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 다뤄야 할 의제] 4. 농산물값·핵오염수 피해

쌀값 폭락 대책인 양곡법 개정
대통령 거부권 행사 농심 좌절
국회 계류 수정안 통과 불투명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국민 건강 우려 수산물 소비 급감
정부 '괴담' 취급하며 겉핥기만
투명한 정보 지원법 마련 절실

45년 만에 최대로 폭락한 쌀값 문제로 농민들에게 쏠렸던 관심이 총선을 앞두고 흩어지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직격탄을 맞은 어민들도 '소비 촉진'에만 관심을 두는 정부 태도에 지친 상황이다. 농어촌 의제를 대하는 현 국회의 모습이 농어민들이 행사하는 한 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호 거부권 행사 '양곡관리법 개정안' 향방은 = 2022년은 농업계에 이목이 쏠린 한 해였다. 이해 9월 쌀값(정곡 20㎏ 기준 4만 393원)이 전년도 같은 달(5만 3816원) 대비 25% 폭락해서다. 정부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7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이었다. 밥 한 공기(100g) 가격으로 환산하면 201원 수준이다. 반면 같은 해 쌀 생산에 드는 비용은 증가했다. 논벼(쌀) 생산비조사 결과, 20㎏당 쌀 생산비는 3만 2000원으로 1년 만에 9.3% 늘었다. 쌀 생산비는 2017년(2만 5000원)부터 꾸준히 상승해오고 있다.

쌀값을 조정하는 정부 정책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쌀값 폭락은 2021년 풍년에서 초래됐는데 '양곡관리법'에 따른 초과 생산분 매입을 망설였다. 뒤늦게 공공비축미 27 t 매입을 결정했지만, 두 차례에 걸쳐 나눠 산 데다 수확기 가격이 아니라 시장최저가로 입찰한 일도 사태를 키웠다.

'쌀값 보장'이라는 구호를 내건 트랙터가 논을 갈아엎고 있다. /경남도민일보db
'쌀값 보장'이라는 구호를 내건 트랙터가 논을 갈아엎고 있다. /경남도민일보db

그해 농민들은 정부에 쌀값 안정을 촉구하며 행동에 나섰다. 경남에서도 진주·함안·하동·합천·의령 농민들이 농협·군청 앞에 나락을 적재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애써 길렀음에도 성난 마음에 트랙터로 갈아엎어 버린 나락들이었다. 의령·함안·창녕 등 각 지방의회도 쌀값 안정 대책을 마련하라며 대정부건의안을 채택했다. 정치권이 부랴부랴 '양곡관리법' 개정에 나섰던 까닭이다.

2022년 민주당 주도로 발의돼 지난해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정부 쌀 시장격리 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시장격리가 임의 규정인 까닭에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보완했고, 논에 타 작물을 재배할 때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담아 쌀 생산량 증가를 관리하는 견제 장치를 뒀다.

