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엿보기]내란에 레터르 잃은 경남 정치인 셋

최, '이재명 반대 여론' 운운 1차 탄핵안 표결 불참
'독재 맞선 학생운동가 출신 합리적 정치인' 퇴색
윤, 마산고 출신 국립 3.15민주묘지 지역구 의원
총 맞아 죽은 3.15열사 선배들 영령 볼 낯 어디에
신, 계엄 해제 요구안 찬성-탄핵엔 '궤변'으로 반대
'친윤'이나 '불의에 맞선 정치인'으로 설 기회 잃어

‘레터르(Letter)’. 자신의 상품을 다른 상품과 구별하거나 그 고유성을 나타내고자 드러내는 기호나 문자, 도형 따위의 표지를 일컫는 네덜란드 표현이다.

정치인에게 ‘레터르’를 형성하는 일은 중요하다. 자기 삶의 궤적과 행동이 만든 ‘정치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한데 12.3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이 ‘레터르’를 상실한 경남 정치인들이 눈에 띈다.

최형두(국민의힘·창원 마산합포) 의원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민주화 산업화 본산 대한민국 지중해 도시…마산합포 국회의원 최형두입니다.” 그가 상임위나 본회의 발언 전에 붙이는 수식이다.

그가 ‘민주화 본산’을 앞세우는 것은 1960년 3.15의거와 1979년 10월 부마항쟁 중심 도시로서 마산의 위상을 높이는 데만 있지 않다. 마산고에서 수학하고 서울대에 진학한 후 ‘전국민주화투쟁학생연합’ 공동의장을 지내며 학생운동 주역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군사독재 타도에 앞장선 자신의 ‘삶의 궤적’을 함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최형두·윤한홍·신성범 국회의원. /각 의원실
왼쪽부터 국민의힘 최형두·윤한홍·신성범 국회의원. /각 의원실

지금이야 국민의힘 소속으로 운동권 색채가 옅지만, 현안을 균형 있게 바라보려 애쓰고, 토론할 때도 당 입장을 잘 대변하면서도 상대 정당 주장 또한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는 그가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기에 쌓은 ‘정치적 자산’이다.

그런 그가 현재 12.3 내란 ‘동조자’로 낙인찍혔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반헌법적·불법적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국회 본회의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다. 마산에서 친지 상을 치르고 서울로 향하는 고속열차 안에서 계엄 소식을 들은 그는 역에 내린 즉시 국회로 내달려 1시 11분 경찰이 막아선 담장을 넘었지만 이미 표결이 끝난 때였다. 같은 시각 당사에 모여 제 할 일을 방기한 국민의힘 동료 의원들보다야 나은 행동이라 자위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7일 윤 대통령 1차 탄핵안 본회의 표결 때 투표하지 않았다. 1979년 부마항쟁 당시 박정희 정부의 비상계엄과 위수령, 전두환 신군부의 폭압적 군사독재를 누구보다 절절히 겪은 그다. ‘당론’, ‘경제와 외교 안보 위기’, ‘이재명 반대 여론’ 핑계를 댔지만, 청춘 대부분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회복’에 바친 사람이 군과 정보기관을 동원해 자신을 비롯한 국회의원과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내란 수괴 혐의자를 두둔하며 내린 결정이라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이렇게 그는 ‘민주화 운동가 출신 합리적 정치인’이라는 레터르를 스스로 갉아먹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자정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으로 계엄군이 진입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자정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으로 계엄군이 진입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최 의원과 마산고 동기동창인 윤한홍(국민의힘·창원 마산회원) 의원도 마찬가지다. 윤 의원 지역구 창원 마산회원구 구암동에는 국립 3.15민주묘지가 있다. 이는 윤 의원 스스로 형성한 것은 아니나,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가 쥐여 준 ‘상징적 레터르’다. 3.15의거는 부정선거를 이용한 이승만 정부의 독재 연장 야욕에 항거해 마산 시민이 마음을 모아 들고일어난 ‘대한민국 최초 민주화 운동’(집단 항거)이라는 상징을 지녔다.

이 과정에 윤 의원 마산고 선배인 김용실·김용준 열사가 꽃다운 나이에 독재에 항거하다 총에 맞아 스러졌다. 3.15민주묘지에는 김용실 열사 묘가 마산고 교정에는 두 열사를 기리는 추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런 윤 의원 또한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윤 대통령의 반헌법적·불법적 비상계엄 해제 국회 요구안과 1차 탄핵 투표에 모두 참여하지 않았다. ‘친윤석열계’로 이름난 그가 매년 봄 국립 3.15민주묘지에서 민주 영령들을 마주하기 멋쩍게 됐다.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이 한동훈 대표에게 항의하고 있다. 일어서서 발언하는 임종득 국회의원 바로 앞에 앉은 이가 신성범 의원이다. /연합뉴스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이 한동훈 대표에게 항의하고 있다. 일어서서 발언하는 임종득 국회의원 바로 앞에 앉은 이가 신성범 의원이다. /연합뉴스

결과적으로 겉과 속이 달라진 신성범(국민의힘·산청함양거창합천) 의원 행태도 짚을 필요가 있다. 신 의원은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즉시 국회로 왔다. 국회 진입을 막는 경찰과 차 벽을 뚫고 우여곡절 끝에 담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간 그는 경남지역 국민의힘 국회의원 13명 중 유일하게 국회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참여해 당당히 찬성표를 던졌다.

신 의원은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비상계엄이 잘못됐다, 자신이 있을 곳은 국회라고 생각했다, 담을 넘으면서 상처를 입었다…. 평소 자신을 ‘친윤석열계’로 언급하던 전력에 비춰 ‘불의에는 당당히 맞서는 정치인’으로서 레터르를 형성하는가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3일 밤과 4일 새벽 군의 침탈로 아수라장이 된 국회 본관을 목도한 그는 1차 탄핵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2차 탄핵안 표결을 앞둔 의원총회에서는 “비상계엄 발동은 백번 탄핵당해도 마땅하나 무엇이 우리 당에 도움이 되느냐 생각했을 때를 생각하면 탄핵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해괴한 논리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적 두려움과 분노보다 당과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더 걱정한 셈이다.

/김두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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