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팽목항에는 바람만 가득했다.

멀지만 꼭 다녀와야 했다. 숙제였다

토요일 아침, 첫 번째 울리던 휴대폰 알람을 끄고 잠을 청했다. 곧 두 번째 알람이 울었다. 머리가 무거웠지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이미 잠이 깨어 달아났다. 밖은 이미 밝아진 지 오래됐다. 맑고 투명한 아침이 아니었다. 공기 중에 뿌연 습기가 가득한 느낌이었다. 하늘에는 탁한 구름이 깔렸다. 이렇게 이른 아침의 창밖의 풍경은 낯설다. 매일 자정이 넘고도 한참 지나서야 잠이 드는 습관을 고치지 않는 한 이른 아침 풍경의 낯섦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세수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겨우 3시간 정도 잔 듯하다. 전날 밤 평소 습관대로 블로그(http://blog.naver.com/32day32) 정리도 하고, 이웃 블로그도 방문하고 하다보니 2시가 넘어서야 불을 끄고 누웠는데 바로 잠들지 못 하고 한참을 뒤척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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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7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BMW R1200RT 모터사이클 덮개를 벗겨 바로 옆에 세워둔 차 트렁크에 넣었다. 이렇게 하면 덮개를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분실의 염려도 없다. 그래서 항상 모터사이클을 한쪽 구석에 주차하고, 그 옆칸에 자동차를 주차한다. 모터사이클 정비를 하거나 간단하게 세차를 할 때 차 트렁크에 있는 공구를 꺼내 쓰기도 좋고 모터사이클에 수납되어 있던 짐을 잠시 옮겨놓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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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이것 저것 챙기는 사이 금세 20분이 지나갔다. 8시까지 함안의 약속 장소로 가야 했다. 마산대학을 지나 1004번 지방도로를 타고 함안 쪽으로 달렸다. 중간에 휘발유 3만 원어치를 넣었다. 휘발유가 연료탱크 목까지 차올랐다. 이제 달리기만 하면 됐다. 함안군 가야읍 도항 주공아파트 앞 편의점 앞에 함께 여행을 할 친구들이 벌써 도착해 있었다. 여행을 같이 가지는 못하지만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봐야겠다며 나온 후배도 있었다. 후배가 먼 길 잘 다녀오라며 캔커피를 샀다. 작은 것이지만 고마웠다. 주말 이른 아침에 얼굴 보겠다고 배웅 나와준 것은 더 고마웠다. 같은 취미를 갖고 함께 부대끼며 신뢰를 쌓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애정일 것이다. 그 후배는 사진 모임도 같이 하고, 모터사이클 블랙라벨클럽 활동도 함께 한다.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이 여행의 목적지였다. 내비게이션에서 알려준 거리는 편도 370km, 왕복 700km가 넘었다. 편도로만 꼬박 5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배웅 나온 후배를 남겨두고 우리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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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BMW 2대, 혼다 1대. 모터사이클 3대가 출발했다. 초장거리를 달려야 할 때는 이렇게 단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댓수가 늘어나서 대열이 길어지면 속력이 느려져서 하룻만에 다녀오기가 힘들다. 함안에서 진주까지 가서 진주에서 2번국도를 타고 하동까지 달린다. 하동에서 섬진교를 건너면 광양시 다압면이다. 섬진교 끝에서 잠시 쉬어간다. 달리기 시작하면 멈추기 싫지만 최소한 1시간30분에 한 번 정도는 쉬어야 한다.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잠깐이라도 쉬는 것이 안전운행에도 도움이 된다. 쉬지 않고 계속 달리면 집중력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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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2번국도가 계속 이어진다. 광양을 지나면 순천이다. 순천은 시내를 관통해야 하기 때문에 반갑지 않은 구간이다. 교차로에서 신호에 걸려 대기하는 시간과 차량 흐름이 복잡한 도로를 빠져나가야 하는 구간은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이 가장 싫어하는 구간이다. 순천을 지나고 벌교까지 벗어나면 도로가 뻥 뚫린다. 특히 보성에서 장흥을 거쳐 강진에 이르는 2번국도 구간 도로는 부산에서 하동까지 남해고속도로 구간보다 더 나을 정도로 도로 사정이 좋다. 차량 통행량도 적고 노면 상태도 좋다. 곡선이라고 느낄 만한 구간도 없을 정도다. 1시간 이상을 꽤 빠른 속도로 달려도 신호등 하나 없다. 달리는 것이 심심할 정도다. 빌어먹을 자동차전용도로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도로가 자동차전용도로였다면 우리는 하루만에 팽목항을 다녀올 수 없었을 것이고, 당일치기 여행을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도로가 자동차전용도로가 아닌 것을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세계 어느나라에도 없는 '자동차전용도로'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 자체를 한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자동차전용도로 제도는 모터사이클라이더들에게 '빌어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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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그렇게 달리기만 했는데도 진도에 도착한 것은 12시가 지나서였다. 배가 고팠다. 진도읍에서 팽목항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허기진 배로 팽목항까지 가기 보다는 읍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갔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모터사이클을 주차하고 눈에 보이는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백반을 주문해서 먹었다. 하늘은 여전히 아침에 출발할 때처럼 우중충했다. 햇볕을 볼 수 없었다.

