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아티스트로서의 저 자신을 찾아가고 있어요"

신가람(GARAMI). 33세. 드로잉 아티스트.

그동안 인터뷰를 거부하던 녀석이 웬일로 자청해서 인터뷰를 하잔다. 녀석을 처음 알게 된 건 인디밴드 '엉클밥'의 기타리스트로서다. 실력이 꽤 좋았다. 경남에 괜찮은 기타리스트가 하나 있구나 생각했다. 알고 보니 이 녀석 하는 일이 한둘이 아녔다. 제법 유명한 음식 블로거인 데다, 캐릭터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했다. 참 재주가 많은 놈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요즘에는 '리틀포니'란 제목의 그림책을 만드는 일에만 푹 빠져 산다. 최근 이런저런 고민이 많더니, 드디어 자기 길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 7월 중순 어느 날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에 있는 조그만 카페에서 녀석을 만났다. 가람이는 그림책에 들어갈 글을 쓰다가 왔다고 했다.

01.jpg
▲ 드로잉 아티스트 신가람./사진 강대중

대학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

-그림책은 다 돼가나.

"이제 콘셉트는 대부분 정리됐고요, 그걸 바탕으로 안에 들어갈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있어요."

-요즘도 미술학원 강사 일은 계속하고 있나.

"일주일에 세 번 나가는데, 그만두고 싶어요. 학원에서 그림 가르치는 일이 저랑 안 맞아요. 저는 자유롭게 그리라고 말하고 싶은데, 입시라는 게 형식에 맞게 그려야 하는 거잖아요."

-아, 입시 준비하는 학원이야?

"예,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만두려고 했는데 다른 선생님이 먼저 그만두는 바람에 차마 그만둔다고 말 못하겠더라고요. 하하하. 학원은 당분간 계속하면서 작업해야 할 것 같은데, 힘들 것 같아요. 형도 알지만 제가 그동안 이것저것 많이 했잖아요. 블로그도 운영하고, 사진도 찍고. 이것저것 해보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너무 자질구레한 일을 많이 하니 내가 누군지 더욱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다 끊었어요. 블로그도 안 해요. 그냥 하고 싶은 거에 집중하고 싶어요."

02.jpg
▲ 드로잉 아티스트 신가람./사진 강대중

-니 학교는 어디 나왔노.

"가포고등학교를 나오고, 경남대에 갔는데, 중퇴했어요."

-미술교육과? 왜 그만뒀노.

"아니 디자인과요. 미술교육과는 못 가고 성적따라 디자인과에 갔죠. 저는 순수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전혀 내가 생각했던 곳이 아니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가르치는 곳이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선후배 관계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걸 못하겠더라고. 서열 같은 거. 그래서 어머니한테 얘기했어요. 내 성격에 학교 못 다니겠다고. 적응을 못 하겠다고. 어머니가 듣고는 우셨어요. 니는 왜 다른 애들처럼 그렇게 못 되느냐고 하시며."

-아이고, 어머니도 마음 아프셨겠다. 그러고 나서는 뭐했는데?

"만화가를 했어요. 음악 만화였는데, 정확하게는 밴드 만화죠. 파란닷컴이라고 알아요? (파란닷컴은 2004년 7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케이티하이텔이 서비스한 꽤 유명했던 포털사이트다.) 거기다 한 1년 연재를 했어요. 펑크 음악 같은 센 걸 좋아해서 만화도 그렇게 센 스타일로 그렸죠. (검색해보니 '돌격 fucking 밴드부'란 만화다. 나름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었다.) 지금은 그런 거 안 그려요. 만화가 생각보다 멋이 없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그리고 싶은 일러스트를 그리죠. 그런데 어릴 적부터 계속 만화를 그려서 제 그림에 만화 같은 게 녹아 있는 게 있는 거 같아요."

03.jpg
▲ 드로잉 아티스트 신가람./사진 강대중

-만화가 말고 또 뭐 한 거 있나? 따오기 캐릭터 그런 것도 했잖아. (가람이는 지난해 따오기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경남도민일보 홈페이지에 연재했었다.)

