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만 꼭 다녀와야 했다. 숙제였다토요일 아침, 첫 번째 울리던 휴대폰 알람을 끄고 잠을 청했다. 곧 두 번째 알람이 울었다. 머리가 무거웠지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이미 잠이 깨어 달아났다. 밖은 이미 밝아진 지 오래됐다. 맑고 투명한 아침이 아니었다. 공기 중에 뿌연 습기가 가득한 느낌이었다. 하늘에는 탁한 구름이 깔렸다. 이렇게 이른 아침의 창밖의 풍경은 낯설다. 매일 자정이 넘고도 한참 지나서야 잠이 드는 습관을 고치지 않는 한 이른 아침 풍경의 낯섦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세수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에 마음이 바빴다. 흐린 하늘에서 곧 비가 떨어질 것 같았다. 강소농 취재에서 농장은 실외 사진이 필수인데 비가 내리면 여간 복잡해지는 게 아니다. 사진을 찍고자 다시 거창을 찾아가기란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아니나다를까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비가 흩뿌리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조마조마하는 마음에 당도한 곳은 거창읍 가지리에서 이수미(46) 사장이 남편 박창구(54) 씨와 함께 가꾸는 '거창 이수미팜베리' 농장이다. 다행히 아직 굵은 비는 내리지 않는다.1만 4000평 농장서 기르는 베리 5종...
"이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보통 인터뷰를 하러 가면 자신이 살아온 행적을 찾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기자에게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경석 대한노인회 창원시마산지회장은 달랐다. 자신의 삶을 얘기하기보다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노인회 창원시마산지회와 마산노인종합복지관에 대해서만 끝없이 늘어놓았다. 자기 자신을 알리는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아버지가 봐온 사주 덕에 '열심히 살자'마산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가는 건 예상보다 어려웠다. 보통 시 단위 복지관 정도면 길에 눈에 잘...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지만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조선 중기의 문인이었던 신흠의 책 '야언'에서 나오는 글이다. 주변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향기'를 지켜나가겠다는 이 문구를 커다랗게 걸어놓은 한 고기집. 이곳에서 지키고 싶은 향기란 무엇일까.뿌린 대로 거두는 장사에 매력 느껴인터뷰이를 정하지 못해 헤매고 있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조선고기'에 한 번 가보라는 말이 나왔다. 어디 있는 곳이냐고 물으니 회사 바로 맞은편, 산호동에 있는 곳이라고 한다. 드물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많지도...
경남도민일보가 두 번 개최한 '독자와 기자의 만남'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달 주인공은 장진석(42)이라는 독자다. 그는 두 번째 행사 때 뒤풀이 자리까지 함께하면서 재치있는 입담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인터뷰 요청 때도 망설임 없이 단번에 승낙했다. 사실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일단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에 있는 마을 작은도서관이었다.수많은 일 가운데 본업은?도서관을 혼자 지키고 있던 장진석 씨가 내민 명함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좋아...
무논에 미늘띠기 아지매 혼자서 써레질하고 있다. 땡볕 무논 위로 미늘띠기 아지매 등허리가 섬처럼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하고, 똥뫼산에서는 소쩍새가 '니기미니기미' 울어댄다. 모판에 쪄놓은 모들은 새파랗게 차오르고….일찍 고향을 떠났던 아버지는 농사에 서툴렀다. 예순이 가까운 나이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농사는 모든 게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일이었다.벼농사는 볍씨를 골라 모판을 찌는 것에서 벼를 베고 말리고 매상을 할 때까지, 과실나무는 가지를 치는 것에서 솎아내는 것까지. 농사는 꼬박이 1년이 지나야 겨우 한 바퀴 학습이 되는 것이...
창원시 진해구 여좌동 육군대학 터입니다.통합 창원시의 새 야구장부지로 되었다가 무산된 후 진해시민들의 큰 반발을 야기한 곳이기도 합니다.육군대학은 1910년 일본군이 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요새사령부를 설치했고 1912년부터 1944년까지 포병대대가 함께 주둔하기도 했습니다. 1944년부터 1950년까지 진해중학교가 있었고, 1950년에는 육군포병학교가 주둔했으며,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육군사관학교로 사용되었습니다. 1954년에 육군대학이 이곳에 들어와 42년간 진해에 주둔하게 됩니다.1996년 국방부의 3군 ...
