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거리'의 남은 자존심, 위기 넘고 김해 시민의 '보물'로 자리

40~50여 년 전 김해에는 서점이 모여있던 거리가 있었다. 교학사, 문예당, 능력서점, 동아서점, 오복당서점 등 지역에서 터를 잡은 서점이 서로 경쟁하고 상생하며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할인과 무료배송을 앞세운 대형 인터넷 서점, IMF 후폭풍, 이동하는 상권을 버티지 못 하고 연달아 문을 닫았다.

그래도 반가운 이야기가 있었다. 그 명맥을 15년 전 자리를 옮긴 오복당서점이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복당서점은 건재했다. 책 파는 공간 그 이상의 몫을 하는 듯 버스정류장 팻말에도 이름을 새기고 있었다.

오복당서점은 찾아가기가 쉬웠다. 지나가는 이에게 물어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알려줄 듯했고 커다란 간판도 눈에 잘 들어왔다. 오복당서점은 현재 김해에서 가장 번창하는 지역 중 하나인 외동에 있다. 외동은 김해 부원동에 있던 김해시외버스터미널이 1998년 이전해온 곳이며 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지어진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인구를 밑천 삼아 성장해왔다. 외동에서도 중심 도로라 할 수 있는 내외중앙로를 코앞에 두고 자리 잡은 오복당서점을 지도에서 보면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모습이다. 이 노른자 위치로 서점을 옮긴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있던 자리에서 쫓기듯 나와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20150715010109 - 복사본.jpeg

오복당서점은 김석규(67), 이수복(60) 부부와 아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인터뷰 전 전화 통화는 김석규 대표와 했으나 바쁜 일과 탓에 그는 아내인 수복 씨에게 인터뷰를 맡기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부부가 함께 서점을 지켜왔으니 누구에게 이야기를 듣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주인 부부는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고 했다. 김 대표의 나이 31세, 수복 씨의 나이가 24세였을 때다. 78년도에 결혼해 부산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지만 84년도에 김해로 이사를 와 오복당서점을 인수받았다. 왜 서점이었을까.

"남편이 부산에서 서적계 일을 했었어요. 형님도 관련 일을 하셨고 친척 중에 책 도매 일을 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거기다 저도 책을 무척 좋아했지요. 책 관련 일하는 사람들 로망이 내 서점을 하나 갖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60년 오복당서점의 세 번째 주인

오복당서점은 1955년 김해 서상동에서 문을 연 서점이다. 첫 주인과 두 번째 주인이 30년  운영해온 서점 역사를 부부가 이어받았다. 다섯 '오(五)', 복 '복(福)', 집 '당(堂)', 손님이 절로 들어올 것 같은 이름은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20150715010129 - 복사본.jpeg

지금은 구도심이 된 서상동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만한 자리가 없었다. 근처에 내로라하는 서점들이 있었지만 각 서점마다 손님이 끊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수복 씨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생기 있던 거리의 모습과 함께 서러운 기억도 드문드문 떠오른다고 했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설움도 많았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소매 위주로 서점을 했고 근처 다른 서점들은 도매를 했어요. 도매를 하니까 책 필요하면 먼저 챙기고 우리는 뒤에 내려오는 걸 기다려야 하니까 손님들한테 빨리 공급을 못 해주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죠.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건물에서 쫓기듯 나와야 했을 때라고 했다. 당시 오복당서점 건물은 첫 주인의 소유였는데 건물이 팔리는 바람에 정든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부부가 서점을 시작한 지 15년 되던 해였다.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갈 데가 없어가지고 그때는 서점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부는 애써 마음을 다잡은 후 오복당서점이 새로 앉을 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때 막 새로이 일어나던 외동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평생 일터라 여기던 곳에서 등 떠밀리듯 나오게 된 기억이 받쳐 조금 무리해서 자리를 분양받았다.

