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오락실에서 목덜미를 잡힌 아들은 사망을 예감했다. 성난 걸음으로 앞장서는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가는 내내 후회했다. 다시는 가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긴 부끄러움도 약간은 있었겠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더 멀더라도 어머니가 찾을 수 없는 오락실을 갔어야 했어!’어머니는 몽둥이부터 들었지만 평소와 달리 바로 휘두르지 않았다.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아들에게 단호하게 얘기했다.“너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다음에 오락실 가서 잡히면 야구방망이로 백 대다. 약속해.”한 대도 맞지 않고 이 상황을 넘길 수 있는 선택을 피할
이 소설은 뭐지?요즘 무슨 책이 나오나 하고 온라인 서점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책이 있다. 양귀자의 소설 이다. 처음엔 동네책방 독서 모임 같은 데서 잠깐 유행한 줄 알았다. 한강 노벨상과 성해나 열풍에 밀리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다시 소설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와 있다.은 1998년 처음 출간된 소설이다. 주인공 안진진의 나이가 스물다섯. 1998년의 나와 비슷하다. 그 시절 우리 세대는 1997년 외환 위기(IMF 사태) 이후의 불안과 세기말의 음울한 분위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소설은 당시
질문은 기자의 특권이자 의무라고 하죠. 거창한 정의를 붙이지 않더라도 질문은 국민 알권리를 위해, 권력을 감시·비판하기 위해 기자가 꼭 해야 할 일임이 분명합니다.간혹 기자 질문이 조롱거리가 되곤 합니다. 기자로서 할 일을 하는데 무차별적인 공격, 가령 외모를 비하하는 인신공격이나 질문 일부만을 잘라 문제 삼는 비난을 감내하는 업계 동료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그럼에도 기자는 질문을 해 내야 합니다. AI(인공지능) 시대 기자에게 강력한 무기, 경쟁력 역시 질문이니까요.누구든 궁금증을 손쉽게 풀 수 있는 시대입니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번째 국정감사가 반환점을 돌았다.조기 대선 뒤 5개월 만에 열리는 이번 국감에서 여당은 윤석열 정부, 야당은 이재명 정부의 실정을 각각 겨냥한 다양한 공세를 펴고 있다. 치열한 정쟁에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은 가려지지 않고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먼저 눈이 갔던 건 더불어민주당 허성무(창원시 성산구) 의원이 낸 ‘지역혁신 벤처펀드 도입 취지 무색’이란 자료였다. 허성무 의원실이 한국벤처투자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2022~2024년) 지역혁신펀드를 통해 투자된 약 2028억 원 중 절반
지방선거가 7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신종 철새’가 경남으로 날아들 시기다.정치권에서 권력을 좇아 이당저당을 옮겨다니는 ‘철새 정치인’… . ‘불사조’ 이인제 씨가 대표적이겠다. 그는 올해 대선 때도 김문수 당시 국민의힘 후보와 단상에 올라 건재함(?)을 과시했다.‘철새계’는 다시 진화했다. ‘지역구 혹은 선거 단위 갈아타기’, ‘선거 전 고향으로 주소지 이전 후 출마’와 같은 형태다. 이른바 ‘신종 철새’다.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안상수 전 창원시장이 경남지역에서 그 길을 활짝 깔아줬다.최근 인물로는 ‘명태균’ 이름 뒤에 붙는
‘연예인 아무개 친구 집에서 숨진 채 발견’.숨진 사람은 누구일까요? 연예인 아무개일까요, 아니면 친구일까요? 며칠 전 온라인에 수십 건 쏟아졌던 어느 뉴스의 제목이 바로 이런 형태였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헷갈리거나 착각하게 만들고 궁금증을 자극하는, 이른바 낚시 제목인 거죠. 설마 하면서도 결국 클릭해 읽어보게 만듭니다. 역시, 숨진 건 아무개가 아니었습니다. 이 제목이 기사의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려면 이렇게 작성되었어야 할 겁니다. ‘연예인 아무개 친구, 집에서 숨진 채 발견’.‘모모시 청년 일자리 지원 정책 요구 확대’.모모시
“고문님, 가을엔 특강 한 번 하셔야죠.”아마도 올 3월 초였지 싶다.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고문을 주말판 고정 칼럼 ‘역사 살롱’ 필진으로 모시는 저녁 자리에서 “나이 더 드시기 전에 회고록 꼭 내셔야 됩니다”와 함께 특강을 해보시면 좋겠다는 제안을 드렸다.참고로 구주모 고문은 경남도민일보 대표를 끝으로 36년 신문사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3월 퇴임했다. 구 고문은 흔쾌히 수락하면서도 전제를 달았다.“회사에는 절대 손을 내밀지 말고, 신문사 외연 확장에 무조건 도움이 돼야 한다. 당연히 시민들에게도 부담을 드려선 안 되고!”“물론
