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은 한 사람이 들인 국민의힘 원죄
참회도 회개도 없이 고작 10개월 흘러

배우자로, 아빠로 누리는 무난한 일상은 19년 전 아내가 내린 은총에서 비롯한다. 당시에는 대단한 축복인지도 몰랐다. 삶에서 얻거나 흘렸을 행운 가운데 하나로 여겼다. 얻었기에 고맙지만 흘렸더라도 집착하지 않았을 테다.

무감해서도, 욕구가 없어서도 아니다. 상대 마음을 얻는 노력보다 얻지 못했을 때 상처를 먼저 셈했다. 관계 속 비겁한 처신을 간절하지 않은 듯한 태도로 감추곤 했다. 그런 사람에게 옆을 내준 아내는 그때도 지금도 남편보다 용감하다. 그 과정에서 프러포즈를 생략한 게 돌이킬 수 없는 원죄로 남았다. 아내 생일에 깜짝 선물을 회사로 보내도, 결혼기념일을 혼자만 기억해도 옅어지지 않는 낙인이다.

기독교 세계에서 원죄는 스스로 어찌할 수 없기에 가혹하다. 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고 죄로 거둔 이익도 없으며 죄를 갚을 방법도 없다. 유일한 구원은 구세주를 향한 믿음과 영접만으로 이뤄진다. 무려 2000년을 훌쩍 넘은 가르침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원죄를 직설한 로마서 5장 12절은 지금 국민의힘 처지와 얼추 맞아떨어진다. 지난해 12월 3일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는 국민의힘으로 들어왔다. 내란은 국민의힘 의도가 없고 이익이 없으며 당장 갚을 방법이 없더라도 짊어져야 할 원죄가 됐다. 하지만, 원죄를 받아들이는 정치인 태도는 종교인과 사뭇 다르다.

국민의힘은 21일 대구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었다. 장동혁 대표는 “이재명이 국민 위에, 헌법 위에 군림한다”며 “대한민국이 인민 독재로 달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독재와 더불어민주당 공작·광기를 막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내란특별재판부는 황당무계한 인민재판”이라고 주장했다. 양향자 최고위원은 “민주당은 입법 독재, 법원 찬탈을 자행하고 있다”며 거들었다.

집회 온도에 맞춘 선동으로 보기에는 공적인 영역에서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신성범(국민의힘·산청함양거창합천) 의원은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더불어민주당 내 강경 세력들이 계속 내란 몰이를 해 심리적 내전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란인지 아닌지는 형사 재판 결과를 봐야 한다”는 말로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계엄은 윤석열 잘못, 내란은 다른 문제’라는 인식은 국민의힘에서 두루 퍼지는 모양새다. 몇 달 전에는 그래도 주춤하던 자기합리화가 부쩍 늘었다. 더 나아가 내란 언급에 대한 반응은 점점 거칠고 신경질적이다.

나경원(국민의힘·서울 동작을) 의원은 1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내란이 만병통치약이냐”, “내란 종식 외치면 국민이 다 익스큐즈 해주는 것 같으냐”는 발언을 남겼다.

19년 전 프러포즈를 생략한 죄인은 원죄가 언급될 때마다 회개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마음 상한 아내를 그대로 영접하고 용서와 화해를 믿는다. 종교인은 2000년 넘게 버텼는데 고작 20년도 채우지 못한 죄인 아닌가. 그런 점에서 참회도 회개도 없이 버틴 국민의힘이 억울할 일은 더욱 없다. 200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니고 20개월도 아니고 이제 겨우 10개월 정도 됐다.

그리고 연인들은 제발 프러포즈를 생략하지 말자.

/이승환 자치행정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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