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논리 따라 고정된 유형 한계
성격은 상호 작용에 의해 변화해
30년쯤 전의 일이다. 복학 후,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던 시기였다. 누군가 나의 적성과 능력에 대한 객관적 진단을 내려주면 진로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상담소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고민의 유형을 신청하고 나서 적성검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심리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이때 처음 접한 것이 'MBTI'다. 2020년 전후로 한국에 MBTI 광풍이 몰아치기 전까지는 일반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검사였으니 나름 제법 이른 시기에 제대로 된 검사를 접했던 셈이다.
카를 융이 1921년에 발표한 성격 유형 이론을 토대로, 1940년대에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스 모녀가 개발한 심리검사가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다. 외향(E)/내향(I), 감각(S)/직관(N), 사고(T)/감정(F), 판단(J)/인식(P)이라는 상호 독립적인 4가지 축을 기준으로 사람의 성격을 분류하는 방법이다. 상호 독립적인 세 축을 기준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데카르트 좌표계의 심리학 버전이라 볼 수 있다. 네 축으로 이루어진 심리공간 상에서 내 성격의 좌표를 결정하는 검사라고 볼 수 있다.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예단하던 상황에 비하면 훨씬 더 근거가 탄탄하고 합리적이지만, 지금의 MBTI 유행에도 많은 비판이 따른다. MBTI 부정론의 출발점은 개발자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전문적 지식이 없는 아마추어였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그렇기에 MBTI에 과학적 근거와 통계적 검증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100년 가까이 심리학계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었던 성격 검사 기법이었던 만큼, 전면적인 부정은 맹목적인 신뢰만큼이나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MBTI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두 가지 관점에서 추가로 분석해 보자.
우선 이원론적 인식론의 한계다. 데카르트의 공간 좌표계가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히 한 축을 동서 혹은 남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원점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지 연속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무지개의 색처럼 단일 축 상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49% 감각(S)과 51% 직관(N)인 필자의 MBTI 지표는 S-N 축의 원점에 가깝지만, N으로 강제 편입된다. 이 논리대로라면, 지구인은 남성으로 분류된다. 심리 공간상의 네 축을 10단계로만 세분화하더라도 성격 유형은 1만 가지로 다양해진다. 이항 대립의 흑백논리에 따라 고정된 16가지 유형으로 기술되는 세상은 납작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관점은 성격의 동력학적(dynamic) 성격이다. 3차원 데카르트 공간을 구성하는 세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좌표가 달라진다. 정적(static)으로 보이는 강산조차도. 세상을 구성하는 입자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방식이 '동력학'이다. 중력이나 전자기력처럼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원인이 힘이고, 힘의 작용은 시간에 따른 변화를 유도할 수밖에 없다. 성격을 규정하는 사람 사이 상호작용도 마찬가지다. 교육이나 훈련 혹은 결심에 따라 변할 수 있다. 큰 틀에서 항상성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다년간의 검사 결과를 비교해 보면 필자의 성격 좌표는 상당히 변해있었다.
결국, MBTI는 자기 이해와 대인관계 개선을 위한 참고 자료일 뿐이다. 단순화된 약식 검사 결과를 근거로 매우 복합적이고 가변적인 존재인 인간을 단지 16가지 유형의 고정된 틀 안에 무리하게 욱여넣어 제멋대로 박제하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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