"처음에 김해에 와서 5년만 서점을 하고 부산으로 가려고 했거든요. 그랬는데 지금까지 왔죠. 이곳으로 왔을 때 근처 아파트에 사람들이 입주하기 시작한 지 5년 정도 됐었어요. 문화를 즐길 공간은 없고 술집이나 음식점이 많았는데 서점이 생기니까 주변 지역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했어요."

20150715010122 - 복사본.jpeg

서점을 반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관련 업계 사람들은 곧 망해서 나가게 될 거라며 수군거리기도 했다. 2000년, 지역 서점들이 휘청이며 문을 가장 많이 닫았던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와서 서점을 열 때 '거기에 어떤 미친놈이 들어와서 서점을 한다', '망해서 나갈 거 같은데…' 뭐 이런 말이 관련 업계에 돌고 했거든요.(웃음) 오복당서점이 오는 줄은 모르고요."

위기는 기회가 되었다. 오복당서점은 그냥 버텨온 것이 아니라 15년 동안 터줏대감처럼 흔들림 없이 자리 잡았다.

오복당서점 사람들

오복당서점을 지키는 가족은 각각 담당하는 일이 나누어져 있다.

"보통 남편이 카운터를 보시고 밖에서 책을 가져오고 이런 일을 하고, 카운터가 빌 때는 우리가 맡죠. 매장 안 전체 관리는 아들이 하고 필요한 금융 업무나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하거나 하는 응대는 제가 해요."

수복 씨는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기억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손님들한테 제가 책을 잘 골라주고 했거든요. 어떤 중학생이 엄마한테 우리 서점에서 책을 사오라고 했나 봐요. 학생이 메모를 해준 것을 그 어머니가 저한테 보여줬는데 '서점에서 늙은 아줌마를 찾아라'라고 적혀있는 거예요.(웃음) 7~8년 전인데 처음에 그 메모를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지금은 외손자도 있고 하니까 '할머니' 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데….(웃음) 제가 책을 잘 찾아주니까 다른 사람한테 가지 말고 나한테 물어보라는 좋은 뜻으로 순진하게 그런 거죠. 그때 일하는 분 중에 조금 젊은 분이 있는데 헷갈릴까 봐 그랬나 봐요."

20150715010113 - 복사본.jpeg

서점과 함께 나이를 먹어온 그 인상은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을 닮아있다.

낡고 팔리지 않는 책에도 한 자리 내어줄 수 있는 동네서점

오후 3시, 80여 평 규모의 서점을 빈틈없이 관리하기 위해 가족과 아르바이트생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서점을 시작하고 10년 동안은 설과 명절 이외의 쉬는 날이 없었다. 이후 서적 조합이 결성되면서 셋째 주 일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 했다. 근처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그나마 마음 편히 쉬었던 휴일이 흐트러졌다. 연중무휴에 밤낮 없는 영업시간을 자랑하는 대형마트 안 서점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홈플러스가 둘째, 넷째 일요일에 쉰다고 해서 그때부터 다시 둘째 주에 하루를 쉬어요. 가족끼리 여행을 간다던지 그런 건 생각도 못하죠."

김해에 여러 대형마트가 들어섰지만 수복 씨는 일부러 전통시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사람들이 당장 가격 차이나 사은품 같은 것 때문에 인터넷서점을 이용을 많이 하는데 지역 사회에 우선적으로 소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저도 장 볼 때 마트가 편하긴 하겠지만 전통시장 다니면서 필요한 것들을 사거든요. 시장에서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다 우리 서점에 올 고객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대형마트 안에 있다는 서점이 어떤지 궁금했던 수복 씨는 슬쩍 마트에 구경하러 가보기도 했다.

"안에 서점이 있다기에 서점을 보러 갔어요.(웃음) 장사 논리를 앞세워 책을 구비하는 곳이죠. 물론 그런 부분도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 같은 동네서점은 그런 서점에 없는 장점이 있어요."