"캐릭터 디자인도 한 3년 했어요. 친구랑 같이 회사를 차렸었죠. 또 안 맞더라고요. 3년 하다가 그만뒀어요. 그동안 저는 그림을 상업적으로만 그려왔잖아요. 예술가는 나랑 다른 존재인 줄 알았죠. 나와 거리가 멀다, 나는 상업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변에 만나는 형님 동생들이 다 순수예술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 보면 부러웠어요. 야, 멋있다, 저렇게 단순하게 그려도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구나. 자기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예술가, 바로 제가 그리던 이상형이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상업적인 그림을 내려놨어요. 이제 그런 거 안 그려! 내가 그리고 싶은 거 그릴 거야! 성공하려고도 안 할거고, 부담도 안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거 그릴 거야, 그랬죠."

06.jpg
▲ 드로잉 아티스트 신가람./사진 강대중

세계적인 음악가 공연 포스터를 그리다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노.

"아주 어릴 때부터 만화를 그렸어요. 어릴 때 가난해서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친구가 없으니까 집에서 혼자 그림 그리고 놀았던 거죠. 내가 만날 그림 그린다고 스케치북을 많이 쓰니까 어느 날 아버지가 그러더라고요. 먼저 노란색으로 낙서하고 그다음에 검은색으로 그려라.

혼자 노는 게 안쓰러웠던지 주변에서 계속 잘 그린다, 잘 그린다고 격려도 하고, 그러다 보니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게 당연한 것처럼 돼버렸어요. 밥 먹는 거처럼. 나중에 실망도 많이 했죠. 나 이렇게 재능이 없는데 왜 계속 이걸 해야 하지 하면서."

그림책-리틀포니-표지.jpg
그림책 리틀포니 표지 ./신가람 제공

-얼마 전에 얼렌드 오여(Erlend Oye) 공연 포스터 그린 거는 어떻게 하게 됐어? (얼렌드 오여는 노르웨이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라는 듀오로 활동한다. 솔로 앨범도 많이 냈는데 최근 자신의 밴드와 함께 아시아 투어를 할 때 가람이가 그린 공연 포스터를 썼다.)

"우연은 아니에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빨리 될지는 몰랐죠. 원래는 앨범 재킷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얼렌드 오여가 연주하는 모습을 그려서 그 사람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렸는데 '좋아요'를 눌러준 거예요. 그리고 바로 자기 프로필 사진으로 쓰더라고요.

07.jpg
▲ 드로잉 아티스트 신가람./사진 강대중

얼렌드 오여, 제가 너무 좋아하는 음악가죠. 음악도 좋지만 삶이 너무 부러워요. 음유시인처럼 여행 다니고 연주하고, 어딜 가도 빛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 그림에 '좋아요'를 눌러 준 거예요. 그래서 제대로 하나 그리자 하고 계속 구상을 했죠. 그 사람이 하는 밴드 전체 이미지를 그려서 올렸는데, 댓글을 달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직접 페이스북으로 메시지가 왔어요! 그림이 맘에 든다, 그걸 공연 포스터로 쓸 영광을 달라, 그러더라고요. 아주 기뻤죠. 그렇게 해서 그 사람 공연 포스터가 된 거예요. 짧았지만 뭔가 저한테 강렬한 뭔가를 남긴 경험이었어요."

-음악은 언제부터 했노.

"지금 같이 밴드(엉클밥)하고 있는 형들(노순천, 박정훈)이 고등학교 한 해 선배인데, 형들은 그때 이미 음악을 하고 있었고요. 형들한테 기타를 배웠어요. 그러다가 2010년에 형들이 밴드 한번 해보자 해서 같이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죠.

그림하고 음악은 좀 달라요. 그 당시에 제가 하는 그림은 상업적이었지만, 음악은 완전히 순수한 거예요. 저는 음악으로 순수예술을 했던 거 같아요. 지금은 제 그림하고 음악하고 비슷해져 있지만. 엉클밥하면서 형들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 하지도 않아요. 우리가 이런 거로 대성공하자 그런 것도 아니고. 순천이 형 색깔이 원래 그런데 그게 자연스럽게 같이 녹아 있는 거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08.jpg
▲ 드로잉 아티스트 신가람./사진 강대중

-니야 말로 정말 자유로운 영혼 같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많이 얽매여 살아요."

