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가 오가는 재난에 '그래도 된다'라니
대체 왜 이러나 생각해봐도 답 찾기 실패
"니들은 그러고 살아도 돼요." 눈을 의심했다. 지난주 폭우 피해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산청시장에 물이 차올라 차량이 침수되는 모습이 담겼다. 그러고 살아도 된다고? 지금 물바다인데?
익명성 뒤에 숨은 악플러들이 판 치는 세상이라지만 일촉즉발 위기인 상황을 눈앞에 두고도 어쩌면 이런 댓글을 달 수 있을까.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악플러 마음을 읽어 보기로 했다. 어떤 감정, 어떤 상황이 이런 댓글을 달게 했을지 세 가지 시나리오를 떠올려 봤다.
첫째는 지역감정이다. '니들은'에 집중했다. 니들 = 산청 = 경상도. 댓글을 단 이의 지역 정보는 없지만 영호남 지역감정이 작동했을 가능성에 의심이 들었다.
최근에는 '대놓고' 지역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다. 그건 정말 구시대적인 발상이란 걸 모두 아니까. 하지만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온라인에서는 아직도 지역감정을 드러내는 데 스스럼이 없다.
경상도에 아주 악감정을 가진 누군가가 지역감정의 한 표현으로 댓글을 달지 않았을까 추측해봤다. 하지만 그것도 뭔가 석연치 않다. 지역감정 때문이라기엔 이번 폭우로 호남지역도 큰 피해를 봤다. 광주·전남을 비롯한 호남지역도 사흘간 6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고, 집중호우 당시에 광주·전남에서는 각각 2명, 1명이 실종되기도 했다. 가축 폐사, 농작물 침수, 도로 파손 등 피해는 말로 못한다.
우리 동네에도 큰 재해가 벌어지고 있는데, 제아무리 밉다 한들 동병상련 마음이 더 크지 이런 댓글을 달리 없지 않나.
한 발 더 나아가봤다. 니들 = 산청 = 경상도 = 보수. 둘째 시나리오는 진영 갈등이다. 경남은 대표적인 보수다. 산청은 그중에서도 보수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지난 대선 득표율을 보면 전례 없는 내란 국면에서도 국민의힘 후보 득표율이 63.69%를 차지했다. 산청군수 국민의힘, 지역구 국회의원 국민의힘, 도의원 국민의힘, 군의회 의장 국민의힘, 군의회 부의장 국민의힘, 군의원 10명 중 8명 국민의힘이긴 하다.
대표적 보수 텃밭이다 보니 이재명 대통령 당선 직후에 원망도 많이 받았다. 경남 산청은 '아묻따'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수 정치인을 뽑는 곳이니까, 당신들이 원인을 제공했으니 그 결과로서 재해를 받아들이라는 뜻이었을까?
논리가 성립하지도 않을뿐더러 생사가 달린 문제에 이까짓 이유로 '쌤통이다' 하면서 댓글을 다는 사람은 없겠지. 없을 거다.
마지막은 '심심해서'이다. 국가적 재난이 들이닥쳤다 한들 내 알 바냐. 내 집 창밖이 쨍쨍하면 다른 세상 이야기다.
그냥 좀 심심한 주말. 딱히 할 일도 없이 쇼츠만 몇 시간째 보고 있다가 이 영상을 본 것이다. '음.. 비 왔대? 많이 왔대? 물에 잠겼대? 경상도래? 주변에서 경상도 뭐라고 하던데'라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댓글 창을 열고 "니들은 그러고 살아도 돼요"라는 댓글을 달았을 수 있겠다.
세 가지 중 어느 시나리오가 정답일까? 누군가의 목숨이 왔다갔다, 삶이 송두리째 휘청거리는 상황을 목격하고도 애써 자기 시간을 들여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어떤 심리였을까. 차라리 마지막 '심심해서'였으면 좋겠다. 그래도 셋 중엔 가장 '인간적인' 시나리오니까.
/김해수 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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