팔리지 않는 책은 금방 자리를 비워야 하는 마트 서점과 달리 동네서점에서는 책에도 기회를 준다. 팔리지 않고 몇 년을 자리만 차지하더라도 이 책이 꼭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는 말이다.

손님에게 절 받은 서점 주인

수복 씨는 그래도 힘들었던 날보다는 좋았던 날이 많았다고 했다. 특히 손님들에게서 서점하는 보람을 느끼는 날이 그런 날이었다.

"우리 서점 옆에 학원이 있었어요. 그 학원에서 재수 공부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어느 새해에 서점 앞에 와서 막 큰절을 하시더라고요. 사장님이 왜 그러냐고 일어나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학원 바로 옆에 서점이 있어서 마음대로 책을 보고 책을 빨리 살 수 있어서 합격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보통은 그런 생각은 잘 안 하잖아요. 기분 좋고 뭉클하더라고요."

만화책을 한 권 씩 훔쳐 전권을 소장할 꿈을 꾸었던 어린 학생도 있었다. 끈기가 남다른(?) 학생이었다. 그 시리즈를 다 모으려면 몇 십 번을 마음 졸이며 서점을 드나들었어야 했어야 했는데 결국 전권을 다 모아갈 때 즈음 수복 씨에게 덜미가 잡혔다.

20150715010137 - 복사본.jpeg

"가져간 만화책을 다 갖다 주면서 엄마한테는 연락하지 말아달라고 막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버릇을 단단히 고쳐야겠다 싶어서 부모님에게 연락을 했어요. 그렇게 해결하고 지나갔는데 나중에 잘 했다 싶었어요."

언젠가부터 그 학생이 눈에 자주 띄었다고 했다.

"우리 서점 앞에서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서점을 마치고 나가다 마주치면 인사하고 저기로 가면 거기까지 와서 인사하고 그러더라고요. 우리를 그렇게 마주 볼 수 있다는 건 본인이 그걸 극복을 했다는 거잖아요. 기분이 좋았죠."

'서점'한다는 사명감

수복 씨는 서점을 하면서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서점하면서 쉬는 날에 못 쉬는 게 힘들긴 했지만 다른 업종이나 직장 생활하는 사람을 부러워한 적은 없어요. 이 일을 하면서 우리 서점에 오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접할 수도 있었고 정년도 없잖아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나도 일을 도와줄 수 있으니 참 좋아요."

부부는 알맞은 시기가 온다면 아들 김호진(34) 씨에게 서점을 맡길 생각이라고 했다.

지금 서점 자리는 상권이 살아날 만큼 살아난 자리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서점을 운영하는 것보다 힘을 덜 들이며 편히 지낼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자리에 다른 걸 하면 훨씬 수익을 크게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카페, 휴대폰 대리점 같은 것을 하겠다고 이 자리를 세 내달라고 온 사람도 많았어요."

고민 없이 거절한 이유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서점은 사명감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이런 문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사명감 같은 것이 있어요. 우리가 없어지면 서점 거리를 지키던 서점이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고 인터넷서점 대신 우리 서점에서 책을 만지고 보고 사던 손님들이 갈 곳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래도 도서정가제처럼 서점을 살리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사람들 인식이 바뀌는 게 느껴지니까 힘이 나요."

20150715010131 - 복사본.jpeg

수복 씨와 대화를 마치고 나니 김 대표가 서점 안으로 들어온다. 부부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책을 한 권 샀다. 예쁜 단풍 책갈피를 받았다. 수복 씨는 가을이 오면 단풍잎과 은행잎을 주우러 이곳저곳을 다닌다고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주운 잎에 틈틈이 코팅지를 입히고 가위로 잘라 책갈피를 만든다. 손님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다.

책 속에 끼워져 읽는 이가 쉬어가게 하는 책갈피처럼 오복당서점은 오랜 시간 지역민이 쉬어갈 수 있는 문화공간을 꾸려왔다. 오복당서점은 언제 들러도 그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을 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