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공단의 기억 (14) 원주민단체 삼원회

정부 원주민 간접보상으로 출발
원주민 위로 목적 사업 이어와
삼원회관 문화적 활용 계획 중
후세대 결속과 전통 보전 고심도

평화롭게 살던 농민들의 땅에 어느 순간 표시목이 박혔다. 처음에는 논밭이었고 그다음에는 집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그러모아 관청에서 대거리를 해도 부질없었다. 며칠 갇혀 있다 보면 버틸 재간 없이 수용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말뚝이 박힌 곳마다 어김없이 중장비가 들이닥쳤다. 대대로 부쳐 먹던 논마지기든 선조가 잠든 선영(先塋)이든 가리지 않았다. 농민들이 잃은 땅은 삶 그 자체였다. 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이주단지로 떠나면서 겪은 고통은 눈부신 도시 발전의 그림자로 남았다.

◇희생과 울분 달래기 위한 모임 = "'삼원회'란 현 창원시의 중심이며 뿌리가 되는 옛 창원군의 세 개 면인 창원면·상남면·웅남면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옛 텃밭의 모습을 그리워하여, 향인으로서의 정분을 두터이 나누고, 그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 그리고 아름다운 풍속을 대대 후손들에게 깨우쳐 줌으로써 고향의 발전에 이바지하자는 뜻으로 이룩한 모임의 이름입니다. 말하자면, 빛나는 창원을 길이 이어 가자는 '세 뿌리의 모임'이란 뜻입니다."(<삼원회를 만드는 뜻은>, 박흥길)

삼원회는 현재 회원 3000여 명과 창원시 의창구·성산구 내 12개 행정동별 지회를 갖춘 원주민 단체다. 정식 출발은 사단법인이 출범한 1995년 4월 1일이지만 1990년에 이미 발기인 회의를 여는 등 결성을 준비했다. 14대 이사장을 맡았던 최삼도(88) 전 창원시의원은 설립 당시의 분위기를 말했다. 

"농사짓던 사람들이 땅 뺏긴 설움에 분노가 꺼지지 않았지요. 상가 분양 등으로 달랬지만 그것조차 미흡했습니다. 그래서 당국이 일종의 간접 보상책으로 내놓았던 것이 삼원회를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삼원회가 창원유허비 앞에서 매년 이어온 삼원제례. 2021년 제례에서 제관들이 예를 올리고 있다. /삼원회
삼원회가 창원유허비 앞에서 매년 이어온 삼원제례. 2021년 제례에서 제관들이 예를 올리고 있다. /삼원회

세 개 면에서 각 6명씩이 발기인이 됐다. 정부 대책의 일환이었던 만큼 당시 면장 등 공직에 발을 걸친 전력이 있는 인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손무곤(62) 창원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처음 시작은 전직 공직자들로 했고 차츰 원주민 중심의 모임으로 바뀌었습니다. 처음 취임한 손일봉 회장이 제 할아버지인데, 예전에 웅남면장을 하셨었지요"라고 설명했다. 

1995년까지는 회장을 선출했고, 사단법인 설립 이후부터는 이사장을 선출해 지금 재임 중인 박흥실(67) 이사장까지 열일곱 차례 집행부가 선출됐다.  

◇옛 땅 기억하고 현재를 뭉치는 끈으로 = 삼원회가 처음 주력한 사업 역시, 그 설립 취지와 같이 반강제로 땅을 빼앗긴 원주민들의 억울함과 분노를 위무하는 일이었다. 1994년에 준공해 창원시에 헌납한 창원대종과 창원유허비가 그 노력의 첫째 산물이다. 이 둘은 현재 성산구 용호동 창원중앙도서관 뒤편 야산의 용지호수공원과 이어지는 정상에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쳐 각 자연마을이 있었던 땅에 세운 유적비들이 뒤를 이었다.

대종과 유허비는 삼원지역의 기억과 창원 발전에 바친 희생을 상징하는 초석이다. 삼원회는 이곳에 숨결을 불어넣는 역할도 이어나가고 있다. 삼원회는 1999년부터 매년 음력 9월 9일에 창원유허비에서 삼원제를 봉행하고 있다. 제단에 참석 제관을 대표해 제일 먼저 잔을 올리는 초헌관은 창원시장이나 부시장이 맡는다. 시의 수장이 제를 올리는만큼 산업단지 개발 이후 창원시민이 된 시민들, 통합 창원시의 구성원들도 함께 원주민의 아픔을 기리는 셈이다. 

