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안희제·곽재우 생가 가니 차오르는 존경심
창원 일본 흔적 많은 진해서 생생한 역사 공부
통영 통제영 위용에 압도…박경리 발자취 각인

경상남도교육청이 지원하고 경남도민일보가 진행하는 '청소년 우리 고장 사랑 역사문화탐방'이 올해로 일곱 해를 맞았다. 학교는 지역적인 것보다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것을 주로 가르친다. 자기가 몸담고 사는 지역은 알아볼 기회가 드물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지역 학생들과 찾는 까닭이다. 이렇게 지역을 살피고 보고 만지면 아끼는 마음도 많든 적든 생길 것이다. 모두 서른 학교(공동체)가 참여하여 열두 개 시·군을 탐방했다.

▲ 노랗게 물든 의령 현고수를 살펴보는 효암고 학생들. 현고수는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모집하려고 북을 매달았던 나무라 한다. /김훤주 기자
▲ 노랗게 물든 의령 현고수를 살펴보는 효암고 학생들. 현고수는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모집하려고 북을 매달았던 나무라 한다. /김훤주 기자
▲ 의령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를 찾아 안채에 들어가는 효암고 학생들. 마치 미로처럼 구조가 복잡한데 일제 감시를 조금이나마 늦추려는 의도였으리라 짐작된다. /김훤주 기자
▲ 의령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를 찾아 안채에 들어가는 효암고 학생들. 마치 미로처럼 구조가 복잡한데 일제 감시를 조금이나마 늦추려는 의도였으리라 짐작된다. /김훤주 기자

◇인물도 나무도 멋진 의령

의령은 11월 2일 양산 효암고 학생들이 찾았다. 망우당 곽재우 생가~세간리 은행나무~현고수~백산 안희제 생가~충익사~정암진 일대를 둘러보았다.

의령은 인물의 고장이다. 임진왜란 최초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가 앞서고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은 뒤 시기에 놓인다. 망우당은 본가는 물론 외가·처가의 재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켰고 백산은 백산상회로 번 돈을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냈다.

자기 개인을 위해 가진 재산을 썼다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지역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아낌없이 썼기에 많은 이들이 우러른다. 돈은 어떻게 벌고 모으느냐보다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한 모양이다. 망우당 생가에서는 따스한 햇살과 평온한 풍경을 즐겼고 백산 생가에서는 가옥 구조가 독특하게 복잡한 까닭을 생각해 보았다.

의령에는 멋진 나무도 많다. 곽재우 장군 생가 앞 세간리 은행나무도 그렇고 마을 한가운데 의병을 모으려고 북을 매달았던 현고수(懸鼓樹)도 그렇다. 아울러 곽재우 장군을 주로 모시는 사당 충익사도 마당에 훌륭한 나무들이 즐비하다. 1979년 조성할 때 당시 군수가 의령 전역에서 좋은 나무들을 여럿 갖다 심었기 때문이다.

바로 옆 정암진으로 옮겨갔다. 곽재우 장군의 의병이 왜적 2000명을 물리친 승전지이다. 그런데 여기를 이런 이유로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암(鼎巖=솥바위) 부근 20리 안쪽에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는 전설에 기대어 자기도 그 복을 받게 해달라는 발길이 더 많은 듯하다.

▲ 진해 웅천읍성 성벽을 따라 걷는 진해 YWCA 중·고교생들. /김훤주 기자
▲ 진해 웅천읍성 성벽을 따라 걷는 진해 YWCA 중·고교생들. /김훤주 기자

◇일본 관련 유적이 많은 진해

창원은 8월 3일 진해YWCA 중·고생들이 찾았다. 옛 창원과 옛 마산에도 둘러볼 데가 있지만 굳이 진해를 골랐다. 자기가 사는 고장이니까 으레 잘 아는 듯 여기기 쉽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먼저 웅천읍성에 들렀다. 조선은 건국 직후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웅천 앞바다 제포에서 왜인들이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왜구의 준동은 끊이지 않아 결국 1419년 대마도를 정벌한 다음 1426년 제포에 다시 왜관을 두면서 평화 시대를 열었다. 8년 뒤 쌓은 웅천읍성은 백성을 보호하고 왜인들이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이 있었다.

