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년 6월 진주성 2차 전투에서 망우당 곽재우 장군은 정암진이 뚫리자 무모한 싸움에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1592년 10월 벌어진 1차 전투는 상황이 달랐다. 1592년 12월 5일 자에 의병들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진주성으로 달려갔다는 기록이 나온다.◇효과적이었던 1차 전투의 심리전곽재우 장군은 삼가 의병장 윤탁(삼가)·정언충(초계)과 더불어 진주성 동쪽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성에서 1.5km 정도 떨어진 말티고개에서 왜적과 크게 싸웠지만 패배했다. 장군은 성에서 북쪽으로 1km가량 되는 비봉산에 올라가 진을 쳤
어떤 변호사가 겪은 일이다.사건을 의뢰받은 피의자에게 검사가 구속영장을 쳤다. 구체적인 사유는 적혀 있지 않고 제목만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 제출하겠다고 했다.실질심사에서 보니 지난해 불기소 결정된 사건이 있었다. 추가 조사도 없었고 새로운 증거도 없었다. 검사는 "미시적으로 볼 때는 불기소지만 다른 추가 사건과 거시적으로 보니 기소할 사건"이라 했다.사건과 관계없는 금융기관 거래내역도 내라 했다. 무관한 것인데 왜 그러냐 물으니 수사관이 윗분들이 궁금해하신단다. 윗분이 누구냐 물으니 옆에서 검사가 자기를 지칭한 것이라 둘러댔
진주성 2차 전투는 1593년 6월에 벌어졌다. 조선군 3000과 왜적 6만이 맞선 1 대 20의 혈전이었다. 밤낮없이 공격하는 왜적을 상대로 21일부터 29일까지 아흐레를 버텨냈다. 결과는 장졸은 물론 성안에 있던 모든 인명이 몰살당하는 참담한 패배였다.창의사 김천일, 충청병사 황진, 경상병사 최경회, 거제현령 김준민, 김해부사 이종인, 진주목사 서예원 등과 의병복수장 고종후와 부장 장윤, 의병장 이계련·이잠·민여운·강희열·고득뢰·강희보·오유웅 등 참전( 1593. 6. 1.)한 장수들이 거의 전부 전사했다.한 해
만약 지금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방법으로 전공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죽은 적군의 머리를 일부러 자르는 일 따위는 전혀 필요가 없다. 필요한 것은 휴대폰으로 찍어 보고서와 함께 전송하면 객관 사실로 인정이 된다. 하지만 당시는 전공을 인정받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 수급이었다. 문서로 '몇 명 죽였습니다'는 의미가 없었다. 증거가 없으면 조작이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왜적이 우리나라 사람의 코를 베어 가져간 사실을 두고 잔인하다고 얘기하지만 조선의 군사들도 왜적의 머리를 베어 빼앗은 병장기와 함께 임금에게 보냈던 것은 마찬가지다. 인
가진 사람들의 미덕이라 여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제 특별하거나 낯선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살았던 당시에는 어땠을까? 아흔아홉 칸을 갖고도 나머지 한 칸을 채우기 위해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게 인간의 본심이다. 사회적인 분위기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는 거리가 먼 그 시대에 장군은 이 말을 몸소 실천했다.◇모든 의병장들이 재산을 털었을까은 "집안이 본래 부유하였는데 변란을 들은 뒤로 재산을 모두 흩어 병사를 모았다"(1592. 6. 28.) 했고 는 "농사에 힘쓰며 재물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임진왜란 때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군은 1592년 4월 13일 왜적이 동래성을 깨뜨렸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자기가 살고 있던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나무에 북을 매달아 놓고 치면서 함께 싸울 군사를 모았다.장군이 의병을 일으킨 날짜는 4월 22일이다. 은 장군이 '가장 먼저 병사를 일으켰다'면서도 날짜는 '4월 24일'(1592년 6월 28일 자)과 '4월 20일 사이'(11월 25일 자)로 다르게 적었다. 그런데 장군이 조정에 올린 자명소(自明疏=스스로 해명하
곽재우 하면 사람들은 홍의장군을 먼저 떠올린다. 의령 들머리에는 붉은 옷을 입은 곽재우 장군 동상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의령 출신으로 임진왜란을 맞아 경남을 지키고 낙동강을 지킨 망우당 곽재우 장군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기강전투, 정암진대첩, 화왕산성 수성 정도는 알려져 있다. 또 보태자면 당쟁을 반대하고 영창대군을 지키려 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장군의 살아생전 일상이나 그 속에 담긴 인간적인 면모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나라를 구한 의병장 곽재우, 그 숨은 이야기'는 10월까지 20회에 걸쳐 매주 독자 여
