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제로 질소 고정기술 연구 시작
전기에너지가 만들 새 세상 기대
캠핑의 계절이다. 바싹 마른 장작이 이글거리며 타들어 가는 잉걸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을 지켜보는 ‘불멍’은 가을 캠핑의 고갱이다. 이때 보이는 불꽃은 대부분의 뜨거운 기체와 고체 입자, 그리고 소량의 이온이 뒤섞인 혼합물이다.
수천도 이하의 화염(flame)은 뜨거워진 그을음(탄소 먼지)에 의한 흑체복사(주로 오렌지색)가 대부분이다. 불에 달궈진 쇠가 벌겋게 빛을 내는 것처럼, 모든 물체는 온도가 오를수록 더 짧은 파장의 빛을 방출한다.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면 장작 틈 사이로 일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연소성 기체가 스며 나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런 연소성 기체가 산소와 결합하여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를 만드는 화학반응 과정에서, 분자 속 전자가 들떴다가 원래 에너지 상태로 돌아오면서 내놓는 빛도 화염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한다.
불꽃의 온도가 일천도 이상으로 오르면 고온의 연소 기체(주로 푸른색) 일부가 약하게 이온화되어 추가적인 빛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불꽃의 일부는 자유 전자와 이온의 함량이 매우 낮은 차가운 플라스마로 여겨지기도 한다.
다른 의견도 있다. 플라스마의 특징은 자유 전자가 기체 이온과 재결합하며 발생하는 강한 자외선 방출인데, 가스레인지, 캠프파이어, 촛불 등과 같은 일상적인 불꽃에서는 자외선이 나오지 않기에 플라스마 상태가 아니라는 견해다. 자유 전자가 부족해 전도도가 낮으므로 오히려 뿌려진 소금물처럼 양이온과 음이온이 모인 ‘전해질 증기’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불이 플라스마가 아니더라도 고전압의 전원을 사용하면 전해질 증기 상태인 불꽃 내부에서 제대로 된 플라스마를 생성할 수는 있다. 불꽃에 약간의 전도성이 있으므로 전기장을 가하면 전자가 가속되어 애벌런치 항복(Avalanche Breakdown) 현상이 시작된다. 그 결과 발생하는 전류는 이온 상태의 연소성 증기를 불꽃 반응 영역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전압이 과도할 경우 불꽃이 유지되지 못하고 꺼질 정도로 전해질 증기를 제거할 수도 있다.
필요한 전기장이 훨씬 세기는 하지만, 고전압을 이용하면 실온 기체의 원자 집합에서도 전자를 떼어내어 수백만 도에 이르는 고온의 플라스마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아크 용접도 연소에 의한 화염보다 훨씬 뜨거운 고전압 기반의 고에너지 플라스마 상태를 이용한 기술이다.
현대 인류를 먹여 살리는 녹색혁명은 화학비료가 널리 보급되면서 시작됐다. 대기 중의 질소를 비료 원료로 바꾸는 화학 공정인 하버-보슈법은 화석연료 기반의 높은 온도뿐만 아니라 높은 압력과 촉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질소 원자 두 개가 연결된 질소 분자가 너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질소 기체의 결합을 끊으려면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제 연구자들은 화석연료 대신 전기에너지로 질소를 고정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 한국전기연구원은 한국기계연구원 및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함께하는 질소 자원화 전략연구단에 합류해 고전압 플라스마를 이용한 넷제로 질소고정 기술 연구를 시작했다. 전기의 힘으로 대기 질소를 고정하는 이 기술은 탄소중립 사회로 향하는 또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
인류를 먹여 살린 불. 하지만, 아직은 너무 차갑다. 가을 불멍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불보다 더 뜨거운 전기의 시대, 고전압 플라스마가 열어줄 새로운 미래상을 그려본다.
/한성태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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