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도 AI 활용·부활하는 시대
가상 인간은 실재와 다른 존재

필자가 대학생일 때 <FM영화음악>이라는 라디오 방송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했었다. 당시 진행자였던 정은임 아나운서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추억하고 있다. 고인의 20주기를 맞은 지난달, 특집 다큐멘터리를 통해 과거 녹음을 인공지능이 학습해 복원한 고인의 목소리가 방송되기도 하였다. 음색, 발음, 음고, 강세 등의 음성 지문을 분석해 자연스러운 발화가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지난 6월에 개봉한 <원더랜드>라는 SF 영화도 유사한 맥락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세상을 떠난 가족과 연인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가 상용화된 '가까운' 미래가 배경이다.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죽을 사람이 신청하기도 하고, 죽거나 식물인간이 된 사람을 영상통화 속 가상 인간으로 되살리기도 한다. 본래 성격을 기초로 하지만, 서비스를 신청하는 고객의 취향이 더해져 복원되기도 한다. 현실과 소통하는 일종의 디지털 사후 세계 혹은 메타버스인 셈이다. 영화에서는 가상 세계에 초점을 두어 아직 SF의 범위에 남기려 노력했지만, 현실 세계의 서비스는 이미 실재한다.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을 위한 교육을 여러 차례 수강하고 있는데, 한 강사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편지를 AI로 학습시켜 실제로 어머니와 문자를 주고받는 듯한 상황을 시연해 보이기도 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영상과 음성을 포함한 특정인의 누리소통망(SNS) 데이터나 이메일이나 문자 등을 활용해 대화형 챗봇을 구현하는 특허를 출원해 놓은 상태다.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구글의 '소울머신'이나 유니크라는 스타트업의 '디지털휴먼' 기술과 결합하면, 생전에 남겨 놓은 우리의 '디지털 유품'을 기반으로 물리적인 자신이 소멸한 사후에도 사회적으로 상호작용이 가능한 디지털 트윈의 형태로 영생하게 되는 날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오싹한 신생 디지털 사후 산업'이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말 소개된 기사에 따르면, 60여 개의 디지털 사후 회사가 이미 존재한다고 한다. 미국 기업인 히어애프터(HereAfter)사에서는 생전의 라이프로그, 대화 등을 기록하고 분석해서 사후에 가족과 친구들이 그와 대화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수백 개의 질문을 통해 고인의 삶을 기록하여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3D 카메라로 얼굴과 표정을 기록하여 실감 나는 딥페이크(첨단조작기술)를 구현한다고 한다. 또 다른 스타트업은 단순히 고인의 생전 삶을 기록하여 화면 속에서 대화하는 아바타를 구현하는 방식을 넘어서, 고인의 유전자 정보까지 기록하여 먼 훗날 이를 바탕으로 생물학적 아바타를 재현하는 계획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실로 SF 영화 속 상상이 현실이 되는 상황이다.

앞서 소개한 <원더랜드>에서도 비치는 내용이지만, 알고리즘이 구현하는 가상 인간은 실재 자신과 다른 존재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편집자의 가치와 목표가 반영되어 오염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디지털 불멸 기술을 'AI 심령술'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전래동화의 하나인 <인간으로 둔갑한 쥐> 이야기처럼 함부로 버린 손톱과 발톱을 먹은 쥐가 집주인으로 둔갑하여 진짜 행세하는 진가쟁주(眞假爭主)의 설화 시대가 진짜로 열릴 수도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데이터를 남긴다"는 최근의 우스개처럼 우리가 남기게 될 디지털 유품을 누가 소유하고 어떻게 활용하게 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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