웅천읍성에서는 성곽의 모습과 기능도 잘 볼 수 있다. 둘레에 해자(垓字)를 깊이 파고 물속에 나무꼬챙이 목익(木)을 꽂아 뛰어들면 다치게 했다. 조교(弔橋)도 두어 부산 영도다리처럼 상판을 들어올릴 수 있도록 했다. 성문 바깥쪽에는 둥글게 옹성(擁城)을 둘렀고 중간에는 밖으로 튀어나오도록 치성(雉城)을 두어 공격과 수비의 효율을 높였다. 축성에 동원된 사람의 이름과 출신 지역을 적은 바위도 함께 살펴보았다.

진해 옛 시가지에서는 설명보다 미션 수행을 앞세웠다. 제황산모노레일카로 꼭대기 진해탑에 들어갔다. 2층 진해박물관에서 일제강점기 진해를 알아보고 8층 전망대에서는 시가지의 특징적인 모습을 살펴보았다.

내려와서는 옛 시가지 일대에서 근·현대 역사 유적 찾기 미션을 수행했다. 미션지에는 진해우체국, 10월유신기념탑, 문화공간 흑백, 중국집 元海樓(원해루)와 앞에 달려 있는 榮海樓(영해루) 나무 간판, 새수양회관 3층 뾰족건물 등이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10월유신까지가 스며 있다. 마지막은 백범 김구가 300년 세월을 건너뛰어 충무공 이순신과 애국심으로 만난 친필시비 사진 찍기였다.

▲ 1 조선 시대 복장으로 갈아입고 통제영 일대를 돌아보는 대아고 학생들. /김훤주 기자
▲ 1 조선 시대 복장으로 갈아입고 통제영 일대를 돌아보는 대아고 학생들. /김훤주 기자

◇통제영에서 비롯된 통영

통영은 세 학교가 찾았다. 5월 19일 대아고, 6월 1일 명지여고, 12월 15일 창녕여고 학생들이 박경리기념관~통제영~동피랑 일대를 돌아보았다. 통영은 소풍 나온 기분을 더 내어도 좋고 열심히 찾는 공부 기분을 더 내어도 좋은 탐방지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소설가 박경리를 알지 못한다. 박경리기념관은 그냥 보게 하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구석구석 다니며 차근히 살펴야 찾을 수 있는 미션을 10개 내었다. 이렇게 하면 20~30분이 금세 지나간다. 나머지 20~30분은 박경리 선생 묘소를 찾아 둘레 풍경과 놓인 자리를 돌아보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는 미션 문제 풀이를 통해 박경리와 소설 <토지>의 이런저런 국면들을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통제영에서는 세병관 마루에 올라앉아 요점 정리 설명을 먼저 하고 '도전! 골든벨'로 호기심을 돋운 다음 미션 수행을 통해 전체를 둘러보도록 하였다. 소풍 기분이 세면 약하게 조금 내고 공부 기분이 크면 강하게 많이 낸다. 세병관·십이공방·운주당·주전소터 같은 공부할 거리도 많고 아름드리 나무와 전망 좋은 정자 등등 놀거리도 널려 있는 통제영이다. 곰곰 따져보면 무궁무진한 공부터가 되고 마음먹고 놀려 들면 더없이 재미있는 쉼터가 된다.

통제영을 다 돌아본 후 동쪽에 있는 벼랑인 동피랑으로 옮겨갔다. 여기 낡은 건물과 후미진 골목 높다란 축대는 벽화로 이미 유명하다. 언젠가 재개발과 철거 얘기가 나왔을 때 이를 물리치고 동네 사람들이 같이 사는 방안을 찾은 결과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시장이 가까이 있으니까 색다른 시도로 관광객을 끌어보자는 발상이었다.

동피랑 꼭대기에는 동쪽을 지키는 동포루가 있다. 그림 그리기나 작품 사진 찍기 같은 미션을 확인하기 좋은 장소다. 통제영 전체 짜임새도 한눈에 들어온다. 한가운데 세병관이, 북포루는 뒤편 산마루에, 서포루는 마주보이는 등성이에 있다. 남쪽 강구안은 옛날 통제영 시절 군선이 넘실거렸다. 통영 도시 이름이 '통제영'에서 비롯되었음을 새삼 확인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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