-어디에 얽매여 사는데?

"제가 만화가가 되고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의 보수적인 성향이 저한테 남아있는 거 같아요. 반듯하게 살고 그런 건 아닌데 좀 가부장적이랄까 하는 부분이 약간 남아 있는 것 같고요. '공부 안 해도 돼 착하게만 살아'라고 엄마가 항상 그러셨는데, 집에서 지내고 엄마 품에서 그림만 그리고 놀아서 그런지 겁이 많아요. 지금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어머니가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함부로 어머니한테서 못 벗어나겠더라고요. '어머니 인생은 어머니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인 거다' 하고 벗어나고 싶은데, '어머니를 내가 아니면 누가 모시노' 이런 생각도 들고. 야망이 있거나 큰 꿈이 있으면 다 버리고 확 떠날 수도 있는데 그걸 못하는 거죠. 가끔 떠날 용기가 나긴 하는데 평소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밴드 하는 것 자체도 저한텐 진짜 과감한 일이었어요."

자기 세계를 만드는 아티스트로 살기

-가만 보니 니는 딱 아티스트가 맞네.

"순천이 형이 항상 저를 그렇게 격려해요. 너는 이미 아티스트야, 라고. 그럼 저는 아직 아니에요, 라고 말하죠. 저한테는 그런 게 아직은 약간 이상적이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다 아티스트여서 자연스럽게 내가 그렇게 되고 싶은 거 같아요. 노는 물이 그런 데니까. 그런데 저는 아직 어린 거 같아요. 생각도 어리고 깊이도 별로 없어요."

-깊이 있다는 말은 아티스트로 보면 자기 세계를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느냐 하는 게 아닐까.

"맞는 거 같아요. 지금 제 세계는 겨우 이만큼밖에 안 되는 거죠."

-자기 세계는 크고 작고의 문제는 아닌 거 같아. 있고 없고의 문제지.

"저도 사실 주변에 작가들 보면서 그런 걸 먼저 보거든요. 자기 색깔이 있는지, 자기 세계가 있는지. 없거나 쓸데없으면 저 사람은 아직 깊이가 없구나 하고 생각하거든요. 저번 주 주말에 그림책 글을 쓰려고 순천이 형 옛 작업실에 갔었어요. 제법 외진 곳에 있거든요. 마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처럼 이틀 치 식량을 챙겨서요. 가면서 이번에는 작품을 만들어 낼 거야, 제대로 된 글을 쓸 거야 의욕에 가득 찼죠. 근데 단 하루 만에 이틀 치 식량을 축내고, 벌레와 사투를 벌이고 나니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글이 너무 안 써지는 거예요.

다음 날 아침에 그냥 멍하니 누워있다가 옆에 있는 책장을 봤는데, 무라카미 하루키 책이 보였어요. 바로 뽑아들고 아무 곳이나 펼쳤는데, 그 페이지에 딱 제가 생각하는 것을 정리한 글이 있더라고요. 작가의 작품을 정의 내린다는 건 옳지 않다, 뭐 이런 내용이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이거다! 내 식으로 말하면 이런 거예요.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것이랄까. 이 사람 생각하면 이 사람에게도 어울리고, 저 사람 생각해보면 저 사람에도 맞고. 음악으로 표현하면 겸손한 음악이에요. 슬픈 사람이 들으면 슬프게 들리고 기쁜 사람이 들으면 기쁘게 들리고 그런 거죠. 하루키 문장을 보면서 그래 내 작품에는 이런 게 빠져 있어, 싶더라고요. 그래 이런 작품을 하자, 그러면서 작업실을 나와 바로 집에 왔죠. 지금은 이런 식으로 저만의 어떤 것을 찾고 있어요."

드로잉-1.jpg
드로잉1./신가람 제공
드로잉-3.jpg
드로잉3./신가람 제공
드로잉-5.jpg
드로잉5./신가람 제공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