삼원회는 원주민의 단합과 옛 삼원지역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여러 문화행사를 연다. 2016년 문화한마당에서 윷놀이를 하는 모습. /삼원회
삼원회는 원주민의 단합과 옛 삼원지역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여러 문화행사를 연다. 2016년 문화한마당에서 윷놀이를 하는 모습. /삼원회

올해는 10월 4일에 제27회 삼원제례를 올렸다. 박흥실 이사장은 "코로나19 기간에도 축소해서 했지 한번도 거른 해가 없었습니다"라며 "삼원제례는 산업단지 개발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이후에도 힘든 인생을 헤쳐나간 이주 1세대 선친들을 위한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2세대들은 도시화가 되고 그 덕에 공부라도 했지만, 선배 세대들은 그야말로 고통만 겪었습니다. 또 제례는 땅이라도 분양받은 정착민들을 위하는 것을 넘어, 땅도 보상도 없이 타지로 흩어져간 옛 창원군민들을 기리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삼원회는 문화 한마당, 유적지 탐방 등 삼원지역 원주민들을 위한 행사들을 마련해 오고 있다. 이시우(62) 사무국장은 "삼원회는 시에 전통문화예술단체로 지정돼 있어요. 매년 전통문화에서 소외된 원주민들에게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라며 "현재 퇴촌농악 등 옛 삼원 지역의 전통문화를 적극 계승 발전하도록 젊은 전수자 등을 육성하는 노력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옛 마을 문중에서 전하는 의례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나갈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원주민 염원 담은 보금자리 돌려드리고파 = 삼원회관(성산구 마디미로9번길 4)은 고향을 지킨 원주민들의 소망으로 세워졌다. 최삼도 전 시의원은 "상남면 출신이었던 당시 김종하 국회의원부터 해서 시의원들까지 삼원회관 건립에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지요. 그 끝에 국비와 지자체 예산이 확보됐고 의정동우회와 행정동우회도 힘을 합쳐서 건물을 세울 수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시우 사무국장도 "당시 회관 건립에 60여 분이 사비를 기여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삼원회관은 건립 이래 원주민들의 각종 행사·모임 장소 역할을 해 왔고, 옛날 모습을 담은 사진과 창원군의 옛 지형 모형 등을 전시함으로써 지역사를 보존하는 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앞으로 삼원회관을 '시민의 공간'으로 만들어나가려 한다고 밝혔다. 

10월 3일 원주민 1세대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다 상념에 잠긴 삼원회 박흥실 이사장. /강찬구 기자
10월 3일 원주민 1세대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다 상념에 잠긴 삼원회 박흥실 이사장. /강찬구 기자

"회관이 있는 상남동은 시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집결하는 곳인데 제대로 된 문화공간이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삼원회관을 원주민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창원의 역사와 개발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또 새로운 문화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이 되게끔 꾸려나가고 싶습니다. 시민들께서 많은 관심을 보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새 세대의 원주민을 위해 = 법인 출범 27년 차, 세월이 지난 만큼 삼원회도 여러 변화를 겪었다. 박흥실 이사장은 현재 삼원회의 주축이 이주 2세대라며 "근래 퇴직을 했거나 앞두고 있는 50~70대가 대부분입니다"라고 설명했다. 

2001년 1월 12일 삼원회관 준공식에서 풍물패가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양해광 창원향토자료전시관 관장
2001년 1월 12일 삼원회관 준공식에서 풍물패가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양해광 창원향토자료전시관 관장

삼원회 또한 '세대차'를 겪었다. 예전 삼원회에 관여했던 원로 가운데는 삼원회에 타향 사람 비중이 높아지는 등 삼원회가 본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은 "바뀐 시대를 따라가자면 자연스러운 일이다"라며 "도시화 이후에도 창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보면 그들도 원주민이지요. 삼원회는 이들을 포함해, 창원 시민을 위한 단체로 탈바꿈해야 하는 패러다임 전환기에 있습니다. 선배 세대의 노력과 희생에 느끼는 큰 감사함만큼, 3세대에게 훌륭한 삼원회를 물려주고 싶은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 이사장은 "후세대를 위한 계획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옛날을 겪지 않아 동질감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소통의 장을 제공하려 노력 중이고, 이들이 들어오면 삼원회가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강찬구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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