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 다뤄야 할 의제] (3) 헌법 개정
민주항쟁으로 이룬 '1987년 체제'
37년 묵으니 국가 전체 못 아울러
제왕적인 대통령 권력 견제 어렵고
사회 당면 문제 해결에도 한계 명확
분권적 의사결정 확대에 소멸 가속
지역 맞춤·주도적 결정 필요성 커져
국회 권력 집중 완화할 행동 나서야
총선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실제적인 규범적 지배력을 가지는 헌법을 개정하는 건 다른 지엽적인 의제보다 중요하다.
1987년 민주항쟁 열매로 9차 개헌이 이뤄졌다.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비롯한 ‘87년 체제’(6공화국)는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항쟁으로 이룬 성취였다. 맑은 물도 고이면 썩는 법. ‘87년 체제’가 37년을 이어오는 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민주공화헌정을 높은 수준에서 달성하기 어려운 여러 문제점도 생겼다.
◇현 헌법이 지닌 문제는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제를 해결하는 ‘합의 정치’보다 갈등을 유발하는 ‘신념 정치’가 일상화하고, 부의 불균등 분배와 복지체제 구축 지체로 말미암은 경제사회 양극화가 저출생 고령화, 청년·노인 빈곤, 높은 자살률 등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특히 정치적 불안정과 비효율성에의 불만은 헌법상 권력 구조를 비롯한 개혁논의를 계속해서 소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 헌법이 지닌 태생적인 문제도 있다. 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헌법은 당시 여야 간 정치적 논의와 합의로 이뤄져 타협의 결과물이라는 속성도 있다. 대통령 임기 등 권력 구조 관련 사안에 집중했고, 대통령 직선제 외 사안은 ‘사소한 문제’로 간주했다. 대통령 중심제와 단원제 국회, 감사원, 지방자치 등에 권한을 분산하지 않고 집중해 권력 남용 비판도 많다. 제왕적 대통령제 비효율성이 급변하는 정세 변화를 효과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국회는 개헌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를 5년 단임에서 4년 연임으로 조정하는 ‘원 포인트 개헌’을 추진했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 씨도 개헌을 시도했지만 당내 반대를 넘지 못했다. 박근혜 씨의 임기 말 개헌 시도는 국정농단 의혹을 회피하려는 눈속임이었다.
‘촛불 항쟁’으로 당선한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초 정부 차원에서 개헌 의지를 불태웠다. 야당의 반발 속에 정부 개헌안을 단독 발의했으나 당시 여소야대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투표 불성립(야당이 전면 불참해 의결정족수 미달)으로 불발됐다.
◇집중된 권력 지방분권 개헌으로 풀어야 = 저출생, 양극화, 지역격차, 정치 갈등, 복지, 청년고용 등 대한민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정부와 국회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노력에도 성과는 미진하고 문제는 되레 심화했다. 근본 원인이 권력 집중에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창용 지방분권전국회의 공동대표는 “권력 집중이 경제력 집중을 가져오고 기업 격차, 임금 격차, 지역 격차를 불러와 양극화를 심화하고 있다”며 “주권 대리인이 만들어 놓은 정치적 인식 틀에 갇혀 국민이 원하는 방향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고 짚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고 이 구조를 유지·강화하는 한편, 집권체제 속 관피아로 대표되는 파워 엘리트 집단과 재벌이 유착하면서 국민의 이해보다는 권력집단 이해를 먼저 생각하는 국가 운영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공동대표는 “국민이 나라 주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주권 대리인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집단이 주인 노릇을 하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라고 본다.
권력 분산 방안으로 ‘지방분권 개헌’이 꼽힌다. 이 대표는 “예컨대 청년문제는 고용 문제이기도 하지만 청년문화와도 연결돼 있다”며 “기존 산업 경제와 다른 현대 지식경제 사회는 집권적 의사결정보다는 분권적 의사결정 방향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 운영 원리가 분권화돼 정치체제도 이런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며 “청년문제는 지방분권 문제로 다가올 미래 질서다. 국가와 사회 운영체계가 지방분권에 기반해 작동해야 당면 난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저출생 문제에도 “중앙정부가 정책을 세워 결정한 내용을 단순 집행하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기초지방정부와 풀뿌리 지역사회인 마을, 동네가 중심이 돼 복지공동체를 만들어야 복지 질이 높이지고 비용도 줄이는 길인 만큼 그 실마리도 지방분권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자치분권제도 도입과 분권적 국가운영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는 지방분권 헌법 개정을 통해야만 가능하다”고도 덧붙였다.
◇개헌 방향과 시민사회 대응은 = 단순 주장이 아니라 내용적·절차적 완결성을 확보한 건 문재인 정부가 2018년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이다. 여기에는 국가 통치 구조를 지방분권형으로 바꾸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 자치와 분권, 지역 간 균형발전 내용을 수록하고 1조 제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고 추가했다.
‘지방자치단체’ 명칭을 '지방정부'로 바꾸고 집행기관 명칭을 지방행정부로 명시했다. 지방의회와 지방행정부 조직 구성과 운영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도 지방정부가 정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와 지방정부 간 사무 배분은 주민에게 가까운 지방정부에 우선하는 원칙을 세웠고, 자치입법권 범위도 기존 ‘법령 안의 범위’를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로 넓혔다. ‘지방세 조례주의’ 등을 도입해 자치재정권도 확보하도록 했으며 제2국무회의 격인 ‘국가자치분권회의’ 조항도 신설했다. 국가자치분권회의 신설은 문재인 정부 때 헌법 개정 불발 이후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 때 ‘중앙지방협력회의’로 실현됐다.
권력 구조와 관련해 정부 형태를 대통령 4년 1차 연임제로 바꾸도록 했다. 대통령 권한도 국가원수 지위 삭제, 사면권 제한, 인사권 축소, 국무총리 독립성 강화 조항을 넣어 분산했다. 감사원 감사위원 3명을 국회에서 선출하고, 국회의원 10명 이상 동의를 받아야 정부가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해 국회 인사권·입법권도 강화했다.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제 신설 내용도 넣었다.
국민주권·지방분권·균형발전을 위한 개헌국민연대 등 시민단체는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은 현재 제왕적 대통령제와 거대 양당체제, 수도권 일극 체제 등을 바꿀 개헌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총선 정국에서 정치권이 외부 지정학적 위기와 수도권 초집중, 인구절벽과 지역소멸이라는 내부 위협 속에서도 이를 타개할 정치시스템 논의는 없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22대 총선 균형발전·지방분권 5대 정책과제를 발표하며 정치권에 △매년 균형발전특별회계를 30조 원 이상 지원 △지역대표형 상원제 도입 △개헌절차법 제정 △연방제 수준 지방분권을 공약하라고 요구했다.
/김두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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