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 다뤄야 할 의제] (6) 의료 격차
접근성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수도권 광역시 외 지역선 아냐
공공의료 부족에 격차 심화해
지역 필수의료 의사 양성 입법
21대서 안 되면 새 국회가 해야
"선발부터 지역 복무 약속 필요"
지역정치, 의대 유치 매몰 말고
지역 현실 진단해 체계 구상을
시민은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건강한 삶을 누릴 권리를 갖고 있다. 동시에 정부는 '의료 접근 기회'와 '결과로서의 건강'을 형평성 있게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의료 격차'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지역에서 소아과·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 인력 부족 문제로 수도권을 찾는 '원정 진료·치료'는 일상이 됐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의사 부족을 개선한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단순 증원으로는 새롭게 양성한 인력도 과밀화한 지역과 진료과에 쏠림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에 필수 진료과와 의료 취약지에 의사가 배치되려면 새로운 인력 양성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공의대법'과 '지역의사제법'은 이번 21대 국회에서 제정되지 못하면 4월 10일 총선으로 꾸려질 22대 국회에서 우선 해결해야 할 중요 과제다.
◇의료 접근 불균형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4년 보건의료 정책 전망과 과제(강희정)> 보고서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2022년 잠정치 기준으로 한국 의료비 지출 수준은 OECD 평균을 이미 초월했다. 전 국민이 지출한 보건의료 비용인 '경상의료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9.7%로 OECD 평균 9.2%를 넘었다.
대한민국은 외래·입원 등 평균적인 의료접근성이 OECD 최고 수준으로 높다. 그러나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양질의 진료를 받을 기회, 나아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제약받는 불편한 현실이 상존한다.
의료 접근성을 지역별로 비교하면 의료 격차는 여실히 드러난다.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을 일정 시간 내에 이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준시간 내 의료이용률' 지역 간 격차는 크다. 국립중앙의료원이 발표한 '2022 공공보건의료통계'에서 응급실을 1시간 내에 이용한 비율을 보면 대구 91.1%, 서울 90.3%, 인천 86.7%, 부산 85.0% 등 수도권과 광역시는 상위권이지만 경남(61.1%), 강원(55.8%), 전남(51.7%) 등은 하위권에 속했다.
경남을 비롯한 전국의 비수도권 지역이 공공의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기준 경남 18개 시군에 부족한 공중보건의는 50여 명에 이른다. 경남 의사 수도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서울(4.8명)의 절반이다.
◇의료 공공성 강화 = 공공의료 부재 속 민간 중심 의료체계는 의료 격차를 가속화했다. 대한민국 전체 의료자원 중 공공의료 비중은 의료기관 기준 5%, 병상 기준 10% 수준까지 낮아졌다. 그 결과 의료 공급 주체의 90% 이상을 민간이 담당하고 있다.
지역 공공의료에 종사할 인력을 국가가 직접 양성하는 방안을 담은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공공의대법)'과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법률(지역의사제법)'은 국회서 계류 중이다. 지난해 12월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 심의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공공의대법과 지역의사제법은 지난 19대와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까지 10년 넘게 의원들 손끝에서 발의·폐기되기를 반복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정부의 의대 확대 정원 발표를 환영하면서도 지역 필수의료에 의무 복무할 의사를 양성할 기회를 더는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지역과 필수과에 의사를 안정적으로 배치하려면 예측이 가능해야 하고, 예측 가능하려면 선발부터 공공의료기관이나 필수과에 복무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들어오도록 하는 양성 시스템을 국가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가 늘어도 돈 되는 진료과와 수도권·광역도시로 의사 쏠림은 지속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10년 정도 지역 의무 복무를 하는 등 공급 체계부터 공공성을 높이지 않으면 여전히 시장이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갈 것이고 어느 지역에 살든 공평하게 건강할 권리는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의대 정원 확대, 의대 신설과 관련해 줄 세우기식으로 경쟁을 하는 구도에 대한 전문가 문제 제기도 있다. 지방정부와 지역 정치인들이 정부를 상대로 의대 유치 경쟁에 앞장서는 수준을 넘어, 지역 의료체계 현실을 진단하고 새롭게 구상하는 정책적인 노력을 지역민·전문가와 함께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공공의대 설립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공공의대를 통해 지역 의료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게 과제다"며 "공공의대가 지역의 다른 병원과 협력해서 지역의료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의료 민영화가 상당한 현실에서 의료 시장을 어떻게 보다 공공적으로 만들 것이냐 하는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지역의사제 관련해서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지역 인재를 양성하고 배치하는 의과대학과 대학병원 수련 시스템을 들여다봐야 한다"며 "정책 결정권자만 설득할 것이 아니라 정책 당사자들과 지속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단계적으로 실현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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