남도 백반정식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팽목항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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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흰국화 한송이를 놓았네

2014년 4월 16일 아침 나는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 있었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늘 켜놓는 TV화면에 속보가 떴다. 인천항에서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가 전복된 장면이 화면에 보였다. 배에 타고 있던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프레스센터에 있던 사람들은 안도했다. 하지만 그 때 잠시뿐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아직도 배 안에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그때부터는 누구도 TV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수 많은 학생들이 배안에 갇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을 해야 했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당국이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약 구조하지 못하면 저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의심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배는 점점 바닷물 아래로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의심이 현실이 됐다. 기가 찼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이렇게 단 한 명도 제대로 구해내지 못하는지, 그리고 세계 1위라는 조선 강국의 기술력은 이럴 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절망하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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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마음에 숙제가 하나 생겼다. 국민 누구나 그렇듯, 팽목항에 가서 그들을 보고, 어떻게라도 해준 것이 없어서 참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누가 오라고, 누가 가라고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만든 숙제를 해야 했기 때문에 팽목항으로 가고자 했다.

토요일 오후 팽목항에는 바람이 가득했다. 함께 간 두 사람은 배가 닿는 선착장에서 바다 쪽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나는 방파제로 고개를 돌렸다. 노란 깃발과 리본이 바람결에 나부꼈다. 노란 깃대 하나 하나에 바다에서 건져 올린 영혼 하나씩이 묶여 있는 듯했다. 제단에 아이들이 좋아했을 과자, 초코파이 같은 것들이 올려져 있다. 사람들이 놓고 간 동전이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세월이었다. 염분 가득한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1년이었다. 1년 만에 동전이 저렇게 색이 변했는데, 그 가족들에게 1년이란 얼마나 고통스럽고 긴 시간이었을까? 가족들의 가슴도 푸르스름해진 동전처럼 거칠게 녹이 슬었을 것이다.

천천히 걸으며 사람들이 희생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 모두 그랬다. 해준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그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에 온 것이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배와 함께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곳을 가늠해봤다. 그곳은 섬 너머, 그 너머 아득히 먼 곳이었다. 그 먼 거리만큼이나 아픔이 느껴질 듯 말 듯했다. 팽목항에 오기 전에는 그곳에 가면 눈물을 쏟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와보니 담담했다. 다만 숨을 쉴 때마다 깊은 한숨과 함게 신음이 났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방파제에서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깊은 한숨을 쉬면서 들릴 듯 말 듯 신음소리를 냈다. 다들 마음이 무거웠고, 가슴 한쪽에서 통증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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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차와 사람을 태우고 관매도를 오가는 큰 배가 들어왔다가 나갔다. 그러면서 배를 타려는 사람과 차가 늘어나 길게 줄을 섰다.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있었다. 팽목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분향소에 들렀다. 모자를 벗고, 카메라도 내려놓고 들어갔다. 흰 국화 한 송이를 앞에 놓고 머리를 숙였다. 그때까지 참았던 무엇인가가 갑자기 북받쳐 올라왔다. 차마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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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현실에 떠밀려 살지만 잊지 않겠네

분향소 밖으로 나왔을 때도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잠시 해가 비치는 듯했지만 금세 구름이 해를 덮어버렸다. 이제 모터사이클에 시동을 걸고 달려온 길을 되짚어 가야 했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 보다 힘들다. 피로가 쌓이기 때문이다. 출발 할 때 이미 4시가 지났다. 서둘러야 했다. 가능한 야간 주행 시간을 줄여야 한다. 중간에 주유할 때만 한 번 쉬기로 하고 내달렸다. 국도를 달리는 우리 뒤로 구름이 더 짙게 내리깔렸다. 곧 비가 내릴 듯했다. 주유를 하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다행히 장흥, 벌교, 순천을 지나면서 날씨가 조금씩 맑아지는 듯했다. 하동-광양 섬진교에 도착했을 때까지 아직 어둠이 오지 않았다. 낮이 긴 여름이라는 계절 덕을 본다. 또 배가 고팠다. 오전에 이곳을 지날 때 봐두었던 신원반점에 들어갔다. 신원반점은 섬진교 끝에 있다. 시중 중국음식점의 곱빼기 보다 양이 많은 3000원 짜리 보통자장면을 우리 일행은 말없이 꾸역꾸역 먹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세월호'를 가슴에 새기면서 현실을 살아갈 것이다. 자장면을 먹고 나왔을 때 섬진강에도 조금씩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어둠 속을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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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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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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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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