반갑게도 코로나19가 나라 안에서 주춤하는 모습이다. 감염을 아예 잡거나 아니면 충분히 관리 가능한 범위로 집어넣을 기회다. 나라 안이 진정되면 나라 밖 요인은 입국 과정에서 알맞게 처리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머지않아 일상을 되찾고 경제도 제대로 돌아갈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판단한 모양이다. 앞으로 2주 동안 확실하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자고 애원을 한다.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갑갑함만 조금 참고 밖으로 나돌아다니지 않으면 된다. 사람끼리 따닥따닥 붙지 말고 2m 넘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일상은 정지되고 경제는 얼어붙었다. 이런 정도면 누구나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중국발 입국 금지를 거듭 내세우는 대한의사협회가 그렇다. 이익단체일 뿐인데도 전문가단체라 우기며 청와대 토론회에서 배제되었다고 트집도 잡았다. 입고 벗기 쉬운 1회용 방수성 긴팔가운으로 충분하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착용을 권장했을 뿐인데도 감염 우려를 내세워 전신방호복이 아니면 안 된다고 딴죽을 걸었다.정치권도 다르지 않다. 추경을 둘러싼 언행에서 속마음이 환히 보인다. 미래통합당은 추경을 하면
경남도민일보는 지역 아이들에게 자기 고장의 역사·문화와 인물·자연을 알려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 학교가 하지 못하는 빈틈을 찾아 메우는 작업이다. 지역의 특징과 장점을 찾아 현장에 가기도 하고 교실에서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하기도 한다. 이렇게 들르는 학교에서 뜻깊은 기념물을 볼 때가 있다.사천 정동초등학교에는 멋진 이순신장군상이 있다. 보통은 인물상만 덜렁 있지만 여기는 거북선도 한 척 있고 전투 장면 부조도 있다. 받침대 몸통에는 약력까지 적혀 있어 만든 이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약력 아래를 보았더니 제22회 졸업생 김장
박정희 철권통치 19년째인 1979년 설날 저녁. 열두 살 많은 큰형이 닫힌 방문을 한 번 더 닫고 창문에 커튼을 치고 부엌문까지 여몄다. 큰형은 한껏 소리를 낮추어 퇴직공무원이던 아버지와 얘기를 주고받았다. 읍내 누가 박통 싫은 소리하고 누가 서정쇄신 불평했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갔다더라, 누구는 펜치로 생니를 뽑히고 누구는 니퍼로 발톱을 뽑혔다더라…. 큰형은 열일곱 살인 나에게 엄한 표정으로 "어데 가서 말하믄 큰일난데이!" 단단히 일렀더랬다.전두환 철권통치 6년째인 1985년 7월 4일. 고향 집에서 아침밥상을 앞에 두고 경
창원문성고 학생들과 교사가 30일 메아리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17~18일 학생 바자회를 통해 모은 100만 원 남짓을 후원금으로 전달하였다. 메아리지역아동센터는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에서 초·중·고교 학생 29명을 대상으로 교육·학습 나눔을 하고 있다.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2008년 설립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생태누리 바우처(Voucher) 사업을 진행했다. 처지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자연생태를 누리는 여행의 보람과 즐거움을 주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활동이다. 모두 스물다섯 차례 진행했는데 시설 거주 어린이·청소년과 노인, 장애인·다문화가족 등이 대상이었다.반응은 어땠을까? 참여한 기관·단체 몇몇 곳에 전화로 물어보았더니 '좋았다, 또 가고 싶다'가 전부였다. '생태·습지·환경'에 초점을 맞추고 '체험 위주'로 활동이 펼쳐진 데 대한 만족도가 특히 높았다.◇좋은
