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다양한 주파수의 순음 조합
노화, 달팽이관 고주파 세포 퇴행
학회 참석을 위해 1박 2일 출장을 다녀왔다. 첫날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와 TV를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함께 출장 온 동료가 맥주 한 잔 마시자고 전화한 것이려니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호텔 프런트에서 옆 방 투숙객의 불평을 전하고자 건 전화였다. TV 소리가 너무 크니 볼륨을 줄여달라고 했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고주파 난청'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긴 했지만, 내 귀가 이제 노화의 한가운데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이토록 생생하게 체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가 귀로 듣는 소리는 기본적으로 공기 분자의 떨림으로 전달되는 압력의 파동이다. 공기 밀도가 높아지는 과정과 낮아지는 과정이 반복되며 파형을 만든다. 공기의 밀도가 높은(혹은 낮은) 곳 사이의 거리가 파장이다. 한 지점에서 단위 시간(1초) 당 밀도 변화가 얼마나 빈번하게 발생하는지를 세서 주파수(frequency)를 정의한다.
이렇게 하나의 주파수로 단순하게 떨리는 소리를 순음(pure tone)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순음이 아닌 복합음(complex tone)이다. 물리학자인 '푸리에(Fourier)'는 아무리 복잡한 복합음이라도 여러 주파수의 순음으로 분해할 수 있음을 증명한 바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악기 소리나 사람 목소리 등은 다양한 주파수를 갖는 순음의 조합으로 구성된다는 의미다.
귀에는 약 32㎜ 길이의 관이 달팽이 모양으로 2.75바퀴 감겨있다. 우리가 달팽이관이라고 부르는 기관이다. 달팽이관 내부에 있는 유모세포가 소리 진동으로 떨리면서 전기 신호를 발생시키고, 이 신호가 전선과 같은 신경을 타고 뇌로 전달되어 소리를 인지하게 된다. 말려 있는 달팽이관을 죽 폈을 때 고막으로부터 음파의 진동을 받아 전달하는 뼈(이소골)와 붙어 있는 쪽부터 파장이 짧은 고주파수 대역을 감지하고 끝부분(말려있을 때 가운데 부분)으로 갈수록 파장이 긴 저주파수 대역을 담당한다.
20대까지는 1만 5000㎐(15㎑) 이상의 소리도 들을 수 있지만, 50대 이후로는 10㎑ 이상을 듣기 어렵다. 고주파를 담당하는 달팽이관 기저부의 유모세포와 지지세포가 노화로 퇴행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겪는 고주파 난청은 4㎑ 음역(2000~8000㎐)에서 청력 소실이 나타난 경우다. 배경 소음이 있는 술집이나 공공장소에서 사람들 발음이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ㅅ, ㅈ, ㅊ'과 같은 특정 자음이 고주파수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저주파 대역에 있는 남성 말소리는 알아듣기 수월하지만, 여성이나 어린아이들의 목소리는 웅얼거리는 듯 잘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증상들은 서서히 진행되고 통증이나 뚜렷한 자각 증상이 없어 방치되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노화에 의한 감각신경성 난청은 치료가 어렵다고 하니 현실을 수용하고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최대한 늦추려고 노력할 뿐이다.
이제는 노화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재정의할 때가 왔다. 굳이 남들이 하는 모든 소리에 다 반응하며 걱정하기보다는 내면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지천명(知天命)에 접어든 내 신체가 보내는 이상 신호는 어쩌면 외부의 시끄러운 정보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한성태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