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소설 <모순> 꾸준한 인기
길을 잃으며 살아가는 법이 고민

이 소설은 뭐지?

요즘 무슨 책이 나오나 하고 온라인 서점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책이 있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이다. 처음엔 동네책방 독서 모임 같은 데서 잠깐 유행한 줄 알았다. 한강 노벨상과 성해나 <혼모노> 열풍에 밀리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다시 소설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와 있다.

<모순>은 1998년 처음 출간된 소설이다. 주인공 안진진의 나이가 스물다섯. 1998년의 나와 비슷하다. 그 시절 우리 세대는 1997년 외환 위기(IMF 사태) 이후의 불안과 세기말의 음울한 분위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소설은 당시에도 베스트셀러였다. 유행하는 건 일부러 피하는 성격이라 제법 뒤늦게 읽었다. 그래도 벌써 20년 전이다. 그런데 이 책이 요즘 다시 왜?

아는 동네책방 대표에게 이유를 물었다. “일단 재밌어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연애·결혼·엄마 같은 주제를 한 번에 다루는데, 그게 책을 좋아하는 요즘 10~30대 여성 독자들에게 크게 공감을 산다”고 했다. 그래서 스테디셀러가 된 것 같다고.

온라인으로 검색해 보니 소셜미디어에서 ‘필독서’로 추천되며 판매에 다시 불이 붙었다고 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구매자 분포를 보니 20~30대 여성이 절반 가까이 된다. 40~50대 여성도 적지 않다.

교보문고 유튜브에서는 구체적으로 결혼 전, 결혼 초, 그리고 결혼 후 시간이 흐른 뒤에 읽는 느낌이 모두 다르다고 설명한다. 결혼을 해본 적이 없으니 결혼 전과 결혼 후 변화의 의미를 잘 알 순 없다. 그저 시기마다 다른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게 되겠구나 정도만 짐작할 뿐이다.

다시 읽어보니 인물 설정이 극단적이다 싶긴 한데, 하긴 전형적인 인물이기에 삶의 모순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미혼 중년인 나는 여전히 소설 속 부모 세대가 아닌 20대의 안진진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이 역시 결혼을 안 해서인가?

“스물다섯 해를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무엇에 빠져 행복을 느껴본 경험이 없는 나, 삶이란 것을 놓고 진지하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본 적도 없이 무작정 손가락 사이로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는 나, 궁핍한 생활의 아주 작은 개선을 위해 거리에서 분주히 푼돈을 버리는 것으로 빛나는 젊음을 다 보내고 있는 나.” (17쪽)

만약 누가 나에게 20대로 돌아가고 싶으냐 묻는다면,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더러 ‘무엇이든 이룰 가능성’이라고 포장되곤 하지만, 20대 특유의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무엇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을 다시 감당할 자신이 없다. 입시 중심 교육을 받아온 우리 세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해 지는지, 그저 적당히 세상에 맞춰 사는 게 정답인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소설 속 안진진은 수많은 모순 속에서 결국 선택을 한다. 나는 그러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다. 분명히 삶의 어느 지점에서 놓쳐버린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 소설을 다시 읽으며 내가 놓쳐 버린 게 무엇인지, 그게 언제쯤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그 어느 것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삶의 모순 속에서 늘 길을 잃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길을 잃었을 때 오히려 얻는 게 더 많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알고 있다. 삶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살아간다.

/이서후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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