1977년 개봉한 영화 는 톱 연주로 시작된다. 날이 채 밝지 않은 새벽 한 호송차가 아메리카 사막을 가로지른다. 이때 흘러나오는 톱 악기의 선율은 음산한 분위기를 낸다. 바람 소리처럼 들리기도, 어느 한 여자가 흐느껴 우는소리 같기도 하다. 톱 연주는 관객을 단숨에 몰입시킨다.최근 몇 년 사이 나무를 자르는 톱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도내에서는 진효근(63) 씨가 대표적이다.지난 6월 2일 창원에서 열린 '제1회 환경음악회'에 참여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도내 여러 행사에서 ...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고대 그리스 의사의 말씀은 현실에서 증명됐다. '예술은 배고픈 직업', '예술을 하려면 돈이 많아야…'라는 말은 진실로 자리를 잡아간다. 2011년 서른세 살의 시나리오작가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 하고 세상을 등진다. 배고픈 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예술가 복지법이 마련됐고 2012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문을 열었다. 예술인 복지 지원에 걸음마 단계인 재단에서는 예술인의 창의적인 시각을 통해 지역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문화예술적 수요를 충당코자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15년 국악 분야...
신가람(GARAMI). 33세. 드로잉 아티스트.그동안 인터뷰를 거부하던 녀석이 웬일로 자청해서 인터뷰를 하잔다. 녀석을 처음 알게 된 건 인디밴드 '엉클밥'의 기타리스트로서다. 실력이 꽤 좋았다. 경남에 괜찮은 기타리스트가 하나 있구나 생각했다. 알고 보니 이 녀석 하는 일이 한둘이 아녔다. 제법 유명한 음식 블로거인 데다, 캐릭터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했다. 참 재주가 많은 놈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요즘에는 '리틀포니'란 제목의 그림책을 만드는 일에만 푹 빠져 산다. 최근 이런저런 고민이 많더니, 드디...
. 개빈 멘지스(Gavin Menzies)라는 영국 작가가 지난 2002년 출간한 '도발적인' 책 제목이다. 2004년 국내에 번역 출판된 이 책은 많은 이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서구 열강에 늘 치이기만 했던 동양이 사실은 아메리카를 처음 탐사한 '전 지구적 선구자'였다니!멘지스는 명나라 영락제가 기획한 대항해가 알려진 것처럼 아프리카 동부해안에서 끝난 게 아니라 대서양 너머 아메리카에까지 이르렀다고 말한다. 사실이라면 콜럼버스를 지우고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한다. 물론 주류학계가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아 이 주장은 주장에 머무르...
한 사람의 인생은 태어나면서 시작해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이야기 한 편'이다. 그 이야기는 중요한 마디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고, 성장하고, 또 확산된다. 이야기의 마디들이란 인생과 관련한 사자성어들에 잘 녹아들어 있다. 우리 문화권에서는 관혼상제(冠婚喪祭)와 생로병사(生老病死) 등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마디 짓는 중요한 이야기 골격들이라고 할 수 있다.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집단이 공동체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이야기 마디들은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다음 열 ...
간혹, 음악을 들려주는 입장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아니 들어보지 못한 곡을 신청받고나면 순간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더군다나 그 곡을 찾기가 쉽지 않을 땐 그야말로 등골에 진땀이 흥건해진다. 하지만 어렵사리 찾은 음악을 틀 땐 나 자신 또한 깊은 감상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노랫말과 음률이 제대로 와 닿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험으로 은 나의 가슴에 다가왔다.이 곡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시절의 한을 품고 끊임없는 구전으로 명맥을 이어오다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노래다. 구구...
안녕하세요, 쿠엔틴 타란티노. 팬레터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 게다가 받는 사람이 쿠엔틴 당신이라 어쩐지 떨리는군요. 작년 11월 당신이 했던 말 기억해요? 열 번째 작품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고 했던 그 말. 당신 말대로라면 이제 두 편이 남았네요. 올해 개봉될 '헤이트 풀 에이트(The Hateful Eight)'까지 계산하면 말이죠. 영화감독은 젊은 사람들의 일이다, 라고 당신은 덧붙였죠. 당신이 자주 쓰는 표현대로 하자면 그건 너무나 '쿨'했어요. 영화감독 쿠엔틴의 작품을 이제 몇 편 못 본다고 생각하니 물론 ...