배우자로, 아빠로 누리는 무난한 일상은 19년 전 아내가 내린 은총에서 비롯한다. 당시에는 대단한 축복인지도 몰랐다. 삶에서 얻거나 흘렸을 행운 가운데 하나로 여겼다. 얻었기에 고맙지만 흘렸더라도 집착하지 않았을 테다.무감해서도, 욕구가 없어서도 아니다. 상대 마음을 얻는 노력보다 얻지 못했을 때 상처를 먼저 셈했다. 관계 속 비겁한 처신을 간절하지 않은 듯한 태도로 감추곤 했다. 그런 사람에게 옆을 내준 아내는 그때도 지금도 남편보다 용감하다. 그 과정에서 프러포즈를 생략한 게 돌이킬 수 없는 원죄로 남았다. 아내 생일에 깜짝 선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려면 직장도 가정도 아닌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10년 전인가 어느 모임에서 한 여성분에게 들은 말이다. 그분은 돌이켜보니 네일아트숍이나 미용실이 자신에게 그런 공간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제3공간이란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던버그가 1989년 발간한 책 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예 (풀빛·2019년)란 제목으로 번역돼 출간됐다. 책에서 제3 공간이란 집도 직장도 아닌 곳에서 마음이 조용히 쉬고, 사람과 사람 사이 연결이 살며시 이어지는 공간, 현대인의 피로를 풀고 공동체의 숨을 이어
경남도민일보가 야심 차게 새로운 기사출고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모든 일이 그렇지만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는 제각각입니다. 낯선 시스템을 빠르게 받아들이고자 계속해서 질문하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있고요, 생소한 기능을 차근히 익혀가는 사람도 있습니다.시스템 안정 책임을 진 사람으로서 적절히 다른 속도가 조화로워 다행입니다. 예를 들어 전자가 100%라면 민원 처리에 정신이 없었을 겁니다. 반대로 후자가 100%라면 시스템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잡아내기 어려웠겠죠.시범 도입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예상보다 속도감 있게 안착하고 있습니
축구 대 야구? 축구. 축구 대 골프? 축구.그렇다. 나는 누가 뭐래도 축구파였다. 경남FC 창단 당시 스포츠 담당을 한 게 큰 영향을 끼쳤다. 경남FC 창단 과정을 쭉 지켜봤으니 '우리 구단'이란 생각은 당연했다. 회사에서 상여금(보너스)을 받자마자 구단 주식을 샀을 정도니 말이다.박항서, 조광래, 최진한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경남FC를 보는 것도 한때는 낙이었다.그러나, 최근들어 축구장 가는 길이 어색해졌다. 저지(축구팀 유니폼) 대신 화사한 야구팀 유니폼을 사고, 그라운드보단 잔디를
마산 야구팬들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서러웠다. 롯데자이언츠는 선심 쓰듯 1년에 두어 차례 제2 연고지 마산을 찾았다. 지역 팬들은 그것에 고마워하며 야구 갈증을 풀어야 했다. 그 시간은 30여 년간 이어졌다.2011년 지역 팬들은 '진짜 우리 연고 구단' NC 다이노스를 맞이하게 됐다. 그해 3월 31일 당시 김택진 구단주는 프로야구단 창단 이유를 밝혔다."내가 야구로 용기를 얻었듯, 나 또한 야구를 통해 많은 사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싶다."지역민들 심장은 그렇게 요동쳤다. NC 다이노스는 2013년 1군 첫 시즌에서
'16만 8000가구. 2023년 65세 이상이면서 홀로 사는 경남의 가구 수. 2015년 대비 61.5% 6만 4000가구 증가.' 1인 가구 증가 현상은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며칠 전 기사에서 유독 고령층 지표만은 새삼스러웠습니다. 사회적으로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고령층 가구의 현실을 근래 실감했기 때문입니다.동네 주택가에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던 어르신이 집 안에서 숨진 지 며칠 지나 발견됐습니다. 한동안 기척이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긴 이웃이 행정복지센터에 알려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 다른 집에서는 작