◇설립 11년 만에 마련한 프로그램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2008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생태누리 바우처(Voucher) 사업을 진행했다. 우리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자연생태를 누리는 여행의 보람과 즐거움을 주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활동이었다.요즘 들어 여행이 보편화·대중화·일반화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행은 크든 작든 여유가 있고 몸이 성해야 할 수 있다. 몸이 불편하거나 돈이 없으면 선뜻 여행에 나서기 어려운 현실인 것이다. 복지나 평등 같은 거창한 개념을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이런 이들에게 여행 기회가
경상남도교육청이 지원하고 경남도민일보가 진행하는 '청소년 우리 고장 사랑 역사문화탐방'이 올해로 일곱 해를 맞았다. 학교는 지역적인 것보다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것을 주로 가르친다. 자기가 몸담고 사는 지역은 알아볼 기회가 드물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지역 학생들과 찾는 까닭이다. 지역을 살피고 보고 만지면 아끼는 마음도 생기게 마련이다. 모두 서른 학교(공동체)가 참여하여 열두 개 시·군을 탐방했다.◇지리산이 빚은 하동하동은 하늘채아파트작은도서관(6월 2일) 창원여고(6월 6일) 신어중(7월 6일) 마산중앙고(10월 19일)가 찾
경상남도교육청이 지원하고 경남도민일보가 진행하는 '청소년 우리 고장 사랑 역사문화탐방'이 올해로 일곱 해를 맞았다. 학교는 지역적인 것보다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것을 주로 가르친다. 자기가 몸담고 사는 지역은 알아볼 기회가 드물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지역 학생들과 찾는 까닭이다. 이렇게 지역을 살피고 보고 만지면 아끼는 마음도 많든 적든 생길 것이다. 모두 서른 학교(공동체)가 참여하여 열두 개 시·군을 탐방했다.◇인물도 나무도 멋진 의령의령은 11월 2일 양산 효암고 학생들이 찾았다. 망우당 곽재우 생가~세간리 은행나무~현고수~
경상남도교육청이 지원하고 경남도민일보가 진행하는 '청소년 우리 고장 사랑 역사문화탐방'이 올해로 일곱 해를 맞았다. 학교는 지역적인 것보다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것을 주로 가르친다. 자기가 몸담고 사는 지역은 알아볼 기회가 드물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지역 학생들과 찾는 까닭이다. 이렇게 지역을 살피고 보고 만지면 아끼는 마음도 많든 적든 생길 것이다. 모두 서른 학교(공동체)가 참여하여 열두 개 시·군을 탐방했다. 세 지역씩 나누어 네 차례 싣는다.◇밀양에 독립운동가가 많은 까닭밀양은 역사·문화·자연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멋진
경상남도교육청이 지원하고 경남도민일보가 진행하는 '청소년 우리 고장 사랑 역사문화탐방'이 올해로 일곱 해를 맞았다. 학교는 지역적인 것보다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것을 주로 가르친다. 자기가 몸담고 사는 지역은 알아볼 기회가 드물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지역 학생들과 찾는 까닭이다. 이렇게 지역을 살피고 보고 만지면 아끼는 마음도 많든 적든 생길 것이다. 모두 서른 학교(공동체)가 참여하여 열두 개 시·군을 탐방했다. 세 지역씩 나누어 네 차례 싣는다.◇대승과 참패가 공존하는 거제거제는 경남미용고(5월 21일)와 마산무학여중(7월 1
오횡묵이 함안군수로 일한 기간은 3년 10개월 남짓이다. 1889년 4월 21일 자인에서 들어와 1893년 4월 27일 고성으로 나간 것이다. 이 시기에 오횡묵은 지역사회의 여러 폐단을 깨끗하게 씻어냈다.멋대로 설치며 횡포를 부리는 일부 양반부터 먼저 때려잡았다. 아전과 결탁하여 백성들 등쳐먹고 군수를 능멸하는 적폐 중의 적폐였다. 아전과 백성들이 빼돌리거나 떼어먹어 엄청나게 밀려 있던 조세도 한 해 만에 별 탈 없이 정리했다. 아전·장교와 관노·사령들도 농간을 부리지 못하도록 제대로 다잡았다.근본인 농사를 위해서도 잘 되도록 돌보
◇생태체험토요동구밖교실은 10월 생태체험을 26일 김해 화포천습지생태공원을 찾아 진행했다. 구산·수정·LH행복현동·대산·덕산 다섯 개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했다. 먼저 습지박물관에서 미션을 간단하게 하고 생태체험장에서 곤충을 잡으며 놀다가 도시락을 먹었다. 오후에는 제방을 넘어 화포천에서 마음껏 뛰고 달리고 구르며 놀았다.수행해야 할 미션은 두 개만 냈다. 같은 습지식물인 갈대와 물억새가 무엇이 다른지와 호랑이와 같은 종류인 삵과 고양이가 어떻게 구분되는지였다. 찬찬히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삵은 고양이보다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