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강연이라는 걸 해봤다. 2년 전 <창원공단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기사가 토대였다. 1970~80년대 창원공단이 들어서며 삶의 터전을 잃은 원주민, 새로운 기회를 찾아온 이주민들을 취재한 내용이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면서, 강연을 진행하면서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다. 기억에는 남았지만 화면 속 텍스트와 사진으로는 온전히 전할 수 없어서다.
송두리째 터전을 잃었을 때를 회상하는 허망한 표정과 목소리, 기회가 가득한 땅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을 설명하며 반짝이는 눈빛이 떠오른다. 수식어는 얼마든지 붙일 수 있지만 얼굴과 목소리, 손짓이 전달하는 생생함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개인의 역사, 지역의 역사가 역동하는 순간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자체로 역사의 사초다. 연재 과정에서 일부 취재원을 영상으로 담았지만, 더 많이 찍어두지 못한 후회가 남는 까닭이다.
지난주 20년 넘게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이어온 평밭마을 주민들을 카메라에 담은 일도 그런 마음에서다. 그런데 인터뷰를 토대로 동영상을 편집하다 문득 깨달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경남도민일보>는 송전탑 반대 투쟁 과정을 어느 곳보다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당연히 기사에 딸린 현장 사진들도 꽤 많다.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을 듣고 열심히 기사를 찾아보기만 해도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독자들이 인터뷰 영상을 보며 이런 수고를 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매일 아침 신문을 보지 않고 수시로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은 활자 이상의 시각적인 정보를 원한다. 아쉽게도 회사엔 밀양 송전탑 문제와 관련한 영상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기자가 하는 일은 먼 옛날의 사관, 혹은 역사가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당대 권력을 비판하는 일은 어려웠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활자로 남겼다. 이런 사초들이 쌓여 우리가 인식하는 역사의 토대가 됐다. 그리고 지금은 활자가 인류의 유일한 기록 수단이 아니다.
다시 취재기자로 현장에 나가게 된다면, 글 기사는 물론 드론이나 카메라로 영상까지 남기고 싶다. 예전에는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음먹으면 못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마감시간을 두고 데스크와 실랑이할 일이 늘어나겠지만 말이다.
이 시대의 기자들은 지금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사초를 남길 책무가 있다. 많은 동료 기자들이 영상·디지털 부서를 거쳐 가면 좋겠다.
/이창우 뉴미디어부 기자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