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된 '가격추락 농민 울분'보도
농업 6법 속도 내는 새 정부에선 바뀔까

'어, 이 기사 본 적이 있는데.' 지면 편집 단계에서 이런 느낌이 들 때는 왜 그런지 이유를 반드시 확인합니다. 편집부로 넘어오기 전에 취재부서에서 수정 중인 기사를 미리 읽어봐서 그럴 수도 있고,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된 기사를 봤을 수도 있죠. 다른 지역에서 혹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과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나오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드물게 착오가 생겨, 어제와 똑같은 기사가 오늘 지면에 또 들어가 있기도 하고, 한날 다른 페이지에 같은 기사가 배치되기도 합니다. 인쇄 전에 이런 오류를 걸러내려면 편집기자는 기사 기시감이 들 때 단순한 착각으로만 여기지 말고 꼭 중복 게재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이거 봤던 기사 같다 싶어 찾아봤는데요…." 지난 월요일 오후, 1면에 들어갈 기사를 받아본 편집기자가 말합니다. 다른 지면도 아니고 1면 용 기사인데 설마, 하는데 편집기자가 덧붙여 말합니다. "딱 1년 전 기사 때문이에요."

그날 오전 창녕농협 공판장에서 햇마늘 초매식이 열렸습니다. 창녕은 국내 최대 마늘 주산지인 데다, 인근 지역 마늘이 창녕 경매장으로 모이기도 해서 '가격 가늠자'가 될 창녕 초매식에는 늘 전국 마늘 농가의 시선이 집중됩니다. 언론도 해마다 이맘때 초매식 보도를 하죠.

그럼에도 지난해 초매식과 올해 초매식은, 편집기자가 착각할 만큼 닮았습니다. 2024년 7월 2일 자 기사 큰 제목은 '생산비도 못 건지는 경매가에 농민들 마늘망 짓밟았다', 작은 제목은 '상품 ㎏당 평균 4000원 못 미쳐/생산비 보장가 건의에도 헐값/농민들 분통 수차례 경매 중단'입니다. 지난달 30일 자 기사 큰 제목과 작은 제목은 이렇습니다. '생산비 3950원 경매가는 3500원 참다못한 농민들 "집어치워라"', '올해도 평균 4000원 선 못 넘어/시작 20분 만에 중단됐다 재개/생산자협, 유통구조 개혁 요구'.

복사한 것 같은 이 상황의 원인은 명확합니다. 마늘 가격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수년째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것이죠. 산지 생산비는 해마다 오르지만 경매가는 생산비의 보전을 장담하지 않습니다. 수급 조절 장치와 가격 안정 장치가 부족하니 산지 작황이 좋으면 가격이 폭락하고, 작황이 나쁘면 수입 물량을 늘립니다. 풍작에도 흉작에도 농민들은 수익을 남기지 못하는데 중간 유통상은 많은 이윤을 거둬갑니다. 불합리한 시장 구조에서 손실은 언제나 농민의 몫입니다. 수확하면 빚만 는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1년 내 가꾼 작물을 통째로 갈아엎는 모습도 계절마다 재현됩니다. 농정 실패의 연대기인 듯 반복되는 기사가, 농업 6법 처리에 속도를 내는 새 정부에서는 달라질 수 있을까요.

변화가 없는 초매식 장면 위에 바뀌지 않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얼굴이 포개어집니다. 농민들은 송미령 장관이 전 정부에서 농민들의 울분과 고통을 깎아내리고 농민들의 바람과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했다며 유임이 철회될 때까지 투쟁하기로 했습니다. 농번기에 농업현장이 아닌 곳에서, 땡볕보다 더 뜨거운 싸움을, 농민들은 또 시작합니다. 송 장관은 그때와 지금 여건이 다르므로 이제 현 정부 국정 철학에 맞춰 일하겠다고 하면서, 과거 자기 발언과 행태에 사과하고 해명했습니다.

달라진 것은 무엇이고 달라질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합니다. '농민들 함박웃음'이라는 기사 제목은 언제쯤 쓰게 될까요.

/임정애 편집부장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