딸은 자기표현에 인색하다. 애써 이름난 식당을 찾아 맛있는 것을 먹여도 좀처럼 반응이 없다. 무덤덤한 딸을 견디는 게 아빠 업보라면 애써 답을 얻어내는 게 직업인 아빠를 견디는 게 딸 업보다. 아빠는 기어이 이런 질문을 짜내고야 만다."이 식당은 별이 몇 개야?""별을 주는 기준이 뭐야?"질문을 질문으로 되받는 것은 엄마에게 배웠을 요령이다. 딸은 아내가 지나온 과거고 아내는 딸이 맞이할 미래다. 둘 다 표현이 건조하기는 매한가지다.별 주는 기준을 제시했다. 한 개는 온 게 후회되는 곳이다. 두 개는 후회할 정도는 아니지만 다시 찾
최근 문학과지성사에서 이창동 소설집 와 두 권을 재출간했다. 40년 만이라고 한다.이창동은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교사로 일하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저리'가 당선돼 문단에 들어선다. 그가 쓴 '눈 오는 날', '용천뱅이', '슈퍼스타를 위하여' 같은 작품에는 시대와 인간, 윤리와 고독이라는 주제가 겹겹이 녹아 있다. 그가 다루는 인간은 강하지 않다. 오히려 흔들리고, 좌절하며, 질문을 멈추지 않는 쪽이다.질문은 소설에서 영화로 이어진다. 감독 데뷔작인 (1997)에서
"니들은 그러고 살아도 돼요." 눈을 의심했다. 지난주 폭우 피해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산청시장에 물이 차올라 차량이 침수되는 모습이 담겼다. 그러고 살아도 된다고? 지금 물바다인데?익명성 뒤에 숨은 악플러들이 판 치는 세상이라지만 일촉즉발 위기인 상황을 눈앞에 두고도 어쩌면 이런 댓글을 달 수 있을까.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악플러 마음을 읽어 보기로 했다. 어떤 감정, 어떤 상황이 이런 댓글을 달게 했을지 세 가지 시나리오를 떠올려 봤다.첫째는 지역감정이다. '니들은'에 집중했다. 니들 = 산청 = 경상도. 댓글을 단 이
솔직히 좀 놀랐다. 지역의 공허한 목소리일 줄만 알았던 '지역 이전 공공기관의 지역 은행 거래 활성화'를 대통령 직속기구인 지방시대위원회에서 다루고 있을 줄이야. 그것도 윤석열 정부에서. 윤 정부는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라는 국정과제를 채택해 요란하게 발표했지만 말뿐이었다.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임기 내에 반드시 할 것처럼 계속해서 국민을 속이며 희망 고문만 하다 내란사태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지방시대위원회 보고서 핵심은 지역 이전 공공기관의 경영
정쌍학(국민의힘·창원시 월영, 문화, 반월중앙, 완월) 경남도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때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3월 9일 집회 때 "(대통령의 계엄은) 계엄령이 아니라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계몽"이라고 말했다.정 의원은 지난달 20일 경남도의회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그는 8일 '경남도의회 국민의힘 4기 원내대표단' 기자회견에서 "지난날 정치적 혼란을 성찰하고 쇄신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12.3 불법 비상계엄도 성찰 대상으로 삼는지를 물었다. 그는 "탄핵이나 계엄 관련 질문은 적절하지 않
'어, 이 기사 본 적이 있는데.' 지면 편집 단계에서 이런 느낌이 들 때는 왜 그런지 이유를 반드시 확인합니다. 편집부로 넘어오기 전에 취재부서에서 수정 중인 기사를 미리 읽어봐서 그럴 수도 있고,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된 기사를 봤을 수도 있죠. 다른 지역에서 혹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과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나오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드물게 착오가 생겨, 어제와 똑같은 기사가 오늘 지면에 또 들어가 있기도 하고, 한날 다른 페이지에 같은 기사가 배치되기도 합니다. 인쇄 전에 이런 오류를 걸러내려면 편집기자는 기사 기시감이 들
요즘 '동북아 중심 도시' 창원에서 사는 게 정말 피곤하다. 윤석열 파면으로 '내란성 두통'과 불면증이 좀 가라앉나 싶었는데,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 논란'이 일면서 다시 짜증이 느는 중이다. 짜증의 중심엔 단연 세 사람이 있다. 김미나·남재욱 시의원 그리고 손태화 시의회 의장….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김미나 의원은 2023년 11월 누리소통망(SNS)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화물연대 조합원을 대상으로 "자식 팔아 한몫 챙긴다", "민주노총은 양아치 집단"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다섯 차례 모욕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모두 징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