 장벽"인 셈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소재는 '면벽자'다. 4세기 뒤에 지구에 도착할 삼체 함대에 대비하고자 인류는 세계 정부를 구축하게 된다. 지구를 손금보듯 들여다보는 삼체인들의 감시를 피해, 긴 호흡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는 '면벽자'들을 선발한다. 일종의 인류 생존 방안 연구자들인 셈이다.
'지자'의 기술 통제를 피해 인류의 창의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하기에, '면벽자'들에게는 당장의 활용성이나 타당성을 묻지 않고 막대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된다.
드라마든 원작 소설이든 꼭 직접 보시기를 추천하며, 필자가 느꼈던 다른 차원의 감상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우선 중국의 문화적 도약을 말하고 싶다. 원작 소설은 과학문화와 기술 종주국으로 재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위상이 드러나는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단상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지자'와 '면벽자'에 대한 것이다. 연구개발에 무지한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은 우리 안에 내재한 '지자'가 아닐는지.
아울러 작품 속 '면벽자' 프로젝트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기'를 바라는 과학기술계의 숙원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한성태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