"지금 그 말씀, 여과 없이 보도해도 됩니까?""아, 그럼요! 못할 말 했습니까?"돌려 말할 줄을 모른다. 정곡을 찌른다. 그와 대화한 사람은 일단 속이 시원하다.지난 6월 열린 '마산자유무역지역 발전전략 및 제도개선 방안' 세미나에서도 그랬다.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던 마산자유무역지역이 어쩌다가 이렇게 추해졌습니까? 50대가 성형수술(구조고도화 사업)한다고 20대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새 공장 아무리 지어도 지금과 같은 구닥다리 제도로 좋은 기업 유치하기 어렵습니다. 세미나라고 바쁜 사람들 불러서는 이미 보도된 뉴스 그대...
비가 오락가락하며 우중충한 날씨를 보이던 장마철의 어느 날 오후, '꽃 중년' 유병희(55) 진주 복음병원장을 만났다.20대 청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주름 없는 피부는 유 병원장의 전문 분야가 피부과가 아닌지 의심케 할 정도.하지만 정형외과 전문의인 유 병원장은 고관절, 무릎관절, 척추질환, 수부 및 족부관절 등의 질환을 주로 진료하고 있다."진주 외곽 지역은 농촌 고령 인구가 많습니다. 그래서 무릎 퇴행성 관절염과 어깨 회전근개 증후군 환자가 많죠. 무릎과 어깨 관절 내시경 수술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유 병원장에게 어깨 ...
7번째 인터뷰. 2013년 5월 1억 원 기부약정으로 경남 아너소사이어티 28번째 회원에 이름 올린 박지원(50) ㈜위딘 부사장이 주인공이다. 지금까지의 인터뷰이와 다른 점은 여성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동시에 부부 회원이라는 점도 남다르다. 현재 경남의 56명(7월 15일 기준) 회원 중 여성은 5명, 부부는 4쌍이다.덧붙여 소개하자면 그는 회사에서 중역을 맡고 있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자, 사장인 남편을 뒷받침하며 회사를 키워온 내조의 여왕이면서 가정일까지 돌보며 세 아들을 길러낸 억척엄마이다. 인터뷰를 통해 팔색조의 모...
정치적 지형을 논할 때, 서울 구로구는 전통적인 야권 강세 지역구 중 하나로 꼽힌다. 선거 정국에서 떠오른 이슈와 '바람'의 향방에 따라 다소 변화가 나타나긴 했지만, '구로구'는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대변되는 민주계와 진보·노동계의 성지로 인식돼 왔다. 지금은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지도부급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이인영 의원과 박영선 의원이 각각 구로갑과 구로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곳에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박평길(52) 의원은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구로구의원에 당선됐다. 지역구 국회의원, 구청장, 서울시의원 ...
청소년 대표, 국가대표 지내며 화려한 선수생활지금은 역도 하면 으레 '역도 여제' 장미란이 떠오르지만 199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여자역도의 간판 타이틀은 언제나 김순희(현 경남도청 코치)의 몫이었다.김 코치는 1999년 경남대 4학년 재학시절 출전한 '제12회 세계역도선수권대회' 75㎏급 용상 경기에서 135㎏을 들어 올려 한국여자역도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획득했다.당시 경남대 감독을 지냈던 김철현(55·경남도청 감독) 경남역도연맹 실무 부회장은 "의신여중에서 투포환을 주로 하던 순희를 보고 스카우트했다. 역도 입...
40~50여 년 전 김해에는 서점이 모여있던 거리가 있었다. 교학사, 문예당, 능력서점, 동아서점, 오복당서점 등 지역에서 터를 잡은 서점이 서로 경쟁하고 상생하며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할인과 무료배송을 앞세운 대형 인터넷 서점, IMF 후폭풍, 이동하는 상권을 버티지 못 하고 연달아 문을 닫았다.그래도 반가운 이야기가 있었다. 그 명맥을 15년 전 자리를 옮긴 오복당서점이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복당서점은 건재했다. 책 파는 공간 그 이상의 몫을 하는 듯 버스정류장 팻말에도 이름을 새기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