의령군농민회가 10일 의령군청 앞에서 쌀값 보장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을 요구하며 나락 적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남도민일보db
의령군농민회가 10일 의령군청 앞에서 쌀값 보장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을 요구하며 나락 적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남도민일보db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곧바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이는 대통령이 임기 중 행사한 9차례의 거부권 중 첫 번째 사례였고, 개정안은 국회 재의결이 불발돼 자동으로 폐기됐다. 정부는 이후 △전략작목직불제 △농지은행사업 △지자체 자율감축 등으로 수확기(10~12월) 쌀값(80㎏)을 20만 원 이상 부양하겠다고 밝혔지만, 11월(19만 8000원)부터 무너져 석 달째 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양곡관리법을 반대한 주요 논리는 '시장 왜곡'이지만, 농민은 답답하다. 함안에서 농사를 짓는 권민철(44) 씨는 "물가상승률은 높고 다른 상품은 다 비싸졌는데 쌀값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라며 "정부는 시장을 이야기하지만 농산물 가격이 올라갈 때마다 공공비축미를 풀거나 국외에서 저관세 농산물을 수입해오는 일은 시장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민 수가 점점 줄어드니 트랙터 1대가 2억 원이 넘는 등 필수 농기계 가격은 말도 안 되게 올라갔고, 기름값·인건비는 말할 것도 없다"라며 "지금도 농지은행 정책 등으로 논 재배면적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회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폐기 후 소폭 수정된 개정안을 다시 상임위에 올렸다. 다만, 구체적인 시장격리 기준(초과생산 3~5%, 쌀값 5~8% 하락)이 '폭락하거나 폭락이 우려되는 경우'로 완화돼 구체성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새 개정안이 총선 전 법사위와 본회의, 대통령 거부권 문턱까지 넘어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어민 대책 고민 없어 =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따른 어민 대책도 총선 국면에서 국민 관심사에서 멀어진 모양새다. 오염수 방류를 향한 우려를 괴담 취급하고, 여론 형성 자체를 막으려는 정부 기조가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탱크 보관 오염수를 해양 방류하기로 결정한 시점 전후만 해도, 반발이 거셌다. 그해 4월에는 거제, 5월에는 남해 어민들이 오염수 방류 결정을 규탄하는 뜻을 담아 해상 집회를 열었다. 해당 지역 수산업협동조합·수산단체들도 뜻을 모은 집회였다. 지난해에는 통영·사천·거제·창원·남해 등 도내 해안지역 시군의회들도 앞다퉈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남해군 어민들이 지난달 30일 미조항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에 항의하는 해상집회를 열었다. /남해군
남해군 어민들이 지난달 30일 미조항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에 항의하는 해상집회를 열었다. /남해군

정작 지난해 8월 24일 일본이 오염수를 1차 방류하고 나서자 지자체 반대 목소리부터 잦아들기 시작했다. 경남도의회는 '유감'을 표했을 뿐 침묵을 지키고 있고, 나머지 시군들도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태세 전환은 오염수 방류 관련 우려를 '허위선동'으로 보는 정부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9월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명제를 일방적으로 단정하는 <후쿠시마 오염수 10가지 괴담>이라는 홍보물을 배포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MBC의 일본 정부 2차 오염수 방류 예고 보도에서 '1차 방류' 당시 자료 화면을 썼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의결하기도 했다.

정작 시민들이 요구하는 정보는 숨겼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일본에 해양 감시 기준, 방사선영향평가 검토 기준 등을 정보 공개하라는 요청에 '비공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6일 정부가 이 내용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정부 홍보물. 여기에는 항간에 떠도는 10가지 의혹마다 사실 관계를 짚는 내용이 담겨있다. /경남도민일보db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정부 홍보물. 여기에는 항간에 떠도는 10가지 의혹마다 사실 관계를 짚는 내용이 담겨있다. /경남도민일보db

그러면서 오염수 위험을 과소평가할 수 있는 정보는 적극 홍보한다. 방류 이후 두 달간 수산시장·대형마트 수산물 매출액이 오히려 늘어났다는 자료다. 하지만, 실제 지난해 바다장어업계는 소비 급감·재고 증가로 말미암아 조업 축소를 결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어민들은 쉽사리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사안을 둘러싼 정치권 고민은 짧았다. 방류 직후 오염수 피해에 따른 해양환경 복구, 어민 지원, 기금 운용 등 내용을 담은 특별법들이 발의됐지만 죄다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다.

천명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반대 남해범군민대책위원회 공동대책위원장은 "정부가 후쿠시마 어민 대책 예산을 늘렸다고 하지만, 대부분 소비 촉진 쪽에 방향이 가 있어 어민들은 답답한 상황"이라며 "특별법 등 실질적 도움이 되는 대책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기본적인 이자 감면 등 어민 정책들도 와닿는 게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관련 정보 공개를 꺼리니 반대 대책위 활동을 이어가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데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어민을 위한 고민을 해달라"라고 덧붙였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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