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로 생긴 ‘제3의 공간’들
일상에 지친 이들의 안식처 되길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려면 직장도 가정도 아닌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

10년 전인가 어느 모임에서 한 여성분에게 들은 말이다. 그분은 돌이켜보니 네일아트숍이나 미용실이 자신에게 그런 공간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제3공간이란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던버그가 1989년 발간한 책 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예 <제3의 장소>(풀빛·2019년)란 제목으로 번역돼 출간됐다. 책에서 제3 공간이란 집도 직장도 아닌 곳에서 마음이 조용히 쉬고, 사람과 사람 사이 연결이 살며시 이어지는 공간, 현대인의 피로를 풀고 공동체의 숨을 이어가는 작은 틈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제3의 공간을 일과 가족을 벗어나 오로지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곳, 자신으로 숨 쉴 수 있는 곳 정도로 생각하고있다. 정해진 틀은 없다. 다만 나만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면 된다. 그냥 그곳에 가면 친구 한 두명은 항상 있는 장소이거나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여성분이 말한 네일숍이나 미용실도 좋다. 아니면 혼자 조용히 있을 도서관이나 카페일 수도 있다.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이 열리는 요즘 동네책방도 어떤 이에게는 중요한 제3 공간이겠다.

최근 통영에 대놓고 ‘제3의 공간’으로 이름 붙인 곳이 생겼다. 통영에서 연극하는 이규성, 제상아 씨가 만들었다. 오래되고 조금은 독특한 주택을 고쳐서 희곡을 읽고 보고, 머무르며 창작의 기운을 새롭게 채울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다. 가정과 무대 사이 좀더 편하고 폭넓게 연극을 즐길 공간이라고 한다. 제3의 공간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연극을 붙들고 있는게 염려되긴 하지만, 부디 두 분에게 공간 운영의 스트레스보다 편안하게 숨 쉴 기회가 더욱 많길 바란다.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에 얼마전 ‘수상한 옆집’이란 공유 공간이 생겼다. 예술종합상사 ‘예종’과 디자인 회사 ‘꽃피는 열두달’이 원래 쓰던 사무실 공간을 고쳐 새 사업으로 시작한 일이다. 아지트 같은 편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니 마찬가지로 제3의 공간을 지향하는 듯 하다. 생계로 학업으로 바쁘게 흘러가는 도시 생활에서 잠시 멈춰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와 다른 삶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자주 열리면 좋겠다. 비슷한 시기에 의창구 도계동에 문을 연 ‘청음공간 템포’도 제3의 공간 범주로 묶을 수 있다. 이름 그대로 음악을 매개로 사람들이 연결되는 곳이다. 애초에 주인이 삶을 즐겁게 살고 싶다며 연 공간이기에 더욱 제3의 공간에 어울리는 곳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제3의 공간은 어느 정도 노마디즘(Nomadism)과 맞닿아 있다. ‘경계 바깥’에서의 자유로운 삶과 관계 맺기라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노마디즘은 어디든 이동하기 쉬움이란 뜻을 품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이동의 자유를 꿈꾸면서도 일상에 묶여 있다. 제3의 공간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노마드적 저항’을 가능하게 하는 거점이다. 이런 저항은 제3의 공간을 더욱 단단하게 유지하고, 새롭게 발전시킬 수도 있다. 이는 현대 도시 문화와 공동체 형성과 관련해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잠시 머물다 떠날 수 있는 동시에, 머무는 동안 새로운 관계나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 모순이지만, 삶은 결국 혼자이면서 함께 살아내는 것이다. 제3의 공간이 이런 모